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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명라 Dec 07. 2020

세상은 참으로 살기 편해졌는데..

50년 전, 매섭게 추웠던 엄마의 겨울

정확하게 언제부터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느끼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은 참으로 많이 살기 편해졌다'는 그런 생각입니다.


아침 6시면 잠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들어서서 전날 저녁 잠들기 전에 압력솥에 쌀을 씻어서 앉혀 놓았던 까닭에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압력솥 추가 칙칙 소리를 내며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50여 년 전, 엄마의 아침 풍경은 지금 저처럼 여유로운 모습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우리 열두 남매들 건강하고 무사하라고, 모든 일 마음먹은 대로 술술 잘 풀리라고 이른 새벽부터 오수 원불교 교당으로 새벽기도를 다녀온 엄마는 우리 집과 뒷집 중간에 위치한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함지박에 담아 종종걸음을 치며 부엌의 높은 문턱을 넘어 날아와서 제일 먼저 부뚜막 위의 하얀 사발에 정화수로 떠 놓고서는 새벽기도를 다녀오신 것도 모자랐는지 두 손을 가슴에 모으면서 자식을 위해 당신의 소원을 빌었습니다.


애써 길어 온 물을 까만 가마솥에 하나 가득 붓고 아리랑고개 언저리와 삼 형제 바위 근처에서 갈퀴를 이용해서 열심히 긁어모은 솔잎이나 삭달가지(삭정이)로 불을 지펴 물을 덥혀서 아직 잠자리를 떨치고 일어나지 못하는 우리들의 세숫물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아침 쌀을 씻어서 밥을 지으시고, 쌀뜨물을 받아 된장국도 끓이시고, 부엌문 앞의 탱자나무 울타리 아래 묻은 김칫독에서 김치와 싱건지(동치미)를 꺼내다 쫑쫑 썰어 아침밥상을 차렸습니다.


50년 전 아궁이에 일일이 불을 지펴 아침밥을 지어야 했던 엄마에 비하면 지금 저의 아침식사 준비는 참으로 느긋하고 편하기만 합니다.


먼저 가스보일러로 난방을 해결하고 있으니 추운 겨울바람 속에 엄마처럼 땔감을 장만하러 겨울산 여기저기를 헤매지 않아도 됩니다.


수도꼭지를 면 언제라도 찬물이든 따뜻한 물이든 원하는 만큼 쏟아지고 가스레인지를 켜 화력 좋은 가스불로 여러 가지 음식을 장만할 수 있으니, 엄마처럼 애써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따뜻한 물을 데울 필요도 없고, 아궁이에 일일이 불을 지펴 된장국을 끓이던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재빠르게 찌개도 끓이고, 국도 끓입니다.


세찬 겨울바람 속에 어깨를 움츠리고 종종걸음을 치며 김칫독에 김치를 꺼내려 갈 필요도 없이 김치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면 되고,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음식은 전자레인지에서 덥혀집니다.


뜨거운 물을 덥혀 집에서 초벌 빨래를 한 다음 세숫대야에 담아 집 근처에 있는 봇도랑 빨래터에 나가서 얼음을 깨고 두 손이 꽁꽁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운 냇물에 빨래를 헹궈야 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빨간 고무장갑 한 켤레 장만하기가 왜 그리도 어려웠는지 모릅니다. 두 손을 호호 불며 흐르는 냇물에 빨래를 헹구어 집으로 돌아와 마당을 길게 가로지르는 바지랑대로 받쳐진 빨랫줄에 빨래를 널면 추운 겨울 날씨에 그 옷들은 대번에 꽁꽁 얼어 버리고 작은 고드름을 줄줄이 달고서 몇 날 며칠이 지나야 할 만큼 옷은 더디게 말랐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세탁기를 돌려놓고 외출하였다가 집에 돌아오면 세탁이 완벽하게 끝나 있어서  건조대에 빨래를 널면 추운 겨울 아무리 두꺼운 옷이라도 하루 만에 완벽하게 말라버립니다. 요즘은 건조기가 유행이라고 하는데 아직 우리 집은 건조기의 필요성을 느낄 만큼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살기가 편해지는데, 날마다 바쁘다 바빠를 입에 달고 살아가는 저의 모습을 발견하다 보면 괜히 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50여 년 전 겨울, 엄마의 아침 풍경은 끔찍할 정도로 춥고 바쁜 아침이었을 텐데도 묵묵히 그 많은 일들을 척척 해 내던  엄마의 모습이 떠 오릅니다.


그 시절의 아침 밥상에 놓여 있던, 스테인리스 밥그릇에 담겨 유난히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엄마의 따뜻한 밥과 된장국 맛이  겨울 유난히 그립습니다.


겨울이면 엄마와 함께 나무를 하러 다니던 삼 형제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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