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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미숙 Aug 13. 2020

비 오는 날, 단상(斷想)

1970년 여름

    

비가 온다. 나는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비가 와도 너무 많이 오니, 좋아하는 감정이 사그라들려 한다.

그래도 비와 얽힌 따뜻한 추억은 잊고 싶지 않다.     


며칠 전 비가 세차게 내리던 날

집 근처 산사에 갔다.

비 오는 산사의 풍경은 물난리의 세상과는 달리 평화롭다.

산사 옆 계곡에 물이 불어 그 물소리가 산사를 휘어 감는다.


법당 옆에 내가 좋아하는 장소가 있다.

봉당이다. 봉당은 주택 내부에 있으면서 마루나 온돌을 놓지 않고 바닥면을 흙이나 강회나 백토를 깔아 만든 공간을 말한다.

나는 봉당 툇마루에 않아 비 구경하기를 좋아한다.

어릴 적에도 그랬다.

초가집 처마에서 떨어지는 굵은 빗방울은 봉당 아래 마당에 구덩이를 만든다.

빗물은 구덩이를 채우다가 이내 넘쳐흐른다.     


그날도 소나기를 퍼부었다.

일곱 살 나는 배가 고파 동생과 부엌에서 먹을 것을 찾다가

찾지 못하고 간단한 거적을 쓰고 동네방네 엄마를 찾아 쏘다녔다.

엄마는 찾지 못하고 점점 세차게 내리는 비 때문에

계곡인지 길인지 알 수 없는 곳에서 오도 가도 못한 채

그만, 빗속에 갇혀 둘이 울어버렸다.


얼마나 흘렀을까?    

종식이네 아줌마가 빗속에 울면서 헤매고 있는 우리를 발견했다.

아줌마는 과부였고 우리 동네에서 제일 가난했다.

이름 끝에 ‘식’ 자가 붙은 자식이 여럿 있었다. 연식이, 광식이, 종식이...

게다가 자식 중에 몸이 불편한 사람이 있었는데, 연식이 오빠가 그랬다.

팔이 말을 잘 안 들었다. 나는 그게 신기했다.

나보다도 훨씬 나이가 많은데 왜 그게 안되는지 궁금했다.

동네 아이들이 놀렸다. 물론 나도 그랬다.

그럴라치면 연식이 오빠는 말 잘 듣는 팔로 잘 안 듣는 팔을 들고 냅다 후려친다.

그 팔에 맞으면 눈물이 핑 돈다.


아줌마는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하면서 연명을 했다.

구멍가게래야 별것 없었다.

그냥 콧구멍만 방안에 건빵이나 미루꾸(밀크캐러멜) 같은 것을 조금씩 떼어다 팔았다.

자식 중 종식이는 우리 오빠와 동갑으로 같은 학년이었다.

학교에서 건빵 배급이 나오면 반장이었던 오빠가 나누어 주었다.

선생님은 종식이한테는 한 움큼 더 주었다.     


동생과 나는 흠뻑 젖은 채로 아줌마 손에 이끌려 그 집으로 들어갔다.

종식이네 단칸방은 어두침침했다.

자식들이 방에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양재기에 담긴 삶은 배꼽 감자를 먹고 있었다.

나와 동생은 아줌마가 건네주는 배꼽 감자 하나씩을 얻어먹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감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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