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학과의 개강
여름 방학이 지나고 9월 학기에 Digital Product Design 학과가 시작되었다. 2022년 4월 캐나다로 자녀무상교육을 준비하면서 어렴풋이 머릿속에 그려왔던 순간을 맞이하게되었다. 아이들은 학교 생활에 조금씩 적응해갔고, 나는 컬리지에서 하고 싶었던 공부를 시작했다.
스무살에서 서른 살 남짓되는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같은 반 학생들이 건네오는 "Hi, Hyoungmi" 라는 인사를 들을때면 어학연수를 왔던 이십대의 어느 때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이 들곤했다. 회사에 출근하는것 보다 컬리지에 등교하는것이 더 익숙해져갔다.
유아교육과를 수강할 당시에는 개강하고 한 달 뒤에 재학증명서 제출을 요청했던 교육청도, 디자인학과의 두 학기 학비납입증명서를 제출한 후부터는 더이상 컬리지의 재학증명서를 요청하는 메일을 보내오지 않았다.
캐나다 컬리지에서의 첫 학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교육청 담당자에게 다음 학기에 학과를 바꾸겠다고 얘기하는바람에 요주의 학생이되어 "당신이 학과를 변경하려는 조건이 자녀무상교육의 자격을 충족시키는지 확신할 수 없으므로 다시검토해보겠다"는 답변을 듣고 식은땀이 났던 때를 떠올려보면, 이제서야 비로소 온전히 마음을 놓을 수 있게 되었다.
UX 디자이너로 근무를 시작한지 10년이 훌쩍지나 15년차에 접어들무렵 문득 이런 생각들이 들었다.
지금 알고 있는 것으로 이 일을 계속해도 되는것일까?
내가 알고 있는 것이 UX 디자인의 전부일까?
나의 디자인 결과물이 괜찮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연차에 걸맞게 일을 하고있는 것일까?
분명 내가 알고 있는 것이 UX 디자인의 전부는 아닐 것 같은데, 내가 어느 부분을 놓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 길을 잃은 느낌이었다. 캐나다로 자녀무상교육을 준비하면서 Sheridan College 의 Digital Product Design 학과 커리큘럼이 나의 눈을 사로잡았다.
학과의 모든 과목들이 UX관련 강의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Graduate Certificate 과정이어서 1년 살기의 기간안에 과정을 정상적으로 마치고 돌아올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과정을 듣고나면 UX 에 대한 이런저런 복잡했던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디자인학과가 시작되었다.
처음 한달간은 과목들마다 진행되는 프로젝트에 적응하느라 정신이없었다. 그렇게 힘들게 준비했던 무상교육이었지만 '컬리지를 다니는 것이 맞는 선택이었을까?' 잠시나마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디자인학과가 시작되고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 이런 생각들이 사라지게된 계기가 있었다.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수업을 듣고 있었다. 수업 중에 회사에서 일을 할 때 스치듯 지나쳤던 Jobs to be done 에 대한 내용이 다루어졌다. 분명 보여지는 정의 외에 무언가 중요한 의미가 있는 용어일텐데 회사에서는 바쁜 업무들에 파뭍혀 깊이있게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기억 저편으로 잊혀진 용어였다.
그런데 수업 중 강의 자료의 목차에 Jobs to be done 이 포함되어있었다. 나의 기억 저편에 있었던, 궁금증으로 남아있지만 찾아본 적이 없었던 용어가 다시 떠오르며, 교수님이 이 내용을 어떻게 풀어갈지 흥미진진하게 수업을 지켜봤다.
교수님의 강의에 이어 하나의 영상이 공유되었다. 영상에서는 Jobs to be done 과 관련된 이상적인 사용자 조사의 사례와 프로젝트의 결과가 공유되었다. 그 영상이 끝날때 쯔음, 머릿속에서 종소리가 울리는 것 같았다. 이후로도 가끔씩 실무에 도움이 되는 내용들이 수업에서 다루어졌다.
흥미로웠던 디자인의 관점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 사용해본적이 없었던 Framework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놓치고 있었던
사용자 조사의 준비와 해석과정
디자인할때 고려하지 못했던 생각들
미처 몰랐던 유용한 Tool 과 Resource
수업 중에 실무에 도움이 되는 내용들을 발견할 때면, 백화점에서 마음에 드는 스카프를 발견한 것처럼 마음이 설레었다. 내가 찾은 것들을 하나 하나 다시 살펴보고, 생각의 서랍 속에 정리해두고 싶었지만, 컬리지 과제들을 제출하고 아이들을 챙기느라 마음껏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아이들을 모두 재우고 밤 11시가 되면 잠자리에 누워서 고민에 잠긴다.
'지금 1층으로 내려가서 자료들을 좀 더 살펴볼까'
'휴직까지했는데 잠은 제때 자야지, 건강이 우선인데'
눈을 감고 1층으로 내려가고 싶은 것을 애써 참는다.
내려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잠은 더 달아나, 생각을 지우기위해 뒤척인다. 그리고는 '나'를 하나 더 만들어, 다른 하나의 '나'는 밤을 새워서 하고싶은 것들을 마음껏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잠을 청한다.
컬리지의 학기가 막바지에 이르고 숙제가 더이상 나오지 않는 겨울 방학이 다가오면, 찾았던 것들을 마음껏 다시 꺼내볼 수 있기를 기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