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봄날이지,남녘을 향한 돌담에 등을 기대고 서 있으면 어린 저의 몸에 와 닿는 햇살은따사로웠지만,아직 불어오는 바람은 싸늘하고,찬물로 세수를 하기에는 이른그런 봄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널따란 냇물을 가로질러 누워 물살을 막고 있는 나지막한 시멘트 다리위에 앉아서나의작은손을 시리게 하는 냇물에 손을 담그고물장난을 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시장 쪽에서 우리 동네로 건너오시던 어느 중년의 아저씨가유난히 다정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가~ 나 좀 지나가자꾸나~" 그러셨습니다.
물장난에 정신이 팔려서 누군가가 옆에 서 있다는 것을 몰랐던 저는그 소리에 깜짝 놀라서아저씨를 쳐다보았습니다.
6살 난 저의 눈에도 무척 세련되어 보이고,목소리조차 부드러운 서울 말씨를 쓰는 그 아저씨가 내 옆을 지나가도록 자리를 내어 드리면서그 아저씨 손에 들린 대나무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바구니 속의 과자를 보았습니다.
순간, 저는 그 과자를 먹고 싶은 마음에 저 아저씨가 우리 집 손님으로 오셨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을 했었지요.
한동안 더 냇가에서 물장난을 치며 놀던 제가 우리 집으로 갔을 때,정말 놀랍게도 조금 전에 냇가에서 보았던 그 점잖은 신사분이 봄 햇살이 따사로운 우리 집 마루에 앉아 계신것을보았습니다.
그분은 바로 서울에 살고 계신 저의고모부셨습니다.
엄마의 말씀에 의하면 외국 유학도 다녀오시고무슨 신문사 기자로도 활동을 하셨다는 서울 고모부.
서울 고모부는 아버지가 농업중학교에 다닐 때 여러 차례 학비도 도움을 주어서 처남(저의 아버지)에게서 존경을 한 몸에 받는매형이셨습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시키는 대로 서울 고모부께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고, 고모부가사 온 과자도 맛있게 먹었습니다.
잠시 후, 서울 고모부께서가지고 오셨던 사진기(그때는 카메라를 사진기라고 했지요)로 사진을 찍어 준다고 했습니다.
모처럼 찍는 사진이라 좀 더 예쁘게 사진을 찍기 위해서 따뜻한 물을 데워서 머리도 감고,손도 씻고, 발도 깨끗하게 씻었던기억이 납니다.소위 말해서 때를 빼고 광을 냈지요.
우리 집 앞에 서 있는분홍빛의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두 그루의 복숭아나무 밑에서 저와 동생, 그리고 막내 오빠가 사이좋게 손을 잡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 사진을 찍기 위해서서울 고모부와 큰 오빠는 바로 앞 보리밭 고랑에 내려서서고모부는 사진기를 눈에다 대고 연신 하나, 둘을 외쳤고,큰오빠는 자꾸만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동생의 시선을 붙잡아 두기 위해서손짓, 발짓을 열심히 해 대던 모습이 지금도 아련하게 떠 오릅니다.
나름대로 때를 빼고광을 내었는데도 흑백사진이어서그 빛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흐드러지게 핀 복숭아꽃도 잘 보이지 않고요.
사진 뒤편으로 제사공장의 굴뚝도 아스라이 보이고,그 굴뚝 바로 옆에는 제 고향 오수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개의 무덤과 비석, 그리고아름드리 고목나무들이 우뚝서 있는 원동산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