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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명라 Aug 05. 2021

넷째 오빠의 '집으로 가는 길'

산서면 외갓집에서 10km 떨어진 우리 집으로  걸어서 온 길

가족 카페 게시판에 올려진 여러 글들을 읽다 보니, 저의 넷째 오빠의 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제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일이어서 더 흥미로웠고, 저의 기억에는 없는 외할아버지의 모습도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은  내가(넷째 오빠) 태어난 이후 기억되는 최초의 사건을 환갑이 넘은 나이에 정리해봅니다.


계절은 논, 밭에 모와 채소들이 뜨거운 햇볕을 받으면서 성장의 경쟁을 하는 한여름 철로 생각됩니다.

철없던 5살 나이에 여러 차례 어머니를 따라다니던 산서 외갓집에 형제들과 떨어져서 혼자 남겨졌습니다.


며칠 동안 외갓집에 있었는데, 그날따라 점심을 먹고 외할아버지는 논으로 나가시고, 외할머니는 미영밭(무명 밭, 목화밭)으로 나가신 때입니다.


오후 4시에서 5시가 되는 시점에 무료하고 심심함을 느꼈고, 오수 남신동 집 골목에서 놀던 생각도 나고, 어머니 아버지 보고 싶은 생각도 났습니다.


무작정 오수 집을 향해 외갓집을 나섰습니다. 혼자서 백제 고개를 넘고, 산서에서 오수로 방향을 잡고 걷고 있었습니다. 5살의 어린 나이였으니 천천히 걸었겠지요.


영천을 지나 지시랭이 앞쯤 지나는 데 뒤에서,

"너 이놈 어디 가냐?" 하고 소리가 들려서  "오수에 가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오수는 왜 가냐"라고 또 묻길래,

"우리 집에 가요"하고 대답했더니,  

"하~ 고놈 맹랑하네"하면서  "다리가 아프니 내 옆에 앉아라"하면서 나를 들어서 소구루마(소달구지)에 앉힙니다.


소구루마(달구지)는 장독을 가득 실었고, 말 수레(달구지)는 장작을 잔뜩 실었습니다.

기억을 해 보니, 5일장을 보러 다니는 사람들이었고, 수레에는 앉아 갈려고 좁은 공간을 남겼던 자리에 나를 앉혔습니다.


어린애가 먼 길을 가는 데 길을 잃었다는 생각도 들터인데, 멀리서 부터 지시랭이 앞에서 추월할 때까지 주저 없이 곧장 가는 데다, 오수 집에 간다는 말에 길을 잃었다는 의심은 없었나 봅니다.


지사를 지나 오수 방향 비포장의 가파른 언덕이 나타납니다.


아저씨는 소가 힘들어하니 소구루마에서 내리랍니다.

내려서 고개를 걸어 넘어오는 데,  말이 힘에 겨워 휘청거리며 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 나더니 도로 옆으로 뒤집어집니다. 장작이 흩어지고 말은 수레에 매달려 일어나지도 못합니다.


어린 나이에 겁도 나고 무섭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다행이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장독 실은 소구루마가 아니고, 장작을 실은 말수레가 뒤집어졌으니 장독이 깨지지 않아 다행이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어린 나이에 거들 형편도 안되고 해서 계속 걸어 오수 남신동 집에 도착했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는 부엌에서 불을 때며 저녁밥을 짓고 있는 중에  "어떻게 왔느냐"라고 묻기에

"그냥 걸어왔다"는 데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십니다.  5살 꼬맹이인데도 믿음이 있었나 봅니다.


집에 도착해서 10여 분 지난 즈음,  순경이 자전거를 타고 남신동 집으로 들어오더니 어머니에게 묻습니다.

 

"여기, 혹시 산서에서 온 어린애 없습니까?"


어머니 대답이,

"아, 여기 야가 산서에서 방금 왔구먼요"


순경이 "그러면 다행이구만요. 지금 산서에서 어린애가 없어져 우물을 살펴보아도 없고, 온 마을을 찾아봐도 안 보여서 늑대가 물어갔는가 찾아달라고 산서 지서에 신고를 했고, 혹시 집이 오수니 오수 지서에 연락해서 남신동 집에 가보라 해서 왔다"고 이야기합니다.


어머니는 바가지에 물을 떠서 순경에게 권하니 물도 마시지 않고 빨리 지서에 가서 산서 지서에 전화 연락해야 한답니다. 외할아버지가 산서 지서에서 애타게 기다리고 있답니다.


그때는 별 다른 생각이 없었으나 철이 들어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 당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어린애를 잃어버리고  긴 시간 얼마나 당황해하셨을까?


5살 어린 외손자를 찾아 우물과 뒷산과 온 동네를 헤매시고, 산서 지서에서 오수 지서까지 수소문한 외할아버지 할머니를 생각해 보면,  나는 사랑을 흠뻑 받은 행운아입니다.



산서면 외갓집에서 오수면 우리집까지 거리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10km가 넘는 길을  5살 어린 나이에 걸어서 찾아 온 넷째오빠가 정말 대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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