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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명라 Sep 12. 2016

"나다~ 잘 있냐?" 다시 들을 수 없는 목소리

이제는 더 이상  엄마의 따뜻한 목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2013년 2월 17일 일요일 오전 8시 50분,  친정엄마께서 쓰러지셨다는 셋째 오빠의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엄마께서 돌아가셨다는 문자가 왔습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소식이라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셋째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엄마는 평소처럼 아침 식사도 잘하시고, 드시는 약도 잘 챙겨 드시고, 간식도 드신 후 셋째 오빠와 활기찬 목소리로 안부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그날이 마침 일요일이어서, 일요일이면 원불교 법회에 참석하는 셋째 오빠에게
"오늘 교당에 가서 마음공부 잘하거라~" 하신 엄마의 말씀이 유언이 되었습니다.
 

거실에서 그렇게 전화를 마치고, 앉으신 채로 안방 문턱을 넘어가시다가, 갑자기 스르르 뒤로 넘어가시는 엄마를 요양보호사가 뒤에서 가슴으로 안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10분쯤 지난 후 엄마는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셨다고 합니다.


그래도 요양보호사가 엄마께서 쓰러지자마자 제일 먼저 엄마가 다니시던 산서 원불교 교무님께 전화를 한 덕분에 곧장 달려오신 교무님이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엄마를 위해 열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새로 산서 원불교 교당으로 발령을 받아 오신 교무님은 하루 전날 엄마를 두 번째로 뵈었는데, 엄마가 밝고 쾌활한 목소리로 "올해로 원불교가 98년이 되었는데, 열심히 운동을 해서 건강해진 몸으로 꼭 100년 행사에 참석하겠다"라고 약속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사람인 것처럼, 교무님은 엄마와의 세 번째 만남에서 열반 기도를 드려야 했습니다.


운동하고 건강해지겠다던 엄마가 그렇게 떠나셨습니다

엄마는 2012년 8월, 화상을 입고 전주병원에 입원을 하기도 했고, 병원에서 퇴원한 후에는 수원에 있는 요양원에 1개월 보름 정도 계시기도 했습니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언제 어느 때에 엄마께서 돌아가실지도 모른다고 우리 열두 남매들은 각자 마음의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리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엄마께서 너무나 편안하고, 고통 없이 떠나셨다는 이야기에 저희들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마음의 위안을 삼아 봅니다.


장례식을 치른 후, 친정집 안방에 들어오니, 평소 엄마께서 기도를 하시고 책을 보시던 상 위에 원불교 교전이 놓여 있습니다. 엄마가 보시던 교전에는 그만큼 읽으시고 표시를 해 둔 것인지 연필 하나가 얌전하게 꽂혀 있습니다. 엄마의 손길이 느껴져 왈칵 눈물이 솟구칩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책을 읽고 연필을 꽂아 둔 엄마


그리고 텔레비전 옆 편지봉투 속에 엄마의 필적으로 쓰인 종이 한 장이 있습니다. 조심스럽게 꺼내 보니, 그 많은 자식들과 손자·손녀, 그리고 사위·며느리, 증손자·증손녀의 이름과 생년월일시가 또박또박 적혀 있습니다.
아마도 그해 2013년에도 한 해 동안 종이에 적어 놓은 자식들을 위해 기도를 하시려고 새롭게 작성하신 듯합니다.


2013년 2월 새롭게 작성된 자식들의 기도 명단


엄마는 100년 전, 무남독녀로 이 세상에 오셔서 5남 7녀 열두 남매 낳으시고 기르시고 가르치 그 모진 세월 살아내시느라 참으로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당신이 낳은 열두 자식과 열두 명의 사위와 며느리, 그 많은 손주, 손녀들을 위해서 매일 새벽이면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셨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우리들은 엄마의 지극한 기도를 볼 수 없습니다.

제가 언제라도 전화를 걸면 "여보세요? 누구냐? 명라냐?" 하고 반갑게 들려주던 엄마의 목소리.


어느 순간 전화를 걸어  "나다~ 아이들은 잘 있냐? 홍 서방은 건강하냐?" 하고 따뜻하게 안부를 물어주던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엄마께서 평소 말씀하시던 대로 다음 생에는 부디 남자로 태어나셔서, 그렇게 소원했던 공부를 원도 한도 없이 많이 하시고, 우리 열두 남매 다시 당신 곁에 불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엄마! 당신이 저의 엄마여서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이 세상 사는 날까지 엄마에게 부끄럽지 않은 딸로 당당하게 잘 살겠습니다.  넓은 사랑으로 길러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고, 당신을 영원히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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