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도쯤인가 이 집에(서구 평리동) 이사를 왔다. 집 담벼락 모서리에는 석류나무 두 그루가 (한그루는 홀쭉이 다른 한 그루는 뚱뚱이 꼭 체형은 아빠 엄마 같은데) 사이좋게 있었다. 그런데 이 석류나무가 이 집으로 이사 올 때부터 있었는지는 아니면 엄마가 묘목을 싸 오셨는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맨 처음부터 작은 나무가 있었던 것 같다. 큰방 부엌으로 문이 있었고 연탄을 갈아 연탄재를 버리려면 부엌으로 난 좁은 길로 나와야 수돗가가 있고 대문이 있었기에 그 부엌 좁은 길 끝 모퉁이에 작은 나무가 있었던 것 같은데 구석에서 조금씩 자라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빠는 매일 아침 작은 화단에 물을 주셨고 화단에는 상추ㆍ 고추 모종도 간간히 심으셨다. 이름 모를 무엇인가가 늘 화단에 피었는데 내 눈길을 사로잡을 만큼 예쁜 것은 없었기에 그곳을 스쳐 지나야 만 옥상을 갈 수 있었는데도 그냥 지나갔으니 말이다.
아빠의 화단은 항상 맑겠다.
어느 날은 나무작대기를 몇 개씩이나 꼽혀있었기에 그때는 막대기를 왜 저렇게 심어 뒀나 싶어 가까이 가보니 막대기에는 가시가 뾰족뾰족 있었다
이게 뭐냐고 물어보니, 가시오갈피라고 했다. 아빠는 참 희한한 것을 심는다고 생각하면서 지나쳤다. 어느 날에는 실파 같은 풀이 있어 뽑으려다가 물어보니 달래란다. 또 어느 날은 다육이(작은 식물인데 결혼 후에 다육이라는 식물을 알았음) 같은 작은 잎이 몽글몽글 달린 귀여운 줄기가 있기에 물어보니 돋나물이라 했다. 또 어떨 때는 돌미나리도 있었다. 산이나 들로 가서 캐 오셨던 것이었다. 나중에는 돋나물과 돌미나리로 무침과 물김치도 담아 주셨는데 참 깔끔하고 맛있었다. 이렇게 내가 알고 있는 식물이나, 첨 보는 식물들이 가끔 이 텃밭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어떤 날은 두릅도 심으셨고 꽃 ㆍ나무도 가꾸셨다. 그렇지만 다른 집 길가의 텃밭에는채송화 맨드라미 봉선화 장미 등 다양한 꽃 나무가 있어 아름답기 까지한데 아빠의 화단은 그닥 아름답거나 아기자기하지는 않았다.
어느 날 빨래를 걷기 위해 옥상에 갔더니 정말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글쎄 옥상 빨랫줄 건너편 한 구석에 폐 장판을 깔아놓고 그 위에 쌀포대기 같은 것이 있고 그 속에는 어디서 가지고 오셨는지 흙이 한가득 했고 (고생 많이 하셨겠음)얼깃설깃 노끈을 엮어 계단 끝까지 쭈욱 엮어 놓은 곳에는 이미 호박 줄기가 엉금엉금 잘 기어 가고 있었다. 휑했던 옥상도 이렇게 아빠의 놀이터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어느새 호박줄기는 옥상 한 칸을 가득 채워 빨래를 널러 가려면 호박넝쿨을 타 넘고 갈 정도로 무성했다. 된장찌개에 찐 호박잎은 별미였다. 호박잎 덕분에 넉넉한 저녁시간이었다. 많이 따도 호박잎은 그대로였다. 2층 계단 위 작은 텃밭에는 고추모종과 방울토마토도 무럭무럭 자랐다. 그런데 아빠를 닮은 나는 왜 꽃나무를 못 키우는지 의심스럽다. 집들이 선물로 키우기 젤 쉬운 산세베리아도 선인장도 금전수도 모두 저승으로 보냈다. 어느 날 배 모종을 선물로 받았는데 당연히 그 배 나무는 아빠께 선물을 했다. 2층 옥상에 모종을 심어 놓고 "아빠 잘 부탁해요~?"
배나무가 얼마나 자랐는지 확인차 왔지만 배나무는 변함없었다. 매번 배나무 잘 자라고 있는지 아빠께 전화 걸면. "야~야~ 진득하니 좀 기다리고 있거라 배가 금방 열리나~?" 하셨고 "난 빨리 배 먹고 싶으니 빨리 좀 키워보세요~" 하고 떼를 썼다. 그 해 겨울은 혹한이었다. 아빠는 비닐하우스처럼 만들어 주셨다. 겨울을 잘 이겨내고 봄 여름 잘 지내고 가을이 되니 잎이 무성했다.
아빠가 " 열매가 열렸다"고 해서 바로 달려갔다. 아주 귀여운 돌배라고 하셨다. 그리고 몇 달 후에 가니 더 이상 안 큰다면서 곧 따야겠다고 하셨다. 또 한 개가 열렸는데 아빠가 맛을 보니 떪더름 했다고 하셨다. 친정에 놀러 가니 화장대 위에 이미 배가 하나 있었다. 내가 올 줄 알고 미리 따놓으셨다. 아빠 먼저 드시라고 하니 한사코 안 드시겠다고 했다. 너무 작아서 ㆍ 그럼 아빠가 키운다고 고생하셨는데 맛이나 보시라고 배를 입에 갔다데었더니 한입 꾹 깨무시더니 "아~~ 따~~~ 맛~~ 조~~~ 오~~~ 타~~~" 하시면서 내 입으로 손을 내미셨다.
어느새 자란 석류나무는 담장을 넘고 쑥쑥 자라석류가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가을이 익고 석류도 익으면 아버지는 언제 석류를 땄는지 소쿠리에 담아 화장대 위에 올려두셨다. 모두 다 일가고 없는 저녁이면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시면서 석류껍질을 손으로 까서 빨간 석류알을 톡톡 꺼내어 손이 오므라질 정도의 알을 까서 입안에 쏙 털어 넣으셨다. 퇴근 후 큰방에 들어가면 아끼던 석류를 한 움큼 까서 내 손에 쥐어 주시면 나는 한 입에 톡 털어 넣는다. 달콤 새콤 석류를 앉은자리에서 한 개를 다 먹어버렸다. 그러면 아빠는 "막둥아~~ 아빠 아끼는 간식 다 먹으면 안된데이~" 웃으시면서 말씀하시면서"싫어요 저 다 먹을래요~"하면서 조금만 먹고 치웠다. 한 해 두 해 늘 석류를 따서 텔레비전 위에 따 놓으시고 아버지는 조금씩 입가심으로 드시고 남겨 두셨다.
어머니는 저녁 드신 후 드라마를 보시면서 심심풀이 땅콩처럼 석류를 까서 드셨다.
몇 해가 지났다.
그동안 애 키우느라 정신이 없어 석류나무에는 관심이 없었다. 어느 날 친정에 놀러 와서 보니 두 분이 주무시는 큰 방 창문에 햇볕이 들지도 않고 너무 어두웠다. 이 방은 햇살이 잘 드는 곳인데 이상해서 창문을 여는 순간 석류나무 가지가 훅! 방 안으로 들어왔다.
몇 년 무심했던 기간동안 이렇게 많이 자랐구나!
친정집이 재개발된다고 몇 년 전부터 동의서를 받았는데 몇 년이 지나도 재개발 소식은 없었다.
어느 날 석류나무 한 그루가 없어졌는데 한 그루는 큰 형부가 의성에 가서 심었다고 하셨다.(재개발 된다는 말에) 매일 두 그루가 있었는데 한그루만 우두커니 있으니 외로워 보였다.
그래도 석류나무에 석류는 많이 달렸고 아버지는 무섭고 위험해서 이제는 창문을 타 넘고 나가서 석류를 딸 수가 없어 저 꼭대기에 달린 먹음직한 석류는 입이 쩍 벌어져 그대로 썩고 있었다.
재개발이 확정되고 친정은 그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전세로 이사를 갔다. 이사 간 친정에 놀러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큰딸이 옛날 외가에 가보자고 해서 추억 많은 그곳을 지나치곤 했다.
두 딸은 여기다! 여기다! 하면서 지나쳤다.
어느 날 신랑한테 석류나무가 생각나서 가서 석류나무를 패 오자고 하니 신랑은 이제 그곳에 가면 안 된다고 했다. 그래도 한번 가보자고 해서 갔더니 어느새 바리게이트로 막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