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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미숙 Oct 27. 2020

소사

    

이른 아침, 아버지가 오셨다.

며칠 동안 잘 먹지도 자지도 못한 상태라 헛것을 보았나?

흐릿한 스팀 안개로 잘못 본 게 아닌가 했다.

반장 언니는 내 손을 잡고 기숙사로 향했다.

집에서 가져온 낡은 집 냄새나는 주황색 이불과 기숙사로 오려고 새로 산 아이보리색 바탕에 연두색 체크무늬 트렁크에 짐을 쌌다.

언니들과 동료들을 뒤로하고 너른 들판에 덩그러니 세워진 공장을 빠져나왔다.

소사로 온 지 며칠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우리 동네에 있던 제품 공장이 소사에 공장을 지어 이사를 했다.

난생처음 집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해야 했다.

소사로 가는 날, 버스를 타고 동대문까지 가서 전철을 갈아탔다.

전철을 처음 탔다. 엄마와 나 그리고 동네 같은 공장 다니던 여자아이와 그 아이의 엄마와 함께였다.

부천역에서 내려서 10여 리의 허허벌판을 걸어갔다.

길에 눈이 쌓여 볼이 벌겋게 될 정도로 쭉쭉 미끄럼질을 하며 갔다.     


엄마는 나를 두고 되돌아갔다.

나도 아무 생각 없이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공장은 새 건물이라 유쾌하지 않은 새것 냄새가 물씬 풍겼다.

전원 기숙사 생활을 했으므로 한 방에 5-6명씩 들어갔다.

그중에 내가 가장 어렸다.

반장 언니가 나를 챙기기 위해 같은 방을 자처했다.

들어간 날 첫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스팀으로 지은 밥에서 휘발유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울렁거려 한 숟가락도 뜨지 못했다.

골치가 아팠다. 배가 고픈 느낌도 없었다.

잘 시간이 되자 기숙사의 불이 꺼지고 6명이 한방에서 발을 맞대고 잠을 청했다.

방마다 연탄을 땠으므로 아랫목은 뜨거웠고 윗목은 미지근했다.

반장 언니는 나를 배려해서 아랫목에 재웠다.

더워서 이불을 걷어차게 되니 꼼지락거린다고 언니들이 뭐라 그랬다.

집에서는 이불을 걷어차면 아버지가 다시 덮어주셨을 텐데...

아득한 어두움 속에서 괜스레 눈물이 났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입을 꼭 막았다.

아침에 일어나 나를 살피던 반장 언니가 “왜 눈이 그리 부었니?”했다.

그렇게 물으니 또 눈물이 난다.     


울렁증 때문에 며칠이 지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집에 가봐야 별 수 없으니 그저 하루하루 잘 버티려고 했다.

그런데 힘에 부쳤다.

나는 비실비실 말라가고 있었고 헛것이 보일 정도로 어질어질했다.     


아버지가... 아버지가... 헛것으로 보였던 게 아니었다.

아버지가 나를 데리러 오셨다.

애처롭게 나를 살피던 반장 언니가 안집 전화를 통하여 집으로 연락을 했던 모양이다.

소식을 들은 아버지가 딸내미 데리러 오려고 밤새 밤잠을 설친 듯

푸석한 모습으로 일찌감치 소사로 오셨다.     


공장 밖의 공기와 햇살은 차갑지만 눈이 부셨다.

말없이 길을 걸었다.

오던 날처럼 눈길이었다.

아버지는 왼손으로는 트렁크를 들었고,

눈길에 넘어질세라 오른손으로는 내손을 꼭 잡고 묵묵히 걸었다.

공장을 나와 얼마간 걸으니 자장면집이 있는 사거리가 나왔다.

조반도 거르신 채 오신 아버지는 자장면으로 허기를 채웠다.

아버지가 먹어보겠냐고 물으셨다.

나는 못 먹겠다고 했다.

속이 안 좋은 딸이 안쓰러웠는지 자꾸 등을 문질러 주셨다.     


자장면을 드시고 난 아버지는,

자신의 무능력을 탓하듯 담배 한 개비를 물었다. 

그리고는 김 서린 자장면집 유리문 밖을 바라보며 긴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나는

눈에 눈물이 자꾸 고이는 것을 억제할 수 없었다.

주먹으로 눈을 훔치면 눈물이 듬뿍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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