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성격 자체가 무척 긍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똑같은 상황을 앞에 두고 "나는 할 수 없어.", "만약 실패하면 어떻게 하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어차피 실패할 텐데..."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기보다는, "나는 할 수 있다.", "만약 실패를 하면 다음에는 더 잘하면 되지..", "하지도 않고 후회하기보다는 일단 한번 해 보자.", "호랑이가 열두 번 물어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산다."하고 자기 스스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엄마의 앞에 그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도 몸으로 부딪치며 헤쳐 나가는 긍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주변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그 사람을 무조건 의심부터 하기보다는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보고 신중하게 판단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면을 보려고 애써 노력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엄마에게는 5명의 아들이 있다 보니 며느리도 5명이었습니다. 어떻게 5명의 며느리 모두가 엄마의 마음에 흡족할 수 있겠는지요? 하지만 엄마는 며느리들 각자의 장점만을 이야기하려고 무던히 노력했습니다. 행여 딸들이 모여서 올케언니가 어떻고 하면서 흉이라도 보려고 하면, 그런 말 하지 말라고 말도 못 꺼내게 하시면서 며느리들의 장점만을 이야기하셨습니다.
큰며느리는 없는 살림에 절약하는 모습이 좋고, 금방 뚝딱하고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내는 솜씨가 좋다고 했습니다.
둘째 며느리는 친정에서 외동딸이라고 귀하게 커서인지 주변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하는 칭찬하는 말솜씨가 좋다고 했습니다.
셋째 며느리는 어떤 일에 닥쳐서 무서워하지 않고 얼른 달려들어서 후다닥 해치우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넷째 며느리는 알뜰하게 절약하는 모습과 이런저런 불평 없는 차분한 모습이 좋다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며느리들 생일이 되면 작은 선물(속옷이나 미역)이나마 챙겨 주려고 노력하면서 잊지 않고 봉투에 얼마간의 용돈을 넣어 주시고는 했습니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저는 마음 한편으로 우리 엄마는 우리나라 보통의 시어머니들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했고 그런 엄마의 모습이 자랑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저의 바로 위 막내 오빠의 결혼식 때 큰일이 터져 버렸습니다. 제가 오빠보다 먼저 1991년 3월에 결혼을 했는데, 오빠는 한동안 결혼을 하지 않은 채로 지내고 있어서 엄마는 빨리 막내아들을 결혼시켜야 한다는 걱정을 하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그때 당시 같은 안양에 살고 있는 둘째 오빠가 같은 교회에 다니고 있는 아가씨를 막내 오빠에게 소개를 해 주었습니다. 막내 오빠는 소개를 받은 아가씨가 마음에 들었는지 아가씨와 좋은 감정으로 만나면서 일요일이면 둘째 오빠와 아가씨가 다니는 교회의 예배에도 몇 번 참석도 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제가 이곳 브런치에 둘째 오빠에 대한 글도 쓰겠지만, 둘째 오빠는 우리나라 웬만한 개그맨도 당해내지 못할 만큼 행동도 말솜씨도 유머 감각이 풍부했기에 우리 열두 남매들이 어려운 환경에 처할 때에도 둘째 오빠 덕분에 즐겁게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또 열두 남매 중에서 엄마 집에서 가장 거리가 가까운 안양에 살고 있어서 특별한 일이 없어도 엄마를 자주 찾아뵙고 안부를 확인하기도 하고, 용돈과 생활비도 가장 많이 드리는 효자 아들이었습니다.
그런 둘째 오빠가 자신이 소개해 준 아가씨를 막내 오빠가 마음에 들어하고 또 교회 예배에도 참석을 하니까 무척 기분이 고무되었나 봅니다. 둘째 오빠는 자신의 특유한 유머감각이 섞인 말로 호기롭게 막내 오빠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가 소개해 준 아가씨하고 결혼을 하면 축의금을 100만 원을 할 것이고, 그 아가씨와 우리 교회에서 결혼을 하면 축의금 200만 원, 그 아가씨와 우리 교회에서 우리 목사님을 주례로 하면 300만 원을 준다."
그 말은 둘째 오빠가 막내 오빠에게만 한 것이 아니고, 나와 다른 동생들 앞에서도 농담처럼 진담인 듯 여러 차례 이야기를 했습니다. 물론 그 말이 엄마의 귀에 까지 들어간 것은 물론입니다. 하지만 그때까지 엄마는 아무런 불만의 표현을 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저의 바로 위 막내 오빠는 1992년 12월, 둘째 오빠가 소개해 준 아가씨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혼식은 둘째 오빠의 바람처럼 오빠의 교회가 아닌 강남의 웨딩홀에서 진행하였고 주례 선생님도 둘째 오빠의 교회 목사님이 아닌 큰오빠의 소개로 김광림 시인이 하게 되었습니다.
이윽고 주례 선생님의 주례에 이어 결혼식이 끝나고 신랑 신부의 기념사진을 촬영해야 할 때였습니다. 보통의 결혼식 기념사진 촬영은 주례 선생님과 신랑 신부가 제일 먼저 하고, 그다음 양쪽 부모님과 신랑 신부, 그다음은 양쪽 가족들과 신랑 신부, 또 그다음은 신랑 신부의 친구들과 직장 동료 순서로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인 순서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둘째 오빠의 주도로 주례 선생님보다 교회 목사님과 신랑 신부 사진, 그리고 신랑 신부와 둘째 오빠가 다니는 교회 신도들과의 단체사진을 제일 먼저 촬영하였습니다.
이때의 상황에서 그동안 엄마가 참고 있었던 둘째 오빠의 경솔함에 화가 났던 것 같습니다. 결혼식장에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막내 오빠가 신혼여행을 떠나고 우리 가족들은 안양의 친정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아직 설거지는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둘째 며느리가 둘째 오빠의 옆구리를 찌르면서 집에 아이들만 있다고 집에 데려다 달라고 했습니다. 오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둘째 올케언니를 집에 데려다주고 다시 친정집으로 돌아와서 가족들이 모인 안방에 자리를 잡고 앉을 때였습니다.
엄마는 작정을 한 듯, 그렇지만 목소리는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둘째 오빠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네가 돈이 많으면 얼마나 많더냐? 막내에게 결혼을 교회에서 하면 2백만 원, 목사님이 주례를 서면 3백만 원 준다고 돈 자랑을 했냐? 그리고 오늘 결혼식 사진을 찍는데 어째서 주례 선생님, 부모보다 앞서서 목사님과 사진을 찍는 단말이냐?"하고 나무랐습니다. 그리고 친정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살면서 언제나 제일 늦게 오는 둘째 오빠(둘째 며느리) 가족과 설거지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먼저 가버리는 둘째 며느리에 대한 불만의 말도 함께 했습니다.
둘째 오빠는 교회 목사님과 신도들이 다음 일정이 있어서 부득이하게 기념사진을 먼저 촬영해야 했다고 뒤늦게 설명했지만, 꼭 그날의 일이 불만의 전부가 아니었기 때문에 다른 가족들과도 몇 번의 큰소리가 오고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둘째 오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서 "이놈의 집구석에 다시는 발걸음도 하지 않겠다."라고 친정집을 나가 버렸습니다.
그렇게 뒤도 안 돌아보고 가 버린 둘째 오빠는 정말로 예전처럼 엄마를 수시로 찾아뵙고 안부를 묻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용돈도 생활비도 더 이상 주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엄마는 둘째 오빠에 대한 서운함이 점점 커져 가더니 당신의 아들에 대한 서운함을 둘째 며느리에 대한 원망으로 표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를 만날 때마다 엄마는 "네 둘째 오빠가 결혼 전에는 절대 안 그랬다. 그 효자 아들이 그렇게 변하게 된 데에는 둘째 며느리가 여우짓을 해서 그렇게 변한 것이다."하고 천하에 없는 불효자식들이라고 했습니다.
듣기 좋은 소리도 여러 번 반복해서 듣게 되면 나중에는 차차 듣기 싫은 소리가 되는 것이 이치입니다. 그런데 엄마는 가끔이었지만 저를 만날 때마다 서너 차례에 걸쳐서 둘째 며느리에 대한 원망의 말을 할 때였습니다.
순간 저도 모르게 웃음을 띤 얼굴로 엄마에게 이런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엄마~ 나는 그동안 엄마가 올케언니들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이야기하려고 하고, 며느리들 생일도 꼭 기억하고 챙겨주는 것을 보고 엄마는 보통의 시어머니들과 다른 줄 알았네. 그런데 지금 둘째 며느리 흉을 보는 것을 보니까 우리 엄마도 다른 시어머니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드네~"
저에게 그런 말을 듣고 엄마는 더 이상 별말씀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날 이후로 엄마에게 했던 말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엄마는 친정에서 셋째 며느리와 넷째 며느리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저에게 이렇게 이야기하셨습니다.
"지난번에 네가 나에게 한 말을 듣고 얼굴이 화끈거리고 부끄러워서 혼났다. 나이도 어린 딸 앞에서 내가 어른답지 않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에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엄마, 정말 그러셨어요? 나는 엄마한테 그 말을 하고 그 순간부터 이제까지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엄마는 지금까지 그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네~"
"나는 세 살짜리 어린아이한테도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을 한다. 비록 나보다 나이가 어린 딸이지만 옳은 말을 해서 잘못을 깨우쳐 주면 그 잘못된 행동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로는 절대로 며느리들 흉을 안 봐야겠다고 깊이 반성을 했다."
옆에서 엄마의 이야기를 함께 들었던 셋째 올케언니, 넷째 올케언니는 엄마의 그 말씀에 아무런 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표정을 보았을 때 엄마의 말씀에 깊은 생각을 하는 듯 보였습니다.
자신의 큰 흉이 될 수도 있을 텐데 두 며느리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선뜻 이야기하신 엄마. 아무리 내 속으로 낳은 나이 어린 자식이 하는 말이라도 옳은 말이면 깨우쳐서 같은 잘못을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엄마의 말씀은 지금도 저의 귀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노인대학이나 복지관에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할 때면 가끔 엄마께서 저에게 했던 이 이야기를 들려드리기도 합니다. 지금 세상을 살아가는 어르신들, 그리고 우리들 모두가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부끄러움을 알게 된다면 두 번 다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식들에게도 주변 사람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도록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기 위해서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좀 더 행복하고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엄마의 "너의 그 말에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말을 듣고 난 이후, 저의 아이들과 주변의 이웃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끔은 지금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묻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지금 당신은 그 누구 앞에서도 부끄럽지 않습니까?" 하고요.
그날 이후, 엄마에게 부끄러움을 느끼도록 원인을 제공했던 둘째 오빠는 엄마와 자연스럽게 화해도 했고 둘째 올케언니도 시댁에 왕래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