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6일은 딸아이의 29번째 생일이었다. 나는 우리 가족의 생일상에 화려하고 거창한 음식을 차려 놓지는 않지만, 언제나 변함없이 빠트리지 않고 준비하는 나물 세 가지가 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매월 음력 초사흘(3일)이 되거나, 자식들의 생일날이 되면 안방 윗목에 상을 차려 놓고 두 손을 앞으로 모아 기도를 했다. 두 손바닥을 모아 합장한 채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할 정도의 낮은 목소리로 기도를 드리던 엄마의 모습은 우리 집에서는 매우 익숙한 풍경이었다.
매일 새벽이면 왕복 1시간이 넘는 거리를 오고 가며 새벽 기도를 했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아침밥을 짓기 위해서 부엌으로 나가면 가장 처음으로 우물에서 길어 올린 물을 사기그릇에 담아 부뚜막에 올려놓고 또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숙이며 기도를 했다.
당신의 열 두 자식 모두 건강하고 무사하게 잘 자라게 해 달라고, 하고자 하는 일이 뜻하는 대로 원만하게 잘 되게 해 달라는 기도를 엄마는 지치지도 않는지 하고 또 했다.
물론 엄마가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마냥 기도만 올렸던 것은 아니었다. 그 기도와 함께 다른 엄마들보다 더 늦은 시간까지 밭일을 해야 했고, 혼자되어 치매에 걸린 외할머니도 자주 찾아뵈어야 했고, 고향집에서 100여 리 떨어진 전주까지 4명의 아들들을 기차 통학을 시키기 위해서 14년 동안 새벽밥을 지어야 했다.
그런 엄마께서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나에게 이야기해 주는 기회가 있었다.
1991년 8월 6일, 내가 딸아이를 낳았을 때, 엄마는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면 그 사람을 위해서 7일마다 7번, 49 천도재를 지내주듯이 세상에 태어난 아이의 무사함을 위해서도 7일마다 7번에 걸쳐 이레를 차려 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때 당시 경기도 안양에 살고 계셨던 엄마는 매주 7일만 되면 이것저것 시장을 봐 가지고 잠실 석촌동 반지하의 우리 집으로 오셨다. 그리고 당신 손으로 여러 가지 나물과 떡, 음식을 장만하여 안방 윗목에 상을 차려 놓고, 오랫동안 보아왔던 엄마만의 모습으로 기도를 올렸다.
어린 외손녀가 아무 탈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게 해 달라는 내용의 기도였다. 나에게도 엄마처럼 차려놓은 상앞에서 기도를 하라는 엄마의 말에 나는 저 어느 세상을 향해, 보이지 않는 그 누군가를 향해서 우리 가족에게 복을 달라고, 건강하게 해 달라고 기도를 올리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다.
그때 엄마는 내게 이런 말을 하셨다.
"나는 너보다 훨씬 어린 18살 나이에 시집을 와서 20살에 자식을 낳았느니라. 지금 너보다 적은 나이에도 자식을 위해서 기도를 했는데, 기도하는 것이 무슨 부끄러운 일이라고 못한단 말이더냐? 에미가 자식을 위해서 못할 일이 무엇이 있다더냐?" 하고 나무라듯이 말씀하시고는 상 위에 차려 놓은 나물에 대해서도 알려 주셨다.
"나는 매월 초사흘날이나 너희들 생일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상에 무나물을 빼놓지 않고 올린다. 무나물은 '무병장수'하라는 뜻이 있단다. 자식들이 아프지 않고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도록 해 달라는 마음이 담겨 있단다. 또 호박 나물이나 오이나물은 자식의 앞날에 아무 막힘이 없이 성공하게 해 달라는 뜻이 있다. 호박넝쿨이나 오이넝쿨을 보면 그 줄기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잘 자라지 않더냐? 그래서 나는 무나물, 호박나물, 오이나물 세 가지를 생일상에 차려 놓는다. 그중에서도 무나물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빠트리지 않는단다."
그때서야 나는 엄마가 생일상에 차려 놓은 나물 한 가지에도 오로지 자식들 앞날에 대한 정성과 걱정하는 마음을 담았구나 하는 마음 한 편이 뭉클해져 오는 것을 느꼈었다.
다음 해인 1992년 11월 1일에 내가 연년생으로 아들을 낳았을 때에도, 아들을 낳은 지 7일째 되는 날이면 엄마는 어김없이 안양에서 성남까지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서 당신의 정성이 담긴 무나물과 호박나물, 오이나물을 상에 차려놓고 외손자의 건강과 순탄한 앞날을 위해 기도하셨다.
당신 슬하에 둔 열두명의 자식과 서른 명의 손자, 손녀들. 엄마는 그 많은 자손들 어느 한 사람도 소홀하게 빠뜨리지 않고 모두를 위해 마음을 다하여 기도를 해 주었다.
아마도 엄마의 그런 정성 어린 기도가 있었기에 평소 엄마의 말씀대로 열 두 자식이 손가락 하나, 발가락 하나 다치지 않고 지금까지 온전하게 잘 자랐는지도 모른다.
친정엄마께서 나에게 세 가지나물에 담긴 뜻을 일러주신 지 29년이 지났다.
이제 나는 엄마께서 우리 열 두 남매와 손자, 손녀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정성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지만 감히 엄마의 정성을 흉내 내어 본다.
지금도 나는 두 아이의 생일상과 남편의 생일상에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께서 알려 준 세 가지 나물만은 빠트리지 않고 올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엄마의 정성만큼 깊고 넓지는 않지만 기도하시는 엄마의 모습을 흉내 내어 거실에 생일상을 차려 놓고 두 손을 모아 기도를 올린다.
엄마의 이야기처럼 에미가 되어 자식의 건강과 성공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인들 못할까?
지금 나에게도 엄마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무나물을 맛나게 볶아 엄마의 생일상 한가운데 올려놓을 텐데... 미역국도 맛나게 끓이고 생선도 굽고 불고기도 볶을 텐데... 그리고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엄마 생일 축하합니다~'노래를 큰소리로 불러드릴 수 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