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곳은 내가 태어나서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살았던 동네로 고향의 중심에서 약간 벗어난 동네였고, 다른 한 곳은 고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살았던 고향의 국민학교 앞에 위치하고 있는 뾰족 지붕의 2층 집이었습니다.
내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내던 동네에는 지적 능력이 많이 모자라서 국민학교에도 입학을 하지도 못한 남자아이가 있었습니다. 나보다 나이가 서너 살은 더 먹었으리라 생각이 드는데, 그 아이는 형과 누나도 있고 여동생도 있었는데, 특히 이란성쌍둥이 여동생도 있었습니다.
쌍둥이 여동생은 오빠의 지능을 다 가져갔는지 또래들보다 똑똑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가족이 사는 집은 동네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오며 가며 집안을 모두 들여다볼 수 있는 길가에 살고 있는, 찢어질 만큼 어려운 집안 형편이었기에 쌍둥이 여동생은 국민학교는 입학을 했지만 졸업은 하지도 못하고 대처로 돈을 벌러 가야 했습니다.
그런 형편인데도 그 집 엄마는 언제나 추석이나 설날이면 아들의 손에 돼지고기 한 근을 들러서 우리 집에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살코기보다 두터운 비계가 더 많았던 돼지고기. 푸르스름한 도장이 콱 찍혀서 신문지에 싸여 있던 돼지고기 한 근.
신문지에 싼 돼지고기를 그 아이가 우리 집에 가져올 때마다 엄마는 '뭐하러 또 돼지고기를 가지고 왔냐'라고, '다시 가져가거라'라고 해도 그 아이는 엄마의 심부름을 완수하겠다는 의지인지 돼지고기 한 근을 우리 집 마루 위에 올려놓고 후다닥 대문 밖으로 뛰쳐나가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어려운 형편에 뭐하러 이렇게 챙기는지 모르겠다'라고, '자기 아이들이나 먹이지 그런다'라고 걱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해마다 명절이면 그런 일이 반복되기에 어린 나는 엄마에게 왜 그 집 엄마가 우리 집에 돼지고기를 보내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 사연인즉,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그 아이의 엄마가 쌍둥이를 임신한 몸으로 우리 집에 찾아와서 우리 아버지에게 취직자리를 부탁했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농협에 다니시던 아버지는 '가족에게는 빵점, 남에게는 100점'이라고 엄마의 입에 오르내릴 만큼 가족에게는 성실하지 못했지만, 주변 사람이나 동네 사람들에게는 능력이 많은 사람으로 인정을 받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고향에서 내로라하는 유지들 중에서 알고 지내는 사람도 많았던 까닭에 고향의 제일 큰제사공장에 그 엄마를 취직을 시켜 주었답니다. 그때 당시 고향의 제사공장은 주변 지역에 거주하는 많은 아가씨들의 일터였고, 우리 고향이 군소재지가 아닌 면소재지이면서도 군소재지 보다 더 번화하고 잘 사는 고장이 될 수 있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께서 제사공장에 취직을 시켜 주셨다는 이유로, 그때의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그 아이의 엄마는 추석과 설날이면 돼지고기 한 근을 우리 집에 선물로 보냈던 것입니다.
그 후 그토록 경기가 좋았던 양잠업이 점점 쇠퇴하게 되어 고향의 제사 공장도 인원 감축이 단행되면서 그 아이 엄마도 제사공장을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제사공장을 그만둔 후에도 그 엄마는 명절이 되면 우리 집에 돼지고기 한 근을 보내는 것을 몇 년이 지난 후에도 한참 동안 잊지 않았습니다.
정작 자기 가족들은 돼지고기 한점 마음 놓고 먹지 못할 형편이면서도 명절이 되면 돼지고기 한 근을 보내던 그 엄마의 마음을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두고두고 생각을 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부위만 골라 살 수 있는 지금의 돼지고기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두터운 비계가 반이나 차지했던 그때의 돼지고기가 그 시절 왜 그렇게 맛이 있었는지 그 엄마의 마음을 생각하면 그 맛의 깊은 의미를 알듯 합니다.
적지 않은 자식들과 넉넉하지 않은 살림살이에 돼지고기 한 근은 결코 쉬운 선물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아이 손에 들러 보낸 돼지고기 한 근은 그 시절 어떤 선물보다도 값지고 소중한 선물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지금은 굴뚝만 남은 고향의 제사공장..
지금의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누군가에게 베풀었던 선물이나 나눔이 있다면 그 사실들을 애써 잊어버리려고 노력합니다. 만약 그 나눔에 대하여 생색을 내고 싶다면 아예 나눔 자체를 하지 말자고 생각합니다.
그냥 내가 나눔을 할 수 있음에, 그 위치에 있음에 감사하자는 마음으로 실천하자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로부터 받은 나눔이나 선물, 배려가 있다면 그것들을 나에게 나누어 준 사람의 따뜻한 마음과 더불어 오래도록 잊지 않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렀다고 해도 그 사람이 준 선물을 사용하거나 볼 때마다 그 사람의 따뜻한 마음과 고마움도 함께 기억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그 따뜻한 마음과 고마움을 언제, 어느 때라도 다시 돌려주고자 노력합니다.
지난해와 올해 코로나로 인해 많은 분들이 말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어려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어려움 속에서도 어느덧 2021년 한 해가 저물어가는 12월입니다.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주변 사람들로부터 따뜻한 마음을 나누어 받은 순간도 있었겠지요?
그 따뜻한 나눔을 오래도록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가끔씩 지치고 힘이 들 때, 그 나눔이 어려움쯤은 쉽게 떨치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