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와 금반지
낡고 닳아 유품으로 남겨진 엄마의 금반지
2013년 4월, 엄마께서 돌아가시고 49 천도재를 마친 후였습니다. 친정의 언니, 동생, 올케언니들과 친정집 안과 밖에서 각자 대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안방 출입문 옆에 놓인 작은 서랍장 위 전화기 밑을 걸레질하고 몇 개의 연필과 볼펜이 꽂혀 있는 작은 통을 거실 바닥으로 쏟았습니다. 쏟아진 여러 물건들 사이로 그동안 행방이 내내 궁금했던 엄마의 금반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1991년 3월 나의 결혼식 때 촛불을 켜는 엄마의 손에 끼워져 있던 연하늘색 알반지도 함께 있었습니다.
엄마의 반지를 발견하자 가만 저의 손가락에 끼워 봅니다. 저보다 체구가 작았던 엄마의 반지이기에 저의 새끼손가락에 겨우 들어갑니다.
저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바라보는 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가만히 잠자고 있던 엄마의 그리움에 대한 뜨거운 것들이 불쑥 솟아오릅니다. 그리고 이내 알았습니다. 아마도 이 반지는 엄마가 그립고 엄마의 체온을 느끼고 싶은 날이면 문득 저의 손가락에 끼워질 것이라는 것을.
닳고, 구부러진 채 발견된 엄마의 반지
닳은 엄마의 반지
엄마의 반지를 저의 손에 끼워보았습니다.
1991년 3월, 나의 결혼식때 엄마 손의 반지
젊은 시절의 엄마는 우리 열두 남매를 낳고 키우고, 가르치면서 당신 손가락에 금반지를 제대로 끼워 보지도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남들보다 훨씬 많은 열두 자식들이 금반지를 해 드리지 않았던 것도 아닌데도 말입니다.
엄마는 직장생활과 대학생활을 하는 자식들이 궁금하여 서울의 자식들 자취집에 들렀다가 큰딸이 약사로 일하는 약국에 잠시 들르면, 변변한 반지 하나 끼워져 있지 않은 엄마의 맨손이 안쓰러운 큰언니는 엄마의 손가락에 몇 번이나 금반지를 끼워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금반지는 엄마의 손가락에서 단 며칠도 견뎌내지를 못했습니다.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고향의 우리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금은방에 들러서 "엄마, 이번에는 절대로 팔지 말고 오랫동안 끼고 계세요."하고 신신당부를 했던 큰딸의 부탁을 무시하고 금반지를 팔아 버리고는 했습니다.
물론 서울의 자식들에게서 엄마께서 받아 오는 용돈이 있었지만 전주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 넷째, 다섯째 언니의 학비와 고향에서 학교를 다니는 막내아들과 나, 그리고 동생에게 들어가야 하는 돈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엄마의 손가락에는 큰딸이 끼워 주었던 금반지가 오래도록 빛이 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엄마의 손에서 단 며칠도 남아날 수 없었던 금반지가 엄마의 손가락에 계속 남아 있게 된 것은 엄마께서 칠순을 맞이 하던 그때쯤이 아닌가 싶습니다.
특별할 것 없는 가난한 살림살이인데도 주변의 사람들에게 실제보다 훨씬 잘 사는 집으로 보이기를 원했던 아버지. 그런 까닭에 아버지는 대청마루의 쌀뒤주 속에는 당장 내일 먹을 쌀이 없어도 우리 집을 찾아오는 손님 대접은 그 어느 집보다 극진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속옷은 다 떨어져 구멍이 났어도 겉옷은 비싸 보이는 그럴듯한 옷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남이 뭐라고 손가락질을 한다고 하더라도 내 편한 대로 내 형편껏 떳떳하게 살아야 한다고 우리 열두 남매에게 몸소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고, 그렇게 살아가려고 무던히도 노력하셨습니다.
가끔 아버지께서 무슨 마음으로 사 왔는지 우리들의 두툼하고 멋진 겨울 외투를 사 가지고 오셨을 때, 엄마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 옷들을 가지고 나가서 언제나 입을 수 있는 바지나 셔츠로 바꿔 왔습니다.
겉옷이야 밖에 외출할 때만 입지만 셔츠와 바지는 언제나 입어야 하는 옷이라고, 겉옷이야 언니 오빠들이 입었던 외투를 물려 입으면 되기에 새 바지와 셔츠가 훨씬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엄마의 주장이었습니다.
당시 철이 없던 나는 고급스럽고 따뜻해 보이던 외투가 못내 아쉽기도 했지만, 화려한 겉치레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실속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우리에게 들려주시던 엄마.
금반지를 팔아서라도 자식들의 학비를 대야 할 만큼 절실했던 가난이 있었지만, 그 가난을 절대로 부끄러워하지 않고 어려웠던 시절을 당당하게 헤쳐 나오시던 강인한 정신력이 있었기에 우리 열두 자식들은 잘못된 길로 가지 않고 바르고 옳은 길로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아닌지, 지금의 우리 열두 남매가 있게 된 것은 아닌지... 지금도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엄마께 감사하는 부분입니다.
1982년 아버지의 환갑날, 열두 남매와 가족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