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일지

결국 이렇게 살 팔자

by 이신범


1. 내가 처음 음악을 시작한 것은 고2 때였다. 당시는 80-90년대 하드록, 헤비메탈을 너무 좋아했고 락커가 되고 싶은 마음에 당시에 동경하던 보컬 트레이너를 찾아가 제자가 되는 것으로 음악생활을 시작했다.


그때의 나는 학교에는 전혀 흥미가 없고 선생님과 선배들이 있던 연습실, 인터넷에서 연을 맺은 형, 누나들과 술을 마시고 어울려 다니며 성인의 생활을 이미 시작했었다.


5년의 세월이 흘러 첫 스승과의 인연이 틀어지고 내가 배워온 발성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난 후, 나는 그곳에서 맺은 모든 인연을 정리했다.


2. 그 후는 헤리티지 매스콰이어와 블랙가스펠에 올인한 삶이 몇 년간 이어졌다. 마치 락음악을 하던 시절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흑인 음악이 나의 전부가 됐다.


하지만 수년간 연습을 해도 흑인음악의 보컬스킬은 만족스러운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고 제2의 헤리티지가 되겠다며 여기저기서 시도했던 보컬그룹생활은 결국 결실을 맺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그 무렵 바비킴의 노래를 접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블랙 가스펠이 아닌 나에게 맞는 음악과 창법을 찾게 됐고 언제까지나 블랙뮤직만을 고집할 것 같았던 반삭발수염의 나는 팝 음악을 기반으로 음반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3. 두 장의 음반을 낸 후, 나는 성경을 공부하고 그 안에 담긴 진리를 음악으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에 전념하게 됐다. 그 시절의 나에게는 더 이상 발성이니 보컬이니 하는 것은 중요치 않았다. 오로지 작곡과 성경공부뿐이었다.


한 때 나의 뮤즈였던 헤리티지의 자리는 CCM 뮤지션 김도현이 대체했다. 그의 모든 인터뷰와 음악들을 늘 끼고 살았고 그가 직접 성경과 작곡을 가르치는 스쿨까지 찾아갔었다.


선배라는 명목으로 온갖 꼰대짓과 무당놀이를 하던 그 와의 인연은 금방 끝났지만 그 이후로도 나는 추구하던 음악을 갈고닦아 2019년 마지막 음반을 발매했다.


4. 그 후로 6년이 지났다. 가끔 각 시절을 함께 했던 사람들을 SNS나 미디어에서 보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 형태는 달라져도 비슷한 정체성과 취향, 인간관계를 유지하며 살고 있는 모습을 본다.


그러고 보면 난 정말 특이한 인간이다. 단순히 리스너로서의 음악 취향이 아닌 그래도 음악을 하겠다고 덤벼든 놈이 장르를 저렇게나 바꾼 것도, 그에 따라 속한 집단과 관계, 그 안에서의 나의 모습까지도 완전히 바꿔온 것도 전혀 일반적이지 않다.


음악 관련뿐 아니라 관계로서 소중했던 각종 교회, 소셜 커뮤니티 등도 이제는 다 과거가 됐으니 말이다.


내가 인정머리가 없는 인간은 절대 아닌데 왜 때문인지 나는 소중하게 여겼던 무언가가 가장 좋았던 시절의 모습을 잃게 되면 그 갭을 견디지 못하고 추억으로 돌린다.


아마 보기와는 다르게 순수하고 여린 성격 때문인 것 같다.


5. 좋든 싫든 내 인생은 지금까지 이렇게 흘러왔다. 아마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가게 될 것이다. 아쉽게도 나에게 선택권은 없는 듯하다.


내가 그냥 이렇게 생겨먹은 인간이다. 그래서 각 시절의 사람들 중 주변에 남겨둔 이는 단 한 명도 없고 언제나 나는 혼자서만 그때를 추억하며 살아간다.


이게 내 팔자고 이게 내 삶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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