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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미숙 Aug 29. 2020

남편 생일을 까먹었다!

“아냐! 아냐! 됐어!”


오늘도 평상시 아침처럼 베이글에 커피로 단출한 아침식사를 차렸다.

“미역국은 없는 거야?”

“으응? 웬 미역국?”

“잊은 거야?”

(“아차! 맞다!”)

어제저녁까지만 해도 단단히 기억하고 있었는데, 아침의 일상을 보내는 동안 남편의 생일을 깜빡한 거다.

“아니! 잊기는 누가 잊어? 미역국은 너무 더워서 점심때 미역냉국을 하려고 준비해 놨지!”

나는 잊지 않은 척 안간힘을 다하여 변명을 했다. 표정관리 안 되는 나의 모양새를 남편이 모를 리 없다.


사실, 젊은 엄마 시절 남편의 생일을 까맣게 까먹은 적이 한 번 있다. 서울서 친정식구들이 내려와 계곡에서 아이들 데리고 물놀이하며 노는 날이 바로 남편의 생일이었다. 친정식구들이 내려온다 하니 아마도 남편은 자기 생일이라 처갓집 식구들이 내려오나 했을 거다. 그런데 웬걸! 아무리 기다려도 기대하던 생일 이벤트는커녕 오히려 친정식구들 저녁 뭐 사줄 거냐고 생일 맞은 자기한테 덤터기를 씌우려 하니 부화가 치밀었을 거다. 남편은 참다못해 나에게 한마디 던졌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

“글, 무슨 날인데?”

“정말 몰라?”

“...”

“아냐! 아냐! 됐어 됐어!”

갑자기 나의 몸이 움츠러들더니 쥐구멍을 찾고 싶었다.

“그러네 당신 생일이네! 어쩌면 좋아, 어떡하지?”

그럭저럭 식구들이 내려왔으니 성대한 생일(?)을 갑작스럽게 치렀다. 남편은 다른 사람이 아무리 축하를 해줘도 아내가 자기 생일을 까먹었다는 것이 못내 섭섭했던 모양이다.


그 기억을 오늘에 되살려 “혹시 또 까먹지나 않았을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더니

“생일 선물 뭐 해 줄 건데? 생각두 안 했지?”

“안 하긴 누가 생각을 안 해! 필요한 게 뭐 있나 하고 지금껏 생각하느라 결정을 못하고 있는 거지!”

“아냐! 아냐! 됐어! 됐어!”

남편은 수년 전에 했던 그 말을 똑같이 Ctrl+V 했다.

나는 얼른 미역냉국 레시피를 생각해 내었다.

점심으로 미역냉국에 주꾸미 볶음을 해서 간단한 생일상을 차렸다.

저녁에는 한우+ 케이크+생일노래 이벤트를 할 작정이다.    


내가 처음부터 남편 생일을 소홀히 했던 건 아니다. 나름 지고지순한 사랑을 한 나머지 결혼했던 나는 신혼 초에 맞이한 신랑의 생일을 지극정성으로 차려 주었다. 생일이 음력 7월이니 에어컨이 흔치 않았던 여름 생일맞이 준비는 만만한 게 아니었다. 한 여름에 애를 낳아 고생하셨을 시어머니를 애틋하게 생각하다가도 “어휴! 덥다. 더워! 너무 더워, 어쩌자고 이 한 여름에 아기를 낳으셨을고?”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아무튼 쌀밥에 미역국은 물론이거니와 갈비찜, 잡채, 전, 샐러드… 생일상에 걸맞 새댁의 실험대상 음식은 다했던 것 같다. 해가 거듭할수록 실력이 늘어 생일상이 맛있어지고 풍부해졌으면 좋으련만...

해가 거듭할수록 가지 수가 하나씩 줄어들더니 마침내는 미역국 조차 끓여주지 않게 되었으니, 내가 내 머리를 쥐어뜯어야 마땅할 터인데... 당당하게 변명을 하는 건 왜일까?


동생한테 전화로 형부 생일 까먹었다는 이야기를 했더니만, 동생이 제부 생일 까먹은 이야기는 더 가관이었다. 어느 날 제부가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사 왔단다.

“이걸 누가 먹는다고 사 왔어?”라고 했단다.

그랬더니, 잔뜩 오므린 제부의 입술에서 “오늘 내 생일인데...”라는 말이  쥐오줌처럼 새어 나왔단다.

깊은 미안함에 내년에는 절대 남편의 생일을 까먹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을 했단다.

음력으로 챙겨 먹는 생일 날짜 때문에 혹시나 까먹으면 어쩌나 긴장을 하고 있다가 드디어 생일이 다가왔단다. 소고기 미역국을 맛있게 끓여 생일상을 거나하게 차렸단다.

일 마치고 들어온 제부가 한마디 하더란다.

“오늘 누구 생일이야?”

라고...

“당신 생일이잖아!”

그랬더니

“내 생일은 지난달에 이미 지났어!”라고 하더란다.

생일이 음력으로 6월 14일이면 양력으로 7월 16일에 생일인데, 7월 16일을 음력으로 생각하고 8월 16일에 생일을 차려 준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나보다 어린데 나보다 더하다니...(도긴개긴)

그냥 전화통 붙들고 맷돌에 어처구니가 없는 것처럼 그냥 웃었다.

그렇게 어처구니가 없이 인생은 미안하게 흘러가나 보다.    


P.S: 나의 남편은 30년 동안 결혼기념일과 마누라의 생일을 까먹은 적이 없다. 그래서 이 노래를 불러주고 싶다. “미안 미안해~ 미안 미안해~ 당신의 생일을 까먹어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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