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성 씨에게

by 이신범

혹시 저를 기억하시나요? 휘성 씨가 영등포 연습실에 레슨 받으러 오던 시절에 그곳에서 살다시피 하던 머리 짧은 남자애. 휘성 씨가 연습실 컴퓨터 쓰고 있을 때, 학원 홍보해야 한다고 말을 걸었던 적이 한 번 있었죠.


딱히 대화를 해본 적은 없었기에 기억 못 하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 시절 당신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 우리 연습실 사람들은 소위 메이저 가수라고 하는 사람들을 좀 삐딱하게 보는 경향이 있었죠. 그래서 휘성 씨가 발성 연습하다가 갑자기 Just once를 불렀을 때, 저 또한 ‘뭐 별다를 것도 없구만’ 하고 속으로 괜한 심술을 부렸습니다.


당신은 특히 ‘불치병‘이라는 곡의 하이라이트 애드립 부분 때문에 힘들어했었죠. 선생님 앞에서 그 부분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레슨 받던 모습도 기억이 납니다.


영등포 생활이 끝난 후, 저도 당신처럼 흑인음악에 푹 빠져서 보컬그룹을 했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당신을 더욱 인정하지 않았어요.


휘성 씨도 아시는 것처럼 당신은 너무나도 탁월한 뮤지션이지만 발성적인 재능이나 타고난 조건이 다른 남자탑보컬들보다는 조금 부족했기에 흑인들 특유의 고음이나 스킬을 동경하던 그 시절의 저는 당신을 다소 부풀려진 가수라 생각했었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노래를 하다 보니 당신과 저는 비슷한 점이 꽤 많음을 알게 됐습니다. 저도 당신처럼 선천성 비염이 있어서 시원하고 단단한 목소리가 잘 나오질 않습니다.


호흡기가 약한 사람이 노래하면서 겪게 되는 많은 어려움도 잘 알고 있고요. 그래서 당신이 해온 고민에 대해 저도 깊이 공감합니다. 물론 당신보다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지만요.


시간이 흘러 지금의 저는 일본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당신께서 이런저런 일들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기사를 종종 접했지만 ’그냥 그런가 보다 ‘ 했어요.


그러다 작년에 우연히 당신의 음악을 다시 듣게 됐습니다. 참 놀라운 경험이었어요. 그저 그런 가수라고 여기던 당신의 노래들이 새롭게 들렸습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한 소절, 한 소절을 부르는 당신의 목소리로부터 음악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가득 느껴졌습니다. 단단한 고음과 각진 애드립이 없어도 당신의 노래는 너무나도 훌륭했고 외롭고 쓸쓸한 나의 일상을 따뜻하게 채워줬습니다.



그때부터 당신이 힘겨운 시절을 보내는 와중에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이전만큼의 컨디션은 아니지만 팬들 앞에 서기 시작했다는 등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진심으로 당신의 재기를 응원했고 보편적인 가창력의 기준이 아닌 ’ 휘성‘이라는 아티스트만의 색깔로 다시 돌아오기를 기원했습니다.



지난 3월,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와 쉼을 누리던 와중에 믿을 수 없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타이틀을 읽자마자 “제발 그러지 마”라는 탄식이 흘러나왔어요.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인지..... 마치 저의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정말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인지...... 할 수만 있다면 당신에게 도대체 이유가 뭐냐고 묻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3월에 콘서트를 앞두고 SNS에 다이어트 끝이라는 피드까지 올리고 세상을 떠난 당신의 모습을 보며 저도 제 자신에 대해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저는 불안이나 걱정, 두려움 등은 늘 혼자서 감당하고 남들 앞에서는 의연하고 강한 모습만을 보이며 살아왔습니다. 제가 그런 모습을 동경하고 바라기도 했지만 그로 인해 자신의 약함을 늘 감추며 살아왔는데 앞으로는 그러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최근에 주위 사람들에게 저의 아픔과 불안에 대해 솔직하게 드러내고 그로 인해 오랜 기간 품고 있던 삶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휘성 씨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요?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저도 잘 모르겠네요.


당신이 떠난 후, 유튜브에서 당신이 예능에 나와서 자기 얘기를 하는 영상을 많이 찾아봤습니다. 자신의 아픔과 불안을 털어놓는 당신의 모습이 참 아름답게 보이더군요.


어쩌면 당신은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떠난 것이 아닌 쉼과 평안을 누리기 위해 떠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금 당신은 어떠한가요? 그곳은 평안한가요? 나는 모든 것이 두렵습니다.


그런데 아직은 더 살아보고 싶습니다. 삶이 너무도 버겁고 자신 없지만 앞으로는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고 싶어요.


휘성 씨, 그곳에서 나를 응원해 주세요. 살아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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