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아버지로 인해서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한 씨라면 진절머리가 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죽어서까지 한 씨들 선산에는 절대로 가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나중에 당신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꼭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곁에 묻어 달라고 하셨습니다.
무남독녀인 친정엄마는저의 기억 속에 그 모습이 남아있지 않는 외할아버지와저의 초등학교 4학년 때 세상을 떠나신 외할머니를 합장을 하는 작업을 하며당신의 친정 선산을 돌보고 가꾸는 일에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죽어서는 절대로 한 씨 귀신이 안 되겠다고 호언장담을 하셨던 그런 엄마가 지금 아버지 곁에 잠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아버지 곁에 묻히셔야 우리 열두 남매에게 좋다는 한마디 때문이었습니다.
2010년 6월,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전북 삼계에 있는 선산에 묻히셨습니다. 그때 다리가 많이 불편하셔서 그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엄마.
큰 오빠는 아버지 장례식이 끝나고 나서 그랬습니다.엄마가 가시고자 하는 김 씨 집안의 외갓집 선산과우리 한 씨 집안의 선산이 거리상으로도 20여 km나 떨어져 있어서 우리들이 자주 찾아뵙기에 어려운 점이 많으니까
다음에 엄마께서 세상을 떠나시면 그냥 엄마도 아버지 곁에 모셔야겠다고요.
그때 옆에 있던 제가 그랬지요,절대로 그래서는 안된다고요. 엄마께서 평소에 아버지 곁에 절대로 묻히지 않겠다고 그렇게 단호하게 말씀하셨는데엄마의 동의를 얻지도 않고 아버지 곁에 모시면 안 된다고요.
그러면 엄마를 어떤 방법으로 설득을 해서 동의를 받아야 하는지가 우리들에게는 가장 큰 숙제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치고 친정집으로 돌아왔을 때엄마께 장례식과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마친 후,큰오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엄마! 그런데 아버지 옆에 있는 산소자리가 명당이어서엄마가 나중에 세상을 떠나시면 그 자리에 오셔야 우리 자식한테 아주 좋다고 하던데요?"
"그러냐? 내가 그 자리로 가야 너희들한테 좋다고 하더냐?"
"네~"
"그러면 그렇게 해야지 별 수 있냐~"
몇십 년 동안 입만 열면 나는 죽어서 절대로 너희 아버지 곁에 묻히지 않을 거라고,당신의 친정부모님 곁으로 갈 거라고 하시던 엄마.
엄마께서 돌아가신 후 장례식이 이루어지던 날, 엄마는 평생 한 번도 타보지 못한 커다란 리무진을 타고 마지막으로 친정집을 둘러보러 오셨습니다.
당신이 그토록 좋아했던 친정집 안방을 영정사진으로 둘러보고 당신의 손으로 가꾸었던 집 근처의 텃밭도 둘러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다시 찾아볼 수 없는 당신 친정부모님이 잠든 선산.
저는 외갓집 선산을 찾았을 때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울컥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너무나 깔끔하게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합장된 산소가 잘 정돈이 되었기 때문입니다.그리고 바로 그 옆자리에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곁에 묻힐 거라는 엄마의 굳은 의지를 보여 주는 듯엄마의 가묘가 자그마하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당신 친정부모님 곁으로 가겠다고 굳게 다짐을 했으면서, 실제로 가묘까지 만들면서 굳게 의지를 다졌던 엄마가그 소망을 너무나 쉽게 스스로 포기해 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아버지 곁에 묻히면우리 열두 자식에게 좋다는 큰오빠의 거짓말에한치의 의심도, 망설임도 없이 "그러면 너희 아버지 곁으로 가야지"
우리 열두 남매를 위해서는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그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엄마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친정집 안방, 2013년 2월 19일, 당신이 그토록 좋아했던 공간과 이별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잘 관리가 되어 있어서 더 마음이 아팠던 엄마의 친정부모님 산소(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