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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명라 Sep 22. 2020

50년 전 흑백 가족사진

마냥 그립고 그리운 시절...

50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어느 겨울날 어둑어둑 밤이 시작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때 국민학교 1학년이었던 7살인 저는 '어서어서'하며 서두르는 엄마와 언니들의 독촉에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면서 옷을 차려 입고 따라나섰습니다.


전주에 있는 대학에 다니던 째 오빠와 전주고등학교에 다니던 째 오빠가 기차에서 내려 곧바로 사진관으로 오기로 했다고 했습니다.


우리들의 부산한 외출 준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안방 아랫목에 누워서 라디오만 듣고 계시던 아버지.


아직 어 동생과 제 위의 막내 오빠와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사진관의 출입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이제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둘째 언니는 조금 더 예쁜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서 사진관 옆에 있는 미장원에서 머리 손질도 했습니다.

 

잠시 후, 째 오빠와 째 오빠 사진관에 도착해서 우리 만났습니다.


그렇게 9남매와 엄마가 함께 찍은 가족사진.


그 시절 결혼을 해서 서울 국립묘지 근처인 흑석동에서 약국을 하 큰언니와 서독에서 광부 생활을 하던 큰오빠, 그리고 월남에서 군대생활을 하던 둘째 오빠는 가족사진을 함께 찍 못했습니다.


그렇게 찍은 가족사진은 서독으로 날아가서 큰오빠의 책상 앞 벽에 붙여져서 두고 온 가족들과 떠나온 고향생각을 달래 주기도 했을 것이고,


정글 속을 헤매다가 베트콩과 맞닥뜨리면 등줄기에 한줄기의 서늘한 땀이 흘러내렸을 둘째 오빠의 향수를 달래 주었을 것입니다.


이 흑백의 가족사진은 사진관의 유리 진열장에 오래도록 진열되어서 저를 아는 친구들의 부러움이 대상이 되기도 했었습니다.


언제 어느 경로로 저의 손에 남겨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그 귀한 사진이 지금 저에게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50년을 훌쩍 뛰어넘은 까닭에 누렇게 색이 바랠 대로 바래었고 절대로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지금도 살아 계신다면 100살이 되저의 친정엄마께서 저토록 젊으신 모습이던 때도 있었네요.


어두워지는 겨울밤 거리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웃음소리로 가득 채우며 가족사진을 찍으러 가던 때가 정말 그립니다. 비록 가진 것은 없어서 어려운 살림에 힘도 들었던 시절이지만, 가족들끼리 사랑하는 마음은 어느 때보다 따뜻했던 시절입니다.


50년 전, 흑백의 가족사진


뒤쪽 오른쪽부터,


언제나 과묵하고 말이 없는 째 오빠, 기찻길 옆 용정리 밭의 주인공인 째 오빠,

야무진 살림 솜씨 요리 솜씨 만점 셋째 언니, 강한 생활력에 음식 솜씨 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둘째 언니,


 오른쪽부터,

마음이 태평양같이 넓고 착한 째 언니, 야무지고 예뻐서 남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던 다섯째 언니,

개구쟁이로 이름을 날리던 내 바로 위 막내 오빠, 그 옆 메주 떡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저,
올해로 연세가 100살 되는 엄마, 그리고 엄마의 무릎에는 동생인 열두째가 앉아 있습니다.


비록 열두 남매가 한자리에 함께 하지 못했지만, 가장 오래된 가족사진이라서 이곳에 소개합니다.


마냥 그립고 그리운 시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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