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밝히는 전등이 다 꺼지고 시야를 가름할 수 없는 시간이 되면
소리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소리는 고작 국어 교과서에서 배운
짹짹, 꺽꺽, 깍깍, 지지배배, 찌르르 정도다.
세상의 모든 문장가들이 밤의 소리들을 의성어로 표현할 수 없어
애가 타지 않았을까?
인간이 아무리 자연을 벗 삼는다 해도
그들의 소리를 의성 하는 게 가능하기는 할까?
소리의 발원체들은 분명 밤 속에서 춤추며 놀터인데 소리만 보인다.
소리만 보이니 그림처럼 상상하게 된다.
마치 솔로 연주자가 교향악단 소리를 배경으로 노래하는 것처럼
세상의 혼탁한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저 소리가 무슨 새소린지 무슨 벌레소린지 알게 뭐냐?
내 영혼이 그 소리에 묻혀 변주곡이라도 부를 수 있으면 족한 게지!
불면증도 잠재울 소리들을 이불 삼아 잠이 들면 아득히 꿈나라에도 이어지는 밤 나라의 소리
언어에 무지한 나를 알고 시인이 표현해 놓아 고마울 따름이다.
김지하 시인의 ‘밤 나라’다.
밤 나라
밤은 소리들의 나라
보드라운 날카로운 엷고 때론 아득히
공고한 것이여 높고 낮은
울렁임 가득히 영글어가는 귀한 것이여
밤은 불멸의
아 저 숱한 소리들의 나라
온갖 것 다 살아 춤추어서 애틋하여라
그지없어라 가엾어라
이슬에 깨어
깨어 어디에도 이를 곳 없이 떠나
쇠북에 떠나 다시는
흰 이마 위 저 고운 샘물 소리론 죽음 후에도
넋이라도 못 올 나라
아아 밤 나라
분홍빛 작은 아기의 발
샘물 위에 춤추던 사뿐 거리던 네 가벼운
소리에마저 입맞춤도 이제는 찌는 낮
고요 때문이어라
목마름 때문이어라
미친 듯 홀로 외치다 죽을 운명 때문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