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개신교인들의 소원은?

by 황미숙

크리스천 노컷뉴스는 2025년 9월 13일 자에서,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의 전국개신교인 2천37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토대로, 국내 개신교인의 21.8%가 극우성향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도했다. 즉, 다섯 명에 한 명꼴로 극우 성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응답자의 61.8%가 개신교의 신뢰도가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했고, 전광훈, 손현보 목사가 주장한 탄핵 반대 입장이 정당한가에 대하여는 22.5%가 그렇다고 답했고, 60.7%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또한 전체 응답자의 절반인 50.8%는 개신교 내 극우 성향이나 혐오 발언이 심각하다고 응답했는데, 극우 성향자 40.5%도 심각성을 인정했다는 점을 흥미로운 사실로 꼽았다. 개신교회 안에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 조사라 할 수 있다.


CBS노컷뉴스, 2025-09-13 18:47

극우 개신교인들의 특성을 보면,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고, 질문이나 비판을 ‘불신앙’으로 간주하는 반지성주의적 신앙 문화를 선호하며, 권위주의적 구조인 목회자와 장로 등 위계에 대한 순종을 중시한다. 이러한 신앙 양태는 교회 문화 속에서 상하질서의 순조로운 관계를 형성한다. 따라서 권력에 대한 비판이 어려울 뿐 아니라, 국가주의 내지는 극우 담론을 정당화하는 배타성이 강화된다. 이러한 배타성은 혐오 담론으로 발전하여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난민·이슬람 반대,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극단적 공격과 같은 행동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또한, 자신들의 공동체가 위기 상황이라고 느끼면 지도자의 결단과 급진적 수단을 정당화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특히, 개신교 리더쉽 목회자들이 특정 정치적 입장이 ‘신앙의 의무’라고 하면서 집회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면 순종하며 따른다.



극우적 성향 개신교인의 등장 배경은, 본래 지니고 있던 한국인의 성정(性情)과 습합(習合)된 140여년 동안의 한국개신교의 성장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인은 수백 년 동안 유교적 가부장제와 공동체 안에서 자존을 지키며 살아왔다. 이러한 성정은 ‘교회’라는 공동체 형성에 안성맞춤이었다. 특히 권위에 대한 복종과 엘리트에 대한 숭상은 교회가 목회자와 소수 엘리트 중심으로 위계질서를 마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여기에 더하여, 1960~80년대 군사독재 체제하에서 진행된 정치적 권위주의와 국가 주도의 성장 발전은 개신교인들로 하여금 세상에서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성공주의’라는 성정을 갖도록 부추겼고, 교회는 부흥이라는 명분으로 ‘성장주의’를 추앙했다. 또한, 박정희가 만들어 준 ‘국가조찬기도회’ 등을 통하여 정치권력과의 공생 관계를 강화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다. 그 영향력이란 정치권력+경제력+종교력이라는 삼위일체적인 형상이라 할 수 있다.


1990년대, 반공이데올로기를 신주단지처럼 여기던 해방 전후 세대가 지나가고, 미국 유학파인 젊은 엘리트 목사들이 약진하며 후발 대형교회들이 급성장했다. 이들은 교회를 브랜드화하여 자기네 교회가 최고라는 계층적인 신앙 양태를 확산시켰다. 또한, 파시즘적이고 일방향적인 설교로 신도들의 심성에 반지성적이며 무비판적 토양을 굳혔다. 예컨대, 미국인 조엘 오스틴의 저서인 『긍정의 힘』 류와 같은 자기 계발적 요소가 강한 신앙 서적을 읽혀 성장·성공·국가번영을 신앙과 연결하는 세속적 신앙을 강화시켜 나갔다. 그 영향으로 신도들은 사회적 특권과 정치적 영향력을 ‘정당한 권리(기득권)’로 인식했다. 결과적으로 극우 정치 선동에 활용될 수 있는 ‘신학적·조직적 인프라’가 마련된 셈이다.



기득권층으로서 한국개신교회가 위기의식을 갖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후반 진보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대북 유화정책과 노무현 정부의 사립학교법 제정, 200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한 차별금지법 입법 시도, 성 소수자·인권 이슈의 부상, 2007년 차별금지법 논의 등은 성서무오설을 목숨처럼 여기던 근본주의적 복음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위기를 느끼자, 설교에서 혐오와 차별 담론을 표출하기 시작하였고, 노골적으로 정치적 이념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김진홍 목사와 이명박의 정+교 유착의 결과물인 ‘뉴라이트’가 결성되었고, 이들은 ‘장로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내었다. 이명박 정권은 ‘미국산 소고기 광우병 사태’, ‘쌍용자동차 노조 강경진압’, ‘자원외교 실정’ 등 민심이 돌아서는 실정(失政)을 거듭했다. 이때 개신교는 입지가 위태로워짐을 직감하여 장로 대통령을 구하고자 반대 집회를 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과 개신교의 추락 추세는 면할 수가 없었다. 1995년에 876만 명이던 교인이 2005년에 861만 명으로, 교회 개수도 2002년 60,785개에서 이명박 임기 때인 2008년 58,612개를 기록하며 현재까지 감소 추이를 보이고 있다.


2010년대 들어, 개신교인들은 박근혜 정부 시기와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더욱 강고하게 결집했다. 촛불집회와 탄핵을 ‘좌파 선동’으로 규정하고, 태극기·성조기·십자가를 들고 탄핵 반대 집회를 주도하며 정치적 극우 세력과 결탁했다. 개신교 교단총회인 한기총은 기득권 쟁취를 위해 전광훈 목사를 전위대장으로 내세웠다. 이른바, 극단적인 ‘전광훈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2020년 코로나19로 인한 펜데믹 사태는 한국개신교의 “모이기에 힘쓰는” 힘을 빼기 시작했다. 극우 개신교는 대면 예배 제한과 방역 조치를 “종교 탄압” “좌파 정권의 음모”라는 프레임을 씌워 생존을 위한 극렬 시위를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반공주의에 더해 동성애, 페미니즘, 이슬람 난민과 중국에 대한 혐오와 부정선거 음모론이 결합하여 신도들의 극우적 세계관이 공고해졌다.

극우적 세계관을 지닌 이들은 한국개신교의 기득권 수호를 위해 또다시 윤석열 정부를 탄생시켰다. 윤석열은 영원한 정권 찬탈을 꾀하며 2024년 12월 3일 밤, 계엄령을 내렸고, 탄핵을 받아 2025년 4월 4일 파면되었다.

“윤어게인”외치던 극우 인파들은 급격히 줄어, 2026년 1월 혹한의 막바지 내란재판장 앞에는 20명 남짓만이 모이는 초라한 현장이 되었다.


인간은 소속 집단을 통해 자신을 규정한다. 특히, 자신이 기득권 집단에 속해 있다는 사실은 강력한 정체성의 근거가 된다. 이때 집단 경계가 강화되며 ‘우리 대 그들’ 구도가 심해지고, 외부 집단이 진입하지 못하도록 제도·관습·문화적 장벽이 촘촘히 쌓인다. 기득권층은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개혁하기보다는 최대한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행동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세대를 초월하여 기득권만이 생존 전략임을 후세에 전달한다. 때로는 이 신념을 자신의 목숨보다 중히 여긴다. 기득권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강대국에, 혹은 권력자에 기생하기도 하고, 타자 살생으로 이어지는 비극을 초래하기도 한다. 한국개신교 140여년의 역사가 그러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할지라도,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사회적 약자를 돌보며 이 땅에 살다 간, 또는 살고 있는 의로운 신자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아울러, 60%가 넘는 상당수의 개신교인들은 이러한 극우 성향의 개신교인들로 인하여 한국교회의 신뢰도가 추락하고 있음을 염려하고 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참고: 2025-09-13 18:47https://christian.nocutnews.co.kr/news/6399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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