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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쓰다

꿈의 콘서트

by 까멜리아

2021년 3월이었다.

내가 맨발 걷기에 한 참 빠져있을 즈음

따르르르릉~아주 고전적인 전화벨소리가 울렸고 통기타를 하면서 나를 제일 먼저 챙겨 주신 울림님이라고 폰에서 떴다. "지금 함지산인데 올래?" 란 말이 떨어지자 말자 난 바리바리 함지산으로 갔다. 왜냐하면 내가 맨발 걷기로 "산을 자주 간다"라고 하니 제일 친하게 지내시는 분과 함께 함지산에 "한 번 오겠다"고 몇 달 전부터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평소와 같이 운동화에 편한 외출복을 입고 달렸다. 먼발치에 낯익은 분이 계셨다. 그리고 울림님께서 늘 말씀하셨던 나랑 동갑내기 친구를 데리고 왔다. 통성명 후 가볍게 몸 풀고 운암지를 지나 함지산 초입부터는 신발을 벗었다. 오! 친구도 신발을 벗었다. "왕년에 맨발 걷기 산대장이었다"고 본인의 역사를 이야기했다. 평소에 기타 치는 친정언니를 통해서도 알고 있었고 통기타밴드에 가입하면서 이 친구를 익히 알고 있었는데 직접 보니 더 큰 영광이었다.(노래 잘 부르고 기타도 꽤 잘 침 ) 꼭 한번 보고 싶었던 친구였기에ㆍㆍㆍ첫 대면식은 산에서부터였다. 함지산 정상을 찍고 친구는 기타 동호회에서 공연연습이 있어 연습실 구경차 같이 갔다. 연습실은 버스로 4코스쯤 되었고 이렇게 가까운 곳에 연습실이 있다는 것에 나는 놀랐다. 연습실은 지하였고 안에 들어 선 순간 연습하다가 멈칫하면서 서로 훑어보던 낯선 사람과 낯선 사람의 눈빛이 오고 갔다. 잠시 인사를 하고 연습에 방해가 될까 봐 그곳을 나왔다. 친구는 일주일 후 연습실에서 기타 초급반을 친구가 운영하니까 놀러 오라고 했다. 일주일이 지나 기타를 메고 연습실로 향했다.


그곳에는 퍼커션을 배울 때 있었던 예쁜 언니가 있었는데 이 언니가 이 동호회 회원인지도 그날 처음 알았다. 그리고 여성 회원 6명 정도 있었고 분위기가 너무 좋아 바로 가입을 했다.

나의 기타 동호회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동호회를 하는 동안 여러 일들이 발생했다. 나의 의사ㆍ 의도와 전혀 상관없는 일들이 아무렇게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5년 전 한참 수영을 배울 때, 수영장 같은 팀 언니의 동생이 구제 옷가게를 한다기에 우리는 우르르 가게로 갔다. 그곳에서 옷과 신발 한 보따리에 삼십만 원 넘게 쌋다. 그렇게 많이 사서 언니는 동생에게 고맙다고 모자도 그냥 줘라고 했다. 구제 물건은 처음이다.

신발은 새 신발이고 진짜 편하고 좋은 거라면서... 옷도 새 옷이고... 가게에서는 몰랐는데 집에 와서 보니 옷도 생각보다 많이 낡아 보플이 있었고 뜨개옷은 코가 많이 나갔다. 신발이 새것이라 했는데 껌 같은 것이 묻었고

옷에는 라벨이 없어 품질에 비해 잘 못 싼 것 같아 여차저차 동생분 한테 얘기하니까 "신발은 반품이 되지만 옷 들은 교환 반품이 불가"라고 했다. (신발은 새것이라 했으면서 거짓말을 해서 더 이상 신뢰가 없어졌다.)

새 옷은 입기로 하고 어차피 안 입을 옷가지는 다른 사람한테 팔아라고 그냥 돌려주려고 옷과 신발을 챙겨 갔다. 손님이 있었는데 단골인가 보다. 나를 본 언니의 동생은 " 옷 반품 안된다. 내가 언니 아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자도 그냥 달라고 해서 줬고 니트도 안 판다고 했는데 팔아라고 했다면서 나를 몰아세웠다. 듣고있잖이 어처구니없었다. 언니가 중간에서 모자도 그냥 줘라고 했고 니트옷도 난 살생각도 없었는데 거절 못 하는 나에게는 강매였는데. 신발은 두고 옷은 가지고 가서 버리던지 맘 대로 하고 당장 나가라며 <47년 만에 가장 큰 실수를 했다.>고 했다. 헉! 충격 그 자체였다. 이런 말을 듣다니. 억울하고 분하고 뇌는 하얗고 입 밖으로 무슨 말은 해야 하는데 말문이 막혀 바보같이 나왔다. 오는 길에 동네 친구에게 자초지종이야기를 하며 한탄을 했더니 "와~별꼴이네 ~ 성격 대단하네 니가 참아라"고 했다.


<말로 사람을 죽인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


친구도 " 인생 어떻게 살았냐"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누군가가 비난하고 비판하고 평가를 한다. 그런 것에 난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비난 하고 평가를 하는 것에 기분이 나빠졌다. 어떻게 대처해야 되는 줄도 몰랐다. 그 동생이 한 말에 마음이 많이 아팠는데 '그 사람은 내가 잘 되었으면 좋은가보다 그러니 이런 말도 해주지 '하면서 거꾸로 생각을 해 보니 오히려 고맙다는 생각마저 들었고 그 후로 나를 돌아봤던 계기도 되었다.


친구도 이런 비슷한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을까? 아마도 어처구니없었을 것이다.


이쯤 되니 누가 나에게 진심인지 그렇지 않은지 이제는 나도 잠깐은 생각해 본 것 같다.


대가를 바라고 무엇을 하는 사람을 난 싫어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시간투자에 대가를 바라는 것은 자본주의에 살고 있는 현실에서 마땅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들은 그들대로 아니면 아닌 대로 살면 될 일이다.


사람은 그릇의 량과 질이 따로 있는 것 같다.

그대로를 인정하자!



내 친구는 늘 무엇인가를 배우고 할 수 있는 역량보다 넘칠 만큼 봉사를 했고 헌신을 했다. 그런 내 친구가 난 늘 대단했고 배울 점이 많아 내 삶에 많은 지침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 잘 살아온 내 친구가

다가오는 2024 년 10월 8일 화요일에 친구의 단독 콘서트를 한다고 했다.

꿈의 콘서트



콘서트는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동호인들의 꿈일 것이다.


꿈을 준비하는

내 친구


서율 전! 영! 미!


아자! 아자! 응원해~~


*공연 장소

서율 전영미는 대구 종로 몬스터즈 크래프트에서 한다.


출처~ 네이버


불도저

빈 땅
내리찍어
파헤치고
온갖 것에
힘쓰고 나면
무엇이든
어떻게든
완성이 된다

찍은 만큼
제 몸에 난 상처는
모른 체

내 친구는 왕년에 일할 때 별명이 불도저였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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