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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명라 Feb 27. 2018

친정엄마와 식은 밥 한 그릇

제가 손이 커서 그런 것은 아니고, 모자라는 것보다는 조금씩 여유가 있는 것이 좋을 듯하여 넉넉하게 밥을 짓다 보니 끼니마다 식은 밥 한 공기 정도가 남게 됩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식사를 할 때마다 식은 밥을 차지하는 사람은 우리 가족 중에서 꼭 제가 됩니다.

지금이야 옛날과 달라서 전자레인지에 넣고 2분 정도 덥면 식은 밥 같지 않고 금방 지은 따끈따끈한 밥처럼 느껴지지만, 그래도 가끔 유혹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전기밥솥의 뚜껑을 열고 이제 막 지은 새 밥 주걱으로 살살 펴서 식구들 각자의 밥그릇에 퍼 담을 때, 그 특유의 맛있는 밥 냄새로 하여금 랩을 씌운 채 싱크대 한편에 놓여 있는 식은 밥 애써 외면하고 저 또한 새로 지은 밥을 먹고 싶은 유혹을 느낍니다.

정말 어떨 때에는 "어차피 지금 이 새 밥도 식은 밥이 될 터, 그냥 고슬고슬하고 맛있는 밥 냄새를 풍기는 새 밥을 먹어 버리자"하는 생각에 저의 밥그릇에 새 밥을 풀 때도 있습니다.

예전에 시댁에일반 전기밥솥 보온으로 떨어지면 식은 밥을 얹었다가 밥을 차릴 때면 제일 위에 얹은 식은 밥은 며느리인 저의 밥으로 뜨고, 그 밑에 있는 새 밥은 시부모님 밥그릇에 푸고는 했습니다.

그럴 때 잊지 않고 생각나는 친정엄마와 식은 밥 한 그릇.




고향 오수에서 5일마다 열리는 장날이거나, 특별한 볼 일이 있어서 남원이나, 전주를 가기 위해 시외버스나 기차를 타려면 제가 살던 오수까지 나와야 했던 큰집 식구들이나 작은집 식구들,
그리고 기찻길 옆 용정리 밭을 한참 더 지나서 살고 있던 고모네 식구들까지 아무런 사전 연락도 없이 우리 집을 찾아오는 일이 허다했기에 때를 위해서 엄마는  밥 한 그릇쯤은 여유 있게 지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 하루 밤 묵어 가기를 청해오던 소쿠리 장사 아줌마, 여수에서  건어물 장사 아줌마, 제주도에서 왔다는 유채꿀 장사 아줌마도 있었기에 언제나 밥 한 그릇더 지어야 했습니다.

남겨진 여분의 밥 한 그릇은 뚜껑을 덮어 겨울이면 따뜻한 아랫목 이불속에 묻어 두거나 가마솥에 물을 붓고 그 속에 밥그릇을 넣어 군불을 때서 따뜻하게 데워 예고 없이 찾아온 손님에게 뒤늦은 저녁상으로 차려 드리기도 했고,

봄이나 가을에 뚜껑이 덮인 채로 부뚜막 한 자리를 떡~하니 차지한 밥 한 그릇의 풍경은 지금의 저에게 너무도 숙한 기억입니다.

그 식은 밥이 예고 없이 찾아 올 주인을 만나지 못한 경우에는 따끈하게 새로 지어진 밥으로 밥상을 차려 안방에 들여놓고서 맨 나중에 방으로 들어오신 엄마의 차지가 되어야 했습니다.

가마솥에 삭달가지나 갈퀴나무, 아니면 장작불을 때어 지은 맛있는 밥 냄새가 솔솔 나는 새 밥이 아닌, 지금처럼 전자레인지를 돌려 따끈하게 덥힌 새 밥 같은 식은 밥이 아닌, 그냥 보리가 반이나 넘게 섞인 보리밥이었습니다.


지금 생각을 해 보면 그 시절의 식은 밥은 보리밥이었기에 그 맛이 지금의 쌀밥과는 판이하게 다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언제나 식은 밥은 엄마의 차지가 되어 엄마도 그 식은 밥을 드실 때마다, 혹은 새 밥을 밥그릇에 퍼 담을 때마다 지금의 저처럼 식구들과 함께 새 밥을 먹고 싶다는 유혹을 가끔 느끼지는 않았을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들고는 합니다.


2003년 7월 29일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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