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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를 켜다

야누스 이야기

by 까멜리아

나지막이 들려온다.

꿈인 듯 생시인 듯

비몽사몽 間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새벽녘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은은한 파도소리와 함께 들려온 가물가물 했던 이 시가 ‘그리운 바다 성산포/이생진’라는 것을 라이브 카페에서 <단짠단짠 야누스 이야기>에서 소개되었던 내용인데 그 당시에 알았다.


1990년대 우리 집은 작은 판이 책상이었다. 그 위에 교과서와 카세트테이프를 넣어 들었던 작은 라디오는 필수 진열품이었다.


고등학생이었던 넷째 언니는 새벽에 깨서 공부를 했었고 공부하기 전ㆍ후 휴식 시간에 라디오를 한 번씩 켰는데 그때 흘러나왔던 모든 소리들은 은은한 자장가로 들렸었다.


언니가 학교 가고 없는 저녁시간 동안 라디오는 내 차지가 된다. 저녁 다 먹고 설거지 방청소를 끝내고 잘 준비를 다 해놓고 "별이 빛나는 밤에 "를 들으며 잠을 잤다. 이 것을 줄여 '별ㆍ밤'이라 했고 DJ를 '지기'라고 불렀다.


당시 별밤지기는 이종환 님이었던 것 같고 그다음은 이문세 님이셨던 것 같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별ㆍ밤은 인기가 최고였다. 깜깜한 밤에 "별이 빛나는 밤에~"하면 모두의 함성소리~ 시집간 셋째 언니도 별ㆍ밤을 들었다. 어느 날은 셋째 언니의 생일이었다. 셋째 언니는 글쓰기 공모에 글을 보내 입선하였다. 언니는 글을 참 맛깔나게 썼고 그 글에는 감동까지 있었다. 언니의 수상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별ㆍ밤에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이나 통화 중이어서 포기하려고 수화기를 내리는 순간 대뜸 연결이 되어 깜짝 놀랐다.


별ㆍ밤 PD님이 신 것 같은데 이런저런 질문을 했고 나는 가타부타 이야기를 한 후 "ㅇㅇㅇ씨~잠시 후 이문세 님과 전화 연결이 될 건데 조금 전에 통화하신 거랑 똑 같이 말씀하시면 됩니다~전화 끊지 마시고 잠시만 기다리세요~ "

'아~평소 잘 들어 본 적 없는 상냥한 서울 말투 사르르 녹는다 녹아 ~ 어쩜 이렇게 남자분이 목소리가 야들야들하실까?'

"아~떨려요 어떡해요~"

그리고 잠시 후"전화 끊으시면 안 됩니다. 광고 나간 후 통화 연결 될 때까지 끊지 말고 수화기 들고 계셔야 됩니다" 며 신신당부를 하셨다. 방송도중 끊어 '뚜~뚜~'신호음이 나서 연결이 안 되었던 경우가 있었다는 것을 방송을 들어 잘 알고 있었다.


"여보세요~" 지지지직~~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이문세 님 목소리~~ '우와~~~ 목소리 끝내준다~' 나는 기분이 덜 떠서 목소리 완전 업업업

"아~~ 여보세요 아악~안녕하세요~~ 이문세 님 팬입니다. 악! 목소리 너무 좋아요~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면서ㆍㆍㆍ" 혼자 호들갑을 어찌나 떨었는지~~

"아 네~~ㅇㅇ씨 혹시 라디오 옆에 켜 놓았는지요?"

"네~"

잡음이 너무 커서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라디오를 끄고 통화를 했다.

사실 방송 출연한 내 목소리를 녹음하고 있었는데 아쉬웠다.

이문세 씨는 내 목소리가 이쁘다고 했고 또 내 말에 어찌나 웃던지~~ 알고 보니 사투리 때문이었다. 나름 서울 말씨 흉내를 내려고 했던 것이 ㆍㆍㆍ 나의 라디오 첫 방송은 이렇게 시작이 되었다. 이 이야기는 학교에 가서도 나의 자랑거리였다.


직장에 다닐 때도 라디오는 늘 켜놓았었다. 점심시간이나 사장님이 안 계실 때는 큰 소리로 ㆍㆍ아는 노래가 나오면 같이 부르기도 했고 퀴즈 문제나 나오면 FAX도 보냈다. 서세원의 두 시의 데이트? 에 글을 써서 보냈는데 또 방송을 탔다. 그 당시 (서세원의 ㆍ오늘은 왠지~)라는 코너였는데 내가 걸린 것이다.

오늘은 왠지

이글거리는 태양아래

빨간 고무다리이 안에 내 몸 맡기고

수도꼭지에 호수 달고

샤워하고 시퍼라


오늘은 왠지

흘러내리는 땀을 비누 삼아

바람에 내 몸 맡기고

살랑이는 바람에 샤워하고 시퍼라~


아~~

오늘은 왠지

빨간 고무 다라이에 누워

이글거리는 태양아래서

샤워하고 시퍼라~~

너무 오래되어서 확실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는데 서세원 씨가 여태까지 이런 내용은 없었다면서 배를 쨌다 ㅎ

너무 웃긴다면서 ~

나보고 혹시 박명수 동생 아니냐면서

이름 때문에 이런 질문 안 받았냐면서

혹시 결혼했냐면서


정오의 희망곡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점심시간에 했던 프로그램이었는데 여기에도 사연을 보냈는데 전화 연결 되어 통화를 했었다.


방송이 나가고 퇴근 시간쯤 되어 과장님께서 전화를 내게 돌렸다. 전화받아라는 눈 짖을 했다. 낯선 사람이 사무실로 전화가 왔었다. 운전하면서목소리가 너무 예뻐서 방송국에 전화를 해서 회사 전화번호를 알아냈다면서 제발 한 번만 만나자고 했다.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냐고 하니 우찌우찌 알아냈다고 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찌 이렇게 전화번호를 알 수 있었는지 방송국에서 이렇게 쉽게 가르쳐 줄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따졌더니, 아버지가 무궁화 네 갠데 아버지가 꽤나 유명하신 것 같았다. 아버지 찬스로 알아봐 달라고 했다고 ㆍㆍㆍ

(본인은 스물여섯?이고 직업은 사업을 폐? 석유? 운전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전화번호를 알아냈다는 시실이 놀라웠다.

사무실로 몇 번이나 전화가 왔고 업무에 방해된다고 전화하지 말라고 거절을 했지만 방송 듣는 순간 글 내용도 너무 좋은 데다가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착할 것 같다면서 잠을 잘 수가 없다고 딱 한 번만 만나보자고 했다. 한 번만 보고 제가 싫으면 안 만나도 된다고 ~

하루에 두ㆍ세 번씩이나 전화가 와서 직원들도 다 만나주라고 했다. 난 그 당시 남자에 관심 1도 없었던 터라 나가기도 싫었는데 자꾸 전화가 와서 어쩔 수 없이 사무실에서 먼 쪽으로 약속 장소를 정하고 나갔는데 저 멀리에서 유독 서성거리는 키가 작고 근육맨이 보였다. 그 당시 근육맨을 너무 싫어했던 터라 만나 보지도 않고 난 무서워 그냥 도망 와 버렸다. 그리고는 전화가 오지 않았다. 그 후 이 방송에는 사연이든 뭐든 보내기가 싫었고 듣기만 했다.

시간이 좀 흘렀고 일도 바빠서 잠시 잊고 지내다가 라디오 방송국에서 퀴즈나 사연이 소개되는 코너는 호시탐탐 노렸고 마침 방송프로그램에 정답 맞히는 퀴즈에 FAX를 보낸 후 당첨 되어 또 상품을 받았다.


서세원의 오늘은 왠지~에서는 에스콰이어 상품권. 또 화장품 선물세트, 금강제화. 식사교환권ㆍ 이 중에서 제일 좋았던 건 (마이마이)였다. 그 당시 이선희 가수와와 박남정가수를 제일 좋아해서 그 CD는 닳도록 들었던 것 같다. 마이마이도 자랑한다고 2년 정도 들고 다니면서 결국 고장이 났고 고칠 생각도 안 하고 그대로 두었다가 버린 것 같다.


그리고 진짜로 박명수 씨랑 여자분 둘이 방송하는 프로그램에 진짜로 박명수 씨랑 통화를 했는데 내 보고 "혹시 오빠가 박명수냐"라고 묻는데 "아니"라고 해놓고 눈치를 채고 "아~생각해 보니 오빠 맞다"고 하니까 그게 더 웃기다고 ㆍㆍㆍ



생각해 보면

꾸준히 글을 썼던 것 같다.

아주 사소한 이야기들

보잘것없는 이야기들

평범했던 이야기들을


그때는 나름 심각했던 것 같았고

또 나름 좋았 던 것 같았고

철부지였던 나를 적었었다.


지금도 철부지이지만


매일 라디오를 털어놓고 다른 사람들의 사연을 들으면서 때로는 웃고 울면서 내 마음도 위로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사를 갈 때면 늘 라디오부터 챙겼고 작은 라디오가 고장 나서 오디오를 쌌는데 고장이 나서 이런저런 이유로 지금은 잘 듣지 않게 되었다.



아침저녁으로 두 딸을 출근ㆍ 등교시킬 때 자동차를 타면 무의식 적으로 다이얼을 누른다. 그새 아나운서도 바꿨다 .


분명 <지금은 여성시대>였는데 언제부터였을까? <지금은 남성시대>라고 하기에 깜짝 놀랐다. 금요일인가 토요일만 <지금은 남성시대>를 한다고 들었던 것 같다. 정말 오랫동안 라디오를 듣지 않았는 것이 탄로가 났다.


결혼 후 신혼 시절 <지금은 여성시대>에 몇 통이나

보냈는데 유일하게 걸리지 않았던 프로그램이다.

나는 왜 걸리지 않았을까? 내용이 짧아서 그런가? 결코 아니다 10장씩이나 적었는데 내용이 이상하나 싶어서 몇 번이나 훑어보았는데도 아직까지도 의문이다.


<지금은 여성시대> 언젠가는 다시 한번 더 도전을 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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