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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에게 꼭 필요한 아이 컨택의 파워

필자가 학생 시절엔 정말 숫기가 없는 학생이었다. 지금도 숫기가 많고 내향적 성격이 외향적 성격으로 변화되었다 말하지 못하지만...  학원이나 학교 서클, 교회에서 좋아하는 여학생이라도 있으면 또래 남자 친구들하고도 말을 잘 못했다. 얼마나 오죽했으면 필자의 아버지는 명절에 친척집에 가면 인사만이라도 남자답게 ‘우렁차게’ 해달라고 늘 말씀하셨는지...


그러던 도중, 결정하게 된 해외유학의 경험은 숫기 없는, 자신 없는 사람인 필자를 다른 사람으로 바꿔줄 수 있게 만들었다. 한국사회의 특성은 전형적인 유교문화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어른들 혹은 선생님이 말씀하실 때는, 절대로 눈을 마주치지 않는 문화가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자주 나오는 대사, '아그야, 눈 깔으라'. 적어도 한국문화에서 '눈을 마주치는' 것은 윗사람을 제대로 쳐다보지 않게 하는 사람을 길러내는 문화다. 그것이 100%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해외 문화, (서양의 문화)는 정 반대다. 필자가 경험한 것은 영미권 (호주, 미국)이기에 중동권이나 남미의 경우를 같은 케이스라 장담할 순 없지만, 적어도 영미권에서는 서로 이야기할 때, 상대가 나이가 많던, 어리던, 선생님이건, 학생이건, 갑 을이건, 서로 '동등한' 위치이다. 이야기를 나눌 때 상대의 '눈'을 마주 보지 않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들의 문화에선 '나는 당신에게 숨기는 것이 있다'라는 이야기가 된다. 가뜩이나 숫기 없고, 자신감 없는 삶을 살았던 필자는, 다른 것은 몰라도 그것은 확실히 캐치를 했고 실행하기로 했다. 영어라도 능숙한 사람이 아니면, 적어도 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는, 적어도, 아니 이 사람들에게조차도, '숫기 없고', '자신감 없는' 시선을 주기 싫었던 거였다. 


이야기를 나눌 때 이해를 하건, 못 하건, 상대의 '눈'만은 똑바로 보려고 했다. 그것은 전적으로 내가 변화하기 위한 몸부림의 시작이었다. 여기선 적어도 나이가 적다고 무시하지 않는 땅임을 알았기에, '자연스럽게' 아이 컨택이 자연스러울 정도로 훈련되게 되었다. 남자의 본능상, 상대방과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근처에 멋진 아가씨가 지나가면 순간, 눈이 그쪽으로 돌아기기 마련이지만, 돌어보건대, 필자는 교수님들, 현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그런 멋진 아가씨가 지나가도, 최소한 이 사람들과의 '예의'는 지키려고 했다. 아이컨택의 훈련은 그렇게 완성되었다. 


* 아마존에서도 이러한 책들이 매우 많다. 아이컨택의 힘 - 당신이 사업, 연애, 삶 속에서 성공할 수 있는 시크릿이라는 부재가 눈에 띈다. (출처 아마존 - https://www.amazon.com/Power-Eye-Contact-Success-Business/dp/0061782211)


지휘자에게 아이 컨택의 중요성은 중요한 수준이 아니라 '지나치다'라고 할 만큼 강조해도 그것이 지나치지 않은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다. 하지만, 적어도 합창단이나 교회 찬양대를 '지휘'하는 '리더'의 자격에 서서 포디움에 올라간다면, '눈 깔으라 아가들아' 하는 저급한 장유유서, 유교문화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합창단, 찬양대를 지휘하는 '리더'는 말 그대로 '지휘'하는 자리이다. 그 말은 '악보'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악보에서 손을 떼고, 나의 손과, 나의 눈만으로 음악이라는 시간 예술의 영역에서 그들을 '지휘 = 통솔' 하는 '리더'여야 한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지휘자 (필자가 접하는 사람들은 특성상 교회 찬양대 지휘자가 많기에 그들에 한정되어 있는 시각임을 알아주기 바란다.)들은 지휘를 하면서, 악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악보에서 자유롭지 않으니, 당연히 노래 부르는 사람들을 '지휘'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할 수 있다 하더라도, 100% 효과는 내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악보에서 자유로운 지휘는 곧, '암보'하여 지휘한다는 의미가 된다. 악보에서 자유롭다면, 나의 손과, 나의 눈만으로 '지휘 = 이끌어 가는 것'하게 된다면, 자유롭다. 그 말은, 위에 필자가 서양문화에서 경험한 바와 같이, 내가 당신에게 한점 부끄럽거나, 잘못하지 않은 사람이다. 당당한 사람이다. 란 인식을 풍긴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문화의 특성상, 단원들은 오히려, 한국문화의 특성 그대로, 자연스럽게 '눈을 깐다'는 말이 맞을 정도로, 그들이 되레 악보로 몰입하게 하는 단점이 있기는 하다. 


* 암보 하는 지휘자로 유명한 구스타브 두다멜 (LA 필 지휘자)

출처 - https://www.theodysseyonline.com/14-things-music-majors-can-relate

지휘를 하다 보면, 마치 지금은 없어졌지만, 90년대 동네 오락실 앞에 있었던 두더지 머신이 생각난다. 동전을 넣고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두더지를 기다렸다가 망치로 내려치는 느낌이다. 단에 올라간다면, 암보 지휘를 통해, 내 손과 눈으로 그들을 지휘하면, 마치 두더지 머신 게임처럼, 어느 단원이 지휘자를 보게 될지 알 수가 없다. (이 글에 오해하는 분들이 없기를 바란다.) 지휘자는 리더의 자리이다. 리더의 자리는 어느 누가 나를 보더라도, 따라올 수 있게 해야 하는 자리이다. 그러기에 필자는 더더욱, 아이컨택의 파워를 믿는다. 서양문화의 아이컨택은 '당신에게 숨기는 것이 없다'라는 의미라고 밝혔다. 시간예술인 음악, 단원들은 음악이 진행되는 중, 그 누가 나를 쳐다볼지 알 수 없다. 지휘자는 그 1초의 순간에도 악보에 파 묻혀 있어서는 안 된다. 


단원들도 할 수만 있다면 암보 하는 것이 좋겠다. 한국교회의 특성상, 그렇게 하기 위해선 지휘자와 단원 서로에게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암보로 서로 아이컨택으로 서로의 눈과 눈이 마주쳐 대화하는 것은 탁월한 음악적 진행을 만들어 낸다. 


단원들에게 까지 아이컨택을 요구하기 전에, 먼저 지휘자가 악보에서 자유로워 지자. 암보를 한다는 것은 이미 연주할 음악의 그 모든 것을 지휘자가 통솔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그럴 때만이,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전장의 장수와 같이 칼을 뽑으며, '나를 따르라'하고 말을 치고 나가는 것이 아니다. 음악이 진행되는 동안, 나의 손과, 눈빛을 통해 음악을 통솔하는 리더가 되자. 


나(지휘자)는 당신에게 숨기는 것이 없다. 당당하다. 

그러니, 내 손과 눈빛을 보고 따라오라. 


지휘자의 권위는 그럴 때 완성된다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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