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의 한문공부

77세의 나이에 시작한 엄마의 한문공부..

by 한명라

지금 오후 3시... 모처럼 할 일 다 마치고 편안한 마음으로 노트북을 앞에 놓고 앉아봅니다.


저는 2019년부터 지금까지 매주 목요일이면,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2시간 동안 도서관에서 어르신들을 모시고 '노래하는 실버 건강체조'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3년째 그 프로그램을 진행을 하고 있는데 올해에 새롭게 프로그램에 참석하는 어르신들이 많이 계십니다.


어제, 프로그램을 마치고 환한 얼굴로 강당 문을 나서는 어르신 한분께서 "그동안 몰랐던 것을 배울 수 있어서 좋네요. 선생님 고마워요~"하십니다.


저의 수업에 참여하시는 어르신들께서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저는 엄마를 생각합니다.


'우리 엄마도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를 한다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하고요.


배우는 것에 있어서는 한치의 망설임이나 부끄러움이 없었던 엄마. 오늘은 엄마께서 77세에 한문공부를 시작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1997년 4월이었습니다. 우리 집의 열두 째인 저의 여동생이 평촌에 새 아파트를 장만하고 집들이 겸 친정엄마의 생신을 곁들여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우리 열 두 남매를 자기 집에 초대를 했습니다.

1997년 4월, 열두째 집에서...


우리 형제들 중에 제일 먼 곳에 떨어져 살고 있는 저도 남편, 두 아이들과 함께 다른 형제들보다 하루 일찍 동생집에 도착해서 짐을 풀어놓고, 안양의 친정집에 갔습니다.


안방 창문 옆에는 우리 열 두 남매들이 내리 물림으로 사용하던 낡은 앉은뱅이책상이 하나 있고, 그 책상 위에는 연습 종이들과 너덜너덜 우리들의 손때가 묻은 낡은 옥편이 놓여 있었습니다. 연습 종이에는 한 자 한 자 엄마의 정성이 들어 있는 한문들이 빼곡하게 쓰여 있었습니다.


우리 엄마 한문공부를 시작하셨던 거지요. 그때 친정엄마의 연세가 77세. 그 연세에 한문공부를 시작하시다니...


그때 저는 엄마가 한문공부를 언제까지 계속할지는 몰라도 마음이 뿌듯해졌습니다. 그 후로 2년이 지나서, 둘째 언니의 대학교를 다니던 아들들(외손자)이 외갓집을 비롯하여 친척집에 다니러 왔었답니다.


그 아이들은 외할머니댁 신발장 옆에 놓여 있는 쌀 포대 속에 가득 차 있는 종이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저의 엄마께서 한문을 연습하신 종이가 쌀 포대로 무려 2개나 되더랍니다.

그때 그 외손자들은 우리 외할머니 다시 봐야겠다고... 정말 대단하시다고...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아온 자기들이 부끄럽다고 그러더랍니다. 그때의 외손자 중 한 아이는 군대에 입대해서 외할머니께 가끔 편지도 보냈다고 들었습니다.


1997년, 77세의 나이로 시작한 엄마의 한문공부...


저의 엄마는 한겨레신문이 창간되던 1988년 5월부터 열렬한 애독자 셨습니다. 한겨레 신문은 한문도 없고, 가로줄이라서 읽기가 너무 편하다고요.


1980년 후반 그 시절 어른들은 대학생들이 할 일 없어 공부는 안 하고 데모만 한다고들 했지만, 한겨레신문을 읽는 엄마는 왜 대학생들이 그러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손에서 책을 떼지 않는 탓에 태백산맥, 남부군, 혼불 등 셀 수도 없는 많은 책을 저보다 많이 읽으시던 엄마.


'윤회의 비밀'이라는 책을 엄마가 읽으실 때, 과연 엄마가 나도 이해하기 어려운 저 책을 제대로 알고 읽으시는 걸까? 하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당신 나름대로 이해를 하면서 그 책을 읽으셨습니다.


2001년 설날이었습니다. 그해 저는 모처럼 친정집에 가려고 했었는데 그만 몸이 아파 가질 못했습니다. 아픈 딸이 걱정이 되어 안양에서 한걸음에 달려오신 엄마.


우리 집에 오셔서도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저는 병원에 갔다 와서 보면 엄마는 아무도 없는 우리 집에서 신문이나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계십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외손녀, 외손자가 영어테이프를 틀어 놓고 영어 공부를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엄마는 또 공부 욕심을 내십니다.


"나도 저렇게 테이프를 들으면서 따라 하면 충분히 영어공부를 할 수 있겠구나."


아이들에게 외할머니는 혼자 한문공부 열심히 하셔서 엄마보다 한문을 더 잘 쓴다고 했더니, 곧장 연습장과 연필을 가져다가 "할머니 한번 써 보세요~" 하고 외할머니에게 들이밀었습니다.


"보면서 써야 하는데..." 하면서도 엄마는 한 자 한 자 천자문을 정성스럽게 적어 내려가십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감탄사를 연발합니다.


"와~~ 우리 외할머니 정말 한문 잘 쓰신다. 우리 집 가보로 해야겠다." 하고요.


윤회를 믿는 우리 엄마. 다음 생에는 남자로 태어나서 이생에서 못 배운 공부, 배우고 싶은 대로 마음껏 배워서 나중에는 우리나라를 위해서 큰 일을 하고 싶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 열 두 남매를 다시 만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생에서 우리 열 두 남매 키우시느라 모진 고생 하고도 다음 생에도 우리들을 다시 만나겠다니...


사람이 살다 보면 감당하기 어려운 많은 아픔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 아픔의 크기나 빛깔들은 저마다 모두 다르겠지만, 저의 엄마가 남들보다 몇 배나 많은 자식들 낳고, 키우고, 가르치기 위해 감당해야 했던 고생에 비하면 '나는 그래도...'하고 작은 위안을 삼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록 내일 지구의 멸망이 올지라도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그 명언을 실천하시듯 엄마가 처한 환경을 탓하지 않고 당당하게 걸어갔던 우리 엄마.


저는 엄마의 그 모습을 감히 흉내라도 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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