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KBS의 'TV 동화 행복한 세상' 담당자로부터 저에게 메일이 왔습니다. 저의 블로그에 실린 글을 TV동화에 소개하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메일을 주고 받으며 계약서를 작성하였고, 2006년 2월 2일에 'TV 동화 행복한 세상'에 '아궁이에 숨긴 신발'이라는 제목으로 저의 사연이 소개되었습니다. 그때 소개된 동영상을 얼마전에 우연하게 유튜브에서 발견하였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저의 블로그에 소개하였던 글과 동영상을 이곳에 소개합니다.
추운 날씨를 무릅쓰고 아버님께서 열심히 발품을 팔아서 구해 주신 집으로 1993년 3월 1일, 우리 가족들은 경기도 성남에서 경남 마산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처음 우리 가족이 이사를 온 집은 마산시 구암동에 위치한 2층짜리 양옥집이었습니다. 그 집에는 우리 가족을 포함하여 총 4가구가 살았습니다.
1층 안채에는 우리 가족이, 바로 옆방에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을 둔 40대 부부가, 2층에는 주인댁과 신혼부부가 크고 작은 사건을 만들면서 오손 도손 살았습니다.
마산시에 속한 우리 동네 바로 옆으로 흐르는 하천을 건너면 창원시 소계동이 위치하고 있어서, 하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산시와 창원시로 그 행정구역이 다르게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하천 건너 소계동에는 형님(시숙)네 가족과 손 위 작은 시누이네 가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작은 시누이 집 지하실에는 1992년 10월에 시작한 공장이 자리 잡고 있었고, 남편은 그 공장으로 곧 바로 출근을 시작했습니다.
낯선 고장에서 저는 옆 동네에 있는 형님과 작은 시누이의 도움으로 그리 어렵지 않게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매주 토요일 오후가 되면 차를 타고 1시간 거리의 경남 함안 시댁으로 향했습니다.
시댁으로 출발하기 전에 꼭 시장에 들러서 국거리와 찌개 거리, 시댁의 텃밭에서 나지 않는 야채를 샀습니다. 그렇게 시댁에 찾아가면, 어머님은 아침나절부터 집 앞 길목을 내다보며 우리 가족을 기다렸다면서 아주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하루 종일을 시댁에서 보내면서, 남편은 아버님의 밀린 농사일을 도와드리기도 하고, 집안 구석구석을 다니며 크고 작은 일을 스스로 찾아서 했습니다. 그리고 해가 저물어가는 일요일 저녁이면 이른 저녁식사를 끝내고 우리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선명한 풍경 하나는, 우리 가족들이 탄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한자리에 서서 오랫동안 손을 흔드시던 어머님의 모습입니다.
아직 두 돌도 안 된 딸과 100일 넘긴 지 얼마 되지 아들, 연년생 두 아이를 데리고 주말만 되면 꼭 치러야 할 연례행사처럼 우리 가족은 시댁을 찾아갔습니다. 손자와 손녀를 반갑게 맞아주시며 시어머니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좋아하셨습니다.
막내아들 가족을 항상 기다려 주시고, 더없이 반겨 주시고, 아주 작은 무엇 하나라도 더 챙겨 주시려 하시는 시부모님의 사랑 때문에, 저는 그렇게 시댁을 찾아가는 일이 당연한 일인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일요일 저녁 어슴푸레하게 어둠이 내리는 시간에 우리 가족들이 마산의 집으로 오기 위해 마당에 내려섰을 때, 토방 위에 있던 제 신발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신발은 남편과 제가 결혼을 준비할 때 신혼여행길에 신으려고 산 아주 편한 운동화였습니다.
제가 두 아이를 임신하여 몸이 무거워졌을 때에도, 빗길에도 미끄러지지 않아서 2년을 넘게 즐겨 신었던 까닭에 많이 낡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주 편해서 여전히 제가 즐겨 신던 신발이었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토방 한쪽에 가지런하게 놓여 있던 것을 확인했는데, 어느 사이에 감쪽같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었습니다. 한 짝도 아니고 한 켤레가 한꺼번에 사라진 것에 대해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뒤꼍과 마당 곳곳을 찾고 다니는 저에게 어머님은 날이 어두워지니 어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마루 밑에서 어머님의 신발 한 켤레를 꺼내 주시면서 그 신발이라도 신고 가라며 자꾸 저의 등을 떠밀었습니다. 저의 발보다 어머님의 발이 적었던 탓에 어머님의 신발은 뒤꿈치를 구겨 신어야 했습니다.
어머님은 신발을 잃어버렸으니 새 신발을 사는데 보태라면서 기어코 오만 원을 저의 가방에 넣어 주시면서 "어두운 밤길에 단디 해서 가거라"하셨습니다. 그날 어떻게 된 영문인지 도무지 감을 잡지 못하고 우리 가족은 우리 집을 향해 황망하게 떠나왔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소리 없이 사라졌던 제 신발의 행방을 부산에 살고 있는 손 위 큰 시누이에게서 듣게 됐습니다.
토방 한쪽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며느리의 낡은 운동화가 못내 눈에 밟혔던 어머니는, 급기야 그 낡은 운동화를 작은 방 아궁이 속에 숨겨 버렸다고 합니다. 잃어버린 운동화를 찾아서 집안 곳곳을 누비는 며느리에게 행여 숨겨 놓은 운동화가 발견될까 봐, 잃어버린 신발은 그만 찾으라며 당신의 신발을 구겨 신고 가도록 등을 떠밀었고, 또 새 신발을 사 신으라며 당신의 속주머니를 털어 오만 원을 기어코 주신 것이었습니다.
어머님은 우리 가족이 차를 타고 떠나자 우리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한자리에 서서 지켜보다가 집으로 들어와 곧바로 큰 딸에게 전화를 하셨더랍니다.
며느리의 낡은 운동화를 보는 순간, 당신도 모르게 마음이 짠해졌다면서 "갸가 요즘 아가 아니더라"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큰 시누이에게서 일련의 과정을 전해 들으면서, 저에 대한 어머니의 마음씀에 한쪽에서 뜨거운 무엇인가가 갑자기 치솟아 올라 한동안 말문이 막혀 버렸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주신 돈으로 결국 저의 새 신발을 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토요일 오후에 우리 가족이 시댁을 찾았을 때 어머님은 당신이 준 돈으로 산 며느리의 새 신발을 보면서 얼마나 기뻐하시던지요.
마치 당신이 새 신발을 사 신은 것보다 더 즐거워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