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물 음악을 만들기 위해 그 사람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돌아가지 못했던 자의 슬픔 ‘덕혜옹주’
시드니에서 거주한 4년 중, 만 3년은 한국에 한 번도 들어가지 않았었다. 생활비는 내가 번다고 부모님과 약속하고 ‘내가 자처한’ 일이었기에, 남들처럼 방학 때마다 한국에 들어가는 것은 상상도 하기 어려웠다. 가서 보니 그랬다. 툭하면 한국 가는 친구들 매우 많았고, 방학이면 유학생들은 꼭 갔다. 방학엔 풀타임 아파트 청소 혹은 마트 청소를 하면서 스스로 외롭지 않으려 자신을 달랬다. 어느 날 새벽 마트 청소를 하다가 힘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푸른 시드니 하늘 – 시드니 하늘은 매우 푸르다.- 아침 비행기로 한국을 가는 대한항공 비행기가 보였다. 한 번도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정말 간절히 한국, 내 나라, 부모님, 형제, 친구들이 보고 싶어 울컥했던 기억이 있다.
* 출처 : 나무위키 - 그녀는 정말 그 시대에 찾아보기 어려웠던 '미인'이었듯 하다.
오늘 오전엔, ‘밀정’을 저녁엔 ‘덕혜옹주’를 보면서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일제 강점기 역사물을 보게 되었다. 돌아가고 싶어도 당장에 갈 수 없던 나의 마음 역시 안타까워 울컥했는데, 덕혜옹주는 어떠했을까? 잠시나마 내가 그 마음의 일부를 경험했었기에 그 장면이 내 이야기처럼 받아들여졌다. 황실의 공주님이었던 그녀, 시대를 잘못 만나 일제 강점기에 버려지듯이 일본으로 쫓겨가고, 해방 후에도 친일파들이 득세한 광복 정부에서 버림받았던 그녀. 박정희 대통령이 인심 쓰듯 겨우 한국에 돌아와 한 많은 생을 살다 간 그녀.
영화는 내내 대부분의 역사적 사실들을 이어 나간다. 김장한 (박해일 분)과 덕혜 (손예진 분)의 젊은 시절에서부터, 나이 들어 한국에 돌아와 덕수궁 앞에 앉는 장면까지 그대로, 영화는 과장하지 않고 최대한 사실적 초점에 맞추어 진행한다. 역사적 사실만 기록한 다큐멘터리가 아닌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역할을 가진 영화이기에, 남, 녀가 주인공인 이 영화에서 애틋한 사랑의 느낌은, 정혼을 약속하였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고, 영친왕의 부관으로 일본군 소위가 되어 늘 곁에 머무는 호위무사처럼 덕혜의 곁을 지닌다. 영화 후반, 독립군 은신처에 숨어 같이 옷을 입고 추위를 잊는 장면에서 감독은 잠시, 관객들에게 ‘달달함’을 선물한다. 관객들은 여기서 무언가 ‘일어나는 것 아냐’ 기대하게 하지만, 영화는 옹주와 호위무사 격인 두 남녀에게 은신처에서 옷으로 서로 덮고 꼭 껴안고 자는 ‘선’ 안에서 관객들에게 ‘달달함’을 선물한다.
어느 일제 강점기 시절 영화, 작품, 소설이 그러하듯, 친일세력이 등장한다. 오늘 오전에 본 ‘밀정’의 이정출 (송강호 분)같이 한택수의 등장 속에서, 그리고 그가 해방 후, 덕혜를 비웃으며, 미군들의 호위를 받으며 조선으로 돌아가는 모습 속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장한 (박해일) 기자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돌아가지 못한, 역사에 버려진 듯했던 덕혜옹주를 귀국시키는 장면 속에서, 얼마나 대한민국의 역사는 무지했고, 혼란의 시대였는지, 우리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듯 하지만, 우리가 앞으로도 해야 할 역사 바로잡기가 얼마나 많이 남아 있는지 보여주었다.
순수음악 작곡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내게, 교육청 근무를 통해, 교육자료 영상편집을 하며 영상과 음악의 조화는 상상할 수 없는 시저니 효과를 이루어 냄을 깨닫고, 방향을 바꾸어 영상음악 전문가가 되기 위해 로스앤젤레스까지 찾아갔었다. 내 가장 큰 목표는, ‘나니아 연대기’ 같은 크리스천 텍스처가 강한 작품에 음악을 만드는 일이었는데, ‘인천 상륙작전’, ‘밀정’, ‘덕혜옹주’ 까지 역사물들을 계속 보게 하면서, 기회가 되면 꼭 역사물에 대해서도 음악 작업을 하고 싶은 소망을 주셨다. 교회음악 출판을 하면서, 수많은 명 합창지휘자들의 말씀을 들었고,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당신 마음에, 가르치고자 하는 그 음악이, 당신 마음속에 없다면, 당신은 그 음악을 합창단에게 전달할 수 없다.”.
마찬가지다. 역사물의 음악을 담당하게 된다면, 단순히 영상에 음악을 입히는 일로 끝나서는 안된다. 역사물 속, 인물들의 마음을 하나하나 훑어가며, 그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그 역사물 속, 인물, 사건, 시대에 맞는 ‘음악’이 내 마음속에 우러나와, 영상과 결합되어 관객들에게 전달될 것이다.
돌아가지 못했던 자의 슬픔 ‘덕혜옹주’. 내가 그 마음을 100%까지 아니더라도,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그 순간의 안타까움을 알았기에, 그녀의 슬픔이 더 크게 내게 느껴졌다. 그녀에게 미안했고, 그래서 후손인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아직도 많이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손예진 씨의 연기는 압권이다. 내가 손예진 씨와 비슷한 연배이기도 하거니와, 내가 스무살적 보았던 영화 '클래식'에서 비오는 대학교 캠퍼스에서 뛰던 장면은 내게 '천사'처럼 각인되어 있다. 나이 들고 검버섯 핀 손예진은 실제 그 나이가 되어도 내 마음을 설레게 할것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