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놀랐다
네 태연하지만 여러 중의적인 의미를 담은듯한 눈빛은
예상하지 짐작하지 못한 것이었다
나의 어제 저녁은 불온했고
순결하지 못했으며 다소 불안정했다
그리움은 끝이없는데 닿지못하는 마음은
조바심과 대책없음의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
두개의 평행선
평행선은 평생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데
한개의 선은 그나마 중간에 끊어져있다
한개의 선만 계속 평행을 이루며 나아간다
그러다 다른 한선이 도중에 끊어져버린 걸 알고
자신 스스로 날카로운 이빨로 그 선마저 끊어버린다
그걸 자해, 자살, 자폭이라고 해야할까
지금껏 내 인생, 삶은 그런 류의 것이었다
유독 씩씩하게
무식하리만치 끈질기게
모든 걸 혼자서 해치우고
모든 걸 혼자서 감내하고
모든 걸 혼자서 견뎌냈다
그래서 내 DNA에는 어느것으로도 채울수없는
채워지지않는 퇴폐적이고 자극적인 것에만 반응하는
인자가 내재되어 있다
부정할수없이 사실이다
실로 고독하고 외롭고 우직하게 혼자서 모든 걸 해왔다
책을 볼때도
글을 쓸때도
일을 할때도
히끼코모리와 같은 생활을 할때도
난 언제나 혼자였고
혼자가 싫었지만
그럼에도 혼자였다
새로운 사람을 알아갈, 사겨볼 마음은 있었지만
막연히 두려웠다
나 같은 존재, 사람이 알몸처럼 까발려지는 것이 두려웠다
공사장의 소리는 낮에는 꽤나 높은 데시벨로 내 신경을 박박 긁어댔다
13층이어서 그나마 소리가 절반이하로 내 귀에 닿았다
다시 1층으로 내려오면 시끄러운 소리에 모든 감각이 예민해져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올 지경이었다
차를 몰고 빨리 빠져나갔다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거짓인지는 아직도 분간이 잘 안간다
사실과 거짓의 차이는 종이 한장차이라는 건 잘 안다
현명한척 다 아는 척 강해보이는척 했지만
그건 어파치 다 ...척이었다
흉내였다
내가 아닌거니까
미온수가 샤워기에서 계속 흘러내렸다
내 몸을 맡겼다
체온이 올라가고 바디클렌저를 묻히고
땀과 체취는 씻겨내려갔다
한참동안 눈을 감고 샤워기에서 내리는 물에
마치 장대비를 맞으며 서있는 사람처럼
알몸으로 서있었다
영혼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욕조에 앉았다
그새 많이 길어진 발톱, 손톱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금 더 나온 뱃살과 초췌해진 얼굴을 거울을 통해 보았다
그 사이 많이 지쳐있었나보다
허리는 갈수록 아파오고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내게 벌어질 스케쥴만이 내 머릿속을 가득채운다
물기를 수건으로 조심스레 닦으며
그녀를 떠올려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기괴한 자세로 사타구니와 다른 연결된 부위를 닦았다
그녀도
샤워를 하고 이렇게 수건으로 물기를 닦을까
김이 서려 뽀얘진 거울을 쓱쓱 닦았다
그녀의 이름을 써보다 이내 지워버렸다
약간의 야동을 보다가 다시 책을 주워들어 읽었다
30분정도 읽다가 덮고 아파트 주변을 몇바퀴돌았다
이제 곧 이 아파트와도 작별을 할 것이다
자주오겠지만,
거주하지는 않을 이곳
내게 앞으로 산재해있는 수많은 난관들과 문제들
두렵지만은 않다
올 여름이 되면
시원한 수박을 아삭 씹어먹을테고
아버지, 어머니, 매형, 누나와 웃으며
수박씨 멀리뱉기 내기를 할 것 이다
사람은 나이가들수록 아이가 되어간다
나이가들수록 유치해져간다
손등의 도드라진 굵은 핏줄
발등의 도드라진 굵은 힘줄
얼마나 걸었고 얼마나 뛰었을까
오늘 밤은 내 발에게 잘했다 잘했다
하며 깔꼼하게 발톱을 잘라야겠다
하루가 완전히 지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