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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명라 Sep 29. 2020

추억 속의 흑백사진 한 장

아지랑이 피어나는 봄날 복숭아꽃나무 아래서...

복숭아꽃이 피고 아지랑이가 들판에 아련하게 피어오르는 봄날이었습니다.


말이 봄날이지, 남녘을 향한 돌담에 등을 기대고 서 있으면 어린 저의 몸에 와 닿는 햇살은 따사로웠지만, 아직 불어오는 바람은 싸늘하고, 찬물로 세수를 하기에는 이른 그런 봄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널따란 냇물을 가로질러 누워 물살을 막고 있는 나지막한 시멘트 다리 위에 앉아서 나의 작은 손을 시리게 하는 냇물에 손을 담그고 물장난을 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시장 쪽에서 우리 동네로 건너오시던 어느 중년의 아저씨 유난히 다정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가~ 나 좀 지나가자꾸나~" 그러셨습니다.


물장난에 정신이 팔려서 누군가가 옆에 서 있다는  것을 몰랐던 저는 그 소리에 깜짝 놀라서 아저씨를 쳐다보았습니다.


6살 난 저의 눈에도 무척 세련되어 보이고, 목소리조차 부드러운 서울 말씨를 쓰는 그 아저씨가 내 옆을 지나가도록 자리를 내어 드리면서 그 아저씨 손에 들린 대나무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바구니 속의 과자를 보았습니다.


순간, 저는 그 과자를 먹고 싶은 마음저 아저씨가 우리 집 손님으로 오셨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을 했었지요.


한동안 냇가에서 물장난을 치며 놀던 제가 우리 집으로 갔을 때, 정말 놀랍게도 조금 전에 냇가에서 보았던 그 점잖은 신사분이 봄 햇살이 따사로운 우리 집 마루에 앉아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분은 바로 서울에 살고 계신 저의 고모부셨습니다.


엄마의 말씀에 의하면 외국 유학도 다녀오시고 무슨 신문사 기자로도 활동을 하셨다는 서울 고모부.


서울 고모부는 아버지 농업중학교에 다닐 때 여러 차례 학비도 도움을 주처남(저의 아버지)에게서 존경을 한 몸에 받 매형이셨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시키는 대로 서울 고모부께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고, 고모부  과자도 맛있게 먹었습니다.


잠시 후, 서울 고모부께서 가지고 오셨던 사진기(그때는 카메라를 사진기라고 했지요)로 사진을 찍어 준다고 했습니다.


모처럼 찍는 사진이라 좀 더 예쁘게 사진을 찍기 위해서 따뜻한 물을 데워서 머리도 감고, 손도 씻고, 발도 깨끗하게 씻 기억이 납니다. 소위 말해서 때 빼고 광을 냈지요.


우리 집 앞에 서 있는 분홍빛의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두 그루의 복숭아나무 밑에서 저와 동생, 그리고 막내 오빠가 사이좋게 손을 잡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 사진을 찍기 위해서 서울 고모부와 큰 오빠는 바로  앞 보리밭 고랑에 내려서서 고모부는 사진기를 눈에다 대고 연신 하나, 둘을 외고, 큰오빠는 자꾸만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동생의 시선 붙잡아 두기 위해서 손짓, 발짓을 열심히 해 대던 모습이 지금도 아련하게 떠 오릅니다.


나름대로 때를 빼고 광을 내었는데흑백사진이어서  그 빛이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흐드러지게 핀 복숭아꽃도 잘 보이지 않고요.


사진 뒤편으로 제사공장의 굴뚝도 아스라이 보이고, 그 굴뚝 바로 옆에는 제 고향 오수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개의 무덤과 비석, 그리고 아름드리 고목나무들이 우뚝 서 있는 원동산이 있습니다.


큰오빠가 서독에 광부로 떠나기 전, 지난번에 소개한 가족사진보다 더 먼저 촬영된 사진.


어린 시절 봄날의 기억까지 함께 한 소중한 사진입니다.


복숭아 나무 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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