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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명라 Sep 21. 2016

어머님께 드립니다.

1981년 엄마의 환갑날 아침에 쓴 시(詩)

어머님께 드립니다.


꿈결 속에서 들었습니다.  

당신이 밤을 두드리는 다듬이질 소리가  

골목길을 돌고 돌아  

동구 밖 정자나무 밑을 지나고  

밤하늘에 물무늬 되어 퍼져 나가던 것을    


그렇게 밤을 하얗게 지새우는 당신에게  

저는 입가에 조그만 미소를 보냈을 뿐입니다  

  

산새들 발자국 어지럽고  

별이 하나 둘 잠 깨던 숲 속  

나무동이 머리에 이고  

가시덩굴 헤치며  

높고 험한 아리랑고개 넘어 올 적엔  

소쩍새는 피맺힌 한을 울음으로 토하고  

달빛도 당신 발길에 차여  

파랗게 멍들어 버렸습니다.


한 뼘 보리밭 뙈기  

당신의 거친 손으로  

열두 생명 씨 뿌려지고 자라나던 곳  

바람처럼 지나버린 당신의 젊은 날을 대신하여  

저희들은 넓은 당신 가슴에 피어난  

자랑스러운 빨간 열두 송이의 꽃입니다.    


가슴이 울컥 미어질 듯  

당신을 향한 저의 사랑은  

당신의 깊은 주름살 속에서  

더욱 깊어만 가는,    


어머니 당신은  

그 열두 골짜기를 울리는  

영원한 메아리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푸른 나무로  

우리들 가장 가까운 곳에 머무르고 계십니다.





친정엄마와 재봉틀


일정시대, 그때 시절의 쌀 몇 가마니 값의 재봉틀을 혼수로 장만을 해서 시집을 오셨다는 친정엄마.

그 재봉틀로 인해서 시어머니인 할머니의 예쁨도 많이 받았다지만, 할머니는 철없는 시동생(작은 아버지) 편에 시집을 간 시누이(고모)들의 옷가지며 이불 홑청까지를 지게에 짊어 지워 우리 집에 보내면 엄마는 몇 날 며칠이고, 그 많은 빨래와 바느질을 다 마칠 때까지 방에 누워 빈둥거리는 시동생의 하루 세끼 밥까지 해줘 가면서 밤을 하얗게 새워가면서 재봉틀을 "돌돌돌..."돌려가면서 바느질을 해야 했다고 합니다.

우리 열두 남매들이 신다가 여기저기 구멍이 난 양말이며, 바지며, 속옷들을 일일이 기워 가며 물려 입히셨던  엄마. 저의 기억 속에서도 새 양말을 신었던 기억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한번 기운 자리를 또 기우고, 그 기운 자리가 떨어지면 그곳을 또 기우기를 몇 번. 그렇게 여러 번 기운 양말을 신으면 양말 바닥은 두툼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요.

우리 집, 언니 오빠들의 자취집, 그리고 외갓집 등 여러 집의 살림에 신경을 써야 했기에 피곤도 하셨을  엄마는 초저녁 잠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저녁밥을 드시고 나서, 그 밥상을 물리기도 전에 벽에 기대어 깜빡 잠에 드시거나, 아니면 꾸벅꾸벅 고개를 끄덕이며 졸기도 했으니까요.

그렇게 초저녁 잠이 많으셨던 엄마는 놀랍게도 새벽잠은 없으셔서 우리들이 한참 꿈나라를 여행하는 새벽녘, 아마도 새벽 2시쯤이면 일어나셔서는 그동안 바쁜 살림 때문에 미루어 두었던 떨어진 양말이나 옷가지들을 주섬 주섬 챙겨 들고 훤한 형광등 불빛 아래, 주르륵 누워 잠을 자는 우리들의 머리맡에 앉으셔서 손바느질을 하거나, 엄마의 혼수품으로 장만한 재봉틀을 "돌돌돌..." 돌리고는 했습니다.

가끔씩 그 재봉틀 소리에 잠에서 깨었던 저는 너무도 훤한 형광등 불빛에 가늘게 눈을 뜨고는 엄마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괜히 입가에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이내 단잠에 빠지곤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1981년 우리 엄마의 환갑날 아침, 엄마가 아버지보다 한살이 위라는 이유로 환갑잔치를 하지 못하고, 부천의 큰오빠 집에서 온 식구들이 모여 식사를 하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그날 아침 고3이라는 이유로 저만 지방의 우리 집에 남겨져 공부를 하다가, 엄마의 바느질하던 모습을 떠 올리며  우리 열두 남매에 대한 사랑을 거침없이 한 편의  시(詩)를 썼습니다.




라디오  생방송에 출연했던 이야기..


1983년도,  KBS 라디오 방송에 "안녕하세요? 황인용 강부자입니다"라는 인기 프로가 있었습니다.

지금 MBC 라디오 방송의 "여성시대"와 비슷한 성격의 프로그램이었지요. 장장 2시간이나 생방송으로 진행이 되는 프로였는데, 언제부터인지 "붓 한 자루에 내 마음 담아..."라는 코너로 30분 정도를 별도로 진행을 하였습니다.


전국의 아마추어 시인들이 자작시를 방송국으로 보내면 엄격한(?) 심사 끝에 하루에 한 명을 초대를 하여 잔잔한 배경 음악에 그 출연자가 자신의 시를 낭독을 하고, 황인용 씨와 강부자 씨가 그 자작시에 대한 이야기와 출연자의 여러 주변 이야기도 함께 나누는  그런 코너였습니다.

저는 겁도 없이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친정엄마의 환갑날 아침 지었던 자작시를 조금 갈고닦아 그 방송에 보냈습니다. 설마, 내 시가 채택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였고요.

그런데 그 시를 보낸 지 일주일도 안되어서 내일 당장 KBS 본관으로 아침 10시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나오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때 당시 저는 대학을 다니다가 휴학을 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다음날 저는 열심히 꽃단장을 하고 제 넷째 언니와 함께 안양에서 여의도를 경유하는 좌석버스를 타고 방송국을 향했습니다.

저 혼자는 방송을 하기에 너무 떨린다고 했더니, 넷째 언니도 함께 생방송이 진행되는 방송실에 들어갔지요.

드디어 5분 뉴스가 끝난 10시 5분, 배경 음악이 잔잔히 깔리면서 저는 떨리는 음성으로 저의 시를 낭송을 했습니다. 시의 중간 부분에서 감정이 격해져 왈칵 눈물이 쏟아질 뻔했지만 무사히 낭송을 마치고, 항상 방송으로만 만났던 황인용 씨와 강부자 씨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 열두 남매의 자라 온 이야기, 무남독녀 우리 엄마 고생하신 이야기, 그리고 형제간들의 우애 이야기...

나중에 강부자 씨가 제게 묻더군요. 형제간 중에 제가 제일 효녀냐고요, 당연히 아니라고 했지요. 우리 형제 모두가 효자, 효녀라고... 시간은 금방 흘러 마지막으로 강부자 씨가 저의 시를 낭송하면서 그 코너는 끝을 맺었습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형제들만 자취하는 집으로 돌아와서 다섯째 언니가 사무실에서 제가 출연한 방송을 녹음을 해서 두고두고 우리 형제들 모여 앉아 웃으면서 그 방송을 듣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그 녹음테이프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 방송에 출연했던 기억이 지금도 추억으로 남습니다.


사근 사근 하시던 황인용 아저씨, 그리고 마음이 푸근하신 이웃집 아줌마 같았던 강부자 아줌마, 그분들을 TV나 다른 언론에서 만나게 되면 그날의 기억이 떠 올라 홀로 웃음을 짓기도 합니다.


혹시 그분들에게 그때 당신들이 진행했던 라디오 방송에 출연했던 열두 남매 집의 열한째라고 하면 지금도 저를 기억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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