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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문득

그리운 날

by 까멜리아

막걸리 / 까멜리아

휘어진 골목 돌아 서면
출렁이는 양은주전자에
막걸리가 한가득

막걸리 넘친 주둥이가
뽀오얀 유혹을 했다

주둥이에 입을 맞춘 순간
아, 달콤한 이 맛

아버지는 그 맛에
사랑에 빠지셨나 보다

탱글한 주전자 뚜껑을 열면
엄마젖 같은 곡주

배곯던 지절
아버지는
막걸리로 빈 배를 채우셨나 보다


비가 쏟아지던 한여름 밤

신랑과 나란히

해물파전에 동동주를 마시니

문득,

아버지가 그리웠다.


우리 집 입구에서 골목 끝까지 가서

좌회전해서 걷다 보면 조그만 점빵이 있고

더 올라가면 언니의 친구집이 있다.

좀 더 가서 오른쪽으로 꺾고

조금만 더 가면 한 모퉁에 술도강이 있었다.


<할아버지 제삿날이다.

식구들 모두 제사 음식을 장만하느라

마당은 분주했다. 어디에선가

"ㅇㅇ야, 정지 가서

막걸리 좀 받아 온나" 엄마 목소리는

큰 방에 달린 작은 다락방에서 났다.


군말 없이 정지(부엌) 가서 주전자를

찾아들고 대문을 나섰다.>


술도강에 도착했다.

대문 앞에는 욕조만큼이나 큰 빨간 다라이에

전지분유 같은 말간 물이 가득했다.


"아줌마"하고 부르면

"아이고, 우리 이뿌니 왔나"하면서

아주 반갑게 맞아 주신 아주머니


어릴 적 나는 사람들이 다 아주머니한테

"조씨요, 조씨요"라고 해서

이름이 조 씨인 줄 알았다.


조 씨 아줌마는 피부가 하얗고

말도 조곤조곤하고 나를 보면

매일 예쁘다면서 칭찬을 해주셨다.

조 씨 아저씨 역시 점잖으시고 날

예뻐해 주셔서 두 분을 좋아했다.


아줌마는 긴 족대로 막걸리를

휘 휘 젖고는 주전자에 담았다.

가득 담긴 주전자는 8살 키 작은

내가 들기에는 너무 버거웠다.

집까지 가다가 막걸리를 줄줄줄

흘려서 한 손으로는 주둥이를

막고 품에 안고 가야만 했다.

주둥이에서 막걸리가 흘렀다

손이 끈적해서 혓바닥으로 핥았는데

우와. 어찌나 달달한지


그날 이후로 막걸리 심부름은

내가 도맡아 했고 돌아오는 길에

막걸리를 홀짝홀짝 마시고 나면

매번 기분이 좋아 심부름도 기분 좋게

했었다. 막걸리는 사람을 참 기분

좋게 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엄마랑 손잡고

술도강을 지나치다 아저씨 아줌마를

만났다. 서로 인사를 나누시고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시더니

"아이고 박 씨 아줌마요, 공주 우리

주면 안 됩니꺼? 공주야 우리 딸 하자

울 집에 오면 옷 도 예쁜 거 사주고

맛있는 과자 사탕 초콜릿도 다 사주고

하고 싶은 거 다 해줄게" 하셨다.


혹시, 엄마가 날 조 씨한테 팔아먹는 건

아닐까 무서워서 엄마 등 뒤로 숨었다.


엄마는 "아이고"한 마디만 하고 치웠다.

나는 속으로 "아이고가 뭐지?" 하고는

엄마랑 집으로 왔다.


며칠 뒤 우연히 그 골목을 지나쳤는데

조 씨 아저씨가 내 이름을 부르며 씩 웃었다.

나는 지난번 이야기가 생각나서

인사만 하고 부리나케 도망가 버렸다.


어느 날 엄마랑 조 씨 부부랑 나란히

바라보면서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목격했다.

혹시 엄마랑 날 팔아먹으려고 작당하나

싶어서 골목 귀퉁이에 숨어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엿들었는데 너무 멀어서

뭐라고 하는지 제대로 안 들렸다.


그날 이후로 엄마를 피해 다녔는데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고

그날 이후부터 막걸리 심부름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막걸리는

엄마가 손 수 받아오셨고

나는 학교 갔다 와서

놀러 다닌다고 바빴다.


비가 내린다

핸드폰소리가 요란하다. 띠리띠리~

'킹'이라고 뜬다. 신랑이다.

'모처럼 해물파전에 동동주 어떠냐"라고 한다

난 군말 없이 "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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