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39살의 일본 취업
1. 나의 첫 취업은 고3 11월이었다. 고2 때부터 당시 동경하던 보컬트레이너의 연습생이 된 나는 대학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고3 때 직업반을 선택하고 학교대신에 요리학원을 다녔다.
단지 집에서 제일 가깝다는 이유로 다니기 시작했지만 어차피 음악으로 돈을 벌려면 시간이 걸리고 그때까지 요리일을 하며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조리사자격증도 취득했다.
남들이 수능을 보는 11월에 나는 홍대 아웃백 주방에 정직원으로 입사했다. 정규직과 전혀 인연 없는 삶을 살아왔지만 나는 사실 19살에 정규직 취업을 했었다. 취업의 기쁨도 잠시, 부업으로 일을 하려던 내 의지와는 달리 아웃백커에게는 근무와 교육으로 하루 12시간의 일과가 주어졌다.
결국 난 일주일 만에 직장을 관두고 신촌의 파스타가게에서 주방알바를 하며 그놈의 락커지망생 생활을 이어갔다. 갑자기 그때 음악이 아닌 아웃백을 택했다면 지금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궁금하긴 하다.
2. 그 이후 나는 쭉 알바, 뮤지션, 프리랜서 보컬 트레이너 등 정규직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 연말정산 한 번 해본 적 없고 소득세를 내본 적도 없다.
정규직만이 사회인은 아니지만 확실히 프리랜서의 사회생활은 정규직과는 다르다. 정규직을 동경하거나 콤플렉스를 가져본 적은 없지만 오랜 기간의 프리랜서 생활은 나에게 끊임없이 노력하는 습관+그럼에도 또래보다 적은 잔고를 남겨준 채 2019년에 끝이 났다.
3. 2025년 4월, 한국에서 계획하던 일이 무산되고 나는 일본에서 신졸채용의 구직활동을 시작했다. 아마 모든 신졸지원자 중에 만 39살+외국인+신학과라는 조건을 지닌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안될 거라는 생각과 불안이 찾아왔다.
그때마다 “살고 싶다, 살 거야, 살아갈 수 있어”라고 스스로를 다잡으며 구직활동을 이어갔다. 학교의 취직과, 후쿠오카시의 헬로워크 등의 기관을 찾아다니며 내 나이와 상황에 대해 해명을 하고 같은 말을 반복하며 도움을 요청하고 필요한 과정과 공부를 해나갔다. 구직 사이트에서 연결된 모든 기업에게 “39살 한국인인데 신졸채용에 응모 가능한가요”라고 문의를 했고 거의 대부분은 거절당했다.
무너지려는 멘탈을 수 없이 다 잡으며 이력서를 쓰고 자기 PR을 하고 응모 가능한 소수의 기업 설명회에 참가했다. 화면상이지만 왠지 다른 학생들의 표정은 다 나를 비웃는 것 같았고 기업의 인사담당자는 다 나보다 어렸다.
4.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다. 올해 외국인 유학생 채용을 처음 진행하는 회사로부터 스카웃제의가 왔다. 도쿄의 대기업은 아니지만 특수 와이어를 만드는 안정적인 중소기업이고 나의 토익점수와 언어능력, 그리고 도전정신과 주체성을 높이 평가해 줬다.
월급은 200만 원 대지만 월세 80프로, 교통비 전액, 점심지원을 해주고 사원이 원하면 대학원 진학과 자격취득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지원해 준다. 한국이었으면 나는 나이만 처먹은 무능력한 병신 취급을 받았을 텐데 이 회사는 나에게 제1호 외국인 사원으로서의 활약을 기대한다고 해줬다. 남들은 “그래봤자 그 나이에 200따리면 쓰레기지“라고 욕하겠지만 나는 너무도 만족스럽고 감사하다.
어제 진행된 회사견학과 대면면접은 모든 경비를 다 지원받으며 화기애애하게 진행됐고 그다음 날인 오늘, 회사로부터 합격연락을 받았다.
취업이다, 그것도 정규직....
나이 마흔에 대학생 구직자,
내가 해냈다 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