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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민 Aug 20. 2023

일본 홈쇼핑 데뷔 하던 날

Ep25. 그날 이후로 나의 일본생활이 달라졌다.

"형민씨. 우리 팀 방송 현장 서포트 해 줄 수 있을까?"


일본 도쿄 시나가와(品川)에 위치한 한 한국계 기업. 이곳은 일본 홈쇼핑을 통해 한국상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나는 이 회사에서 홈쇼핑 상품과 그 외 상품을 일본 인터넷 쇼핑몰을 판매하는 e커머스(EC)팀에 소속되어 있었다.


같은 공간안에 있다고 하더라도 홈쇼핑팀과 e커머스팀이 교류할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다 지금의 회사가 존재하게 만들어 준 스테디셀러 상품의 방송이 잡혔고 때마침 일손이 필요했다.


"당연하죠!"


e커머스를 하다보면 자연히 홈쇼핑에 관심이 가게 마련이다. 그렇지 않아도 일본 홈쇼핑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고 팀내 승인을 얻어 방송에 동행, 우리끼리 말로 데뷔하게 되었다. (방송에 내가 출연한건 아니다.)



일본 QVC 스튜디오에 발을 내딛다.


일본에는 QVC재팬, 샵채널, 쟈파넷또 타카타가 대표적인 홈쇼핑 채널이다. 회사에서는 이 중 QVC를 주력 채널로 상품을 공급하고 있었다.


QVC 재팬은 미국계 홈쇼핑 채널로 아메리카 QVC와 미츠이물산에 의해 일본에 설립되었다. QVC재팬 스튜디오는 일본 치바현 미하마에 위치해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산업 전시시설인 마쿠하리멧세가 있는 마이하마마쿠하리(海浜幕張)역에서 도보 10분 거리다.


우리나라 홈쇼핑 본사 건물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QVC재팬 건물은 대략 5층 정도로 생각보다 아담 하다. 1층에는 방송 스튜디오, 2층 이상에는 사무공간이 있는 것 같다.


방송 비품을 잔뜩 실은 차를 타고 QVC재팬 스튜디오 출입구로 향한다. 차를 세워두고 경비실에 방송 스케줄과 신분(명함) 확인을 마친 뒤 출입 카드를 받는다. 이제 본격적으로 스튜디오로 들어가게 된다.


1층안에는 3곳 정도 스튜디오가 나뉘어져 있다. 각 방송타임에 따라서 사용하는 스튜디오가 다르다. 사전에 촬영 스튜디오를 안내 받고 준비실에서 방송에 필요한 소품들을 준비하는 식이다.


방송 시작 대략 2~3시간 이전부터 대기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한다. 생방송으로 진행하는 홈쇼핑 특성상 사소한 트러블 하나라도 생긴다면 매출에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험 많은 선배들은 별다른 내색이 없었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왠지 모르게 긴장감이 가득해 보였다.


방송 준비 끝나고 잠시 대기하던 휴계실 모습



드디어 온에어! 


방송 시작전 담당 MD와 호스트 동반하여 간단한 미팅을 가진 후 본격적으로 온에어 준비를 한다. 대기실에 설치된 TV 화면에는 이전 방송의 실시간 라이브가 흘러나온다. 진행자가 대략 10분정도 남았음을 알린다. 


이제 곧 우리차례다! (10분은 정말 금방 간다.)


이윽고 화면이 전환되고 우리 회사 상품이 나온다. 제일 먼저 쇼호스트와 회사에서 고용한 호스트가 화면에 잡히고 우리가 준비한 (요리)샘플을 화면 가득 담는다! 다행이도 이쁘게 잡혔다.


상품 설명 일러스트와 나레이션이 나온 후 두 호스트 간에 상품에 대한 대화가 이어지며 제품이 방송을 탄다. 이러한 상황이 생방송 (30분에서 1시간 사이)동안 2~3번 이어진다.


매 순간 순간 안도의 한숨과 탄식이 오간다. 마치 국가대표 축구경기를 보는 것 같다고 할까?! 화면에 요리가 먹음직스럽게 잡히는가 하면 대기실에서 조리가 너무 많이 되었거나 또는 방송 전개가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조금 들러붙거나 그을려 화면을 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숙련된(!) 방송인들은 이를 위트있게 넘긴다. 더불어 스튜디오에 걸려있는 실시간 주문현황 모니터도 주문이 쇄도하고 있음을 알린다. 이렇게 생방송이란 매력있는 것이었다.



방송이 끝나고 난 뒤


30분, 길어야 1시간도 안되는 방송이지만 이 방송을 위해 반나절 또는 하루를 꼬박 쓰기도 한다. 만약 이른 아침 방송이라면 전날밤 근처 호텔에서 잠을 자야 한다.


방송국과 회사 양쪽 구성원들의 노력 끝에 방송이 전파를 타고 일본 전역에 흐른다. 끝마치고 나면 방송국 담당 MD가 와서 성과와 함께 이날 방송에 대한 간단한 리뷰가 이어지고 짐을 정리하므로서 방송이 최종적으로 마무리 된다.


TV 화면 밖으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수 많은 노력 끝에 방송 하나가 완성된다는 점을 피부로 느꼈다.


한편, 이날 이후로 일본의 TV홈쇼핑을 보다 관심 깊게 살펴보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홈쇼핑은 많이 봤었지만 분명 느낌이 다르다. 뭐라고 해야할까... 상당히 소박하다고 할까? (물론 방송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열기는 정말 대단하다!)


우리나라 방송은 화려한 영상연출이나 배경음악, 세트장 등 제품 이상으로 볼거리들이 많은 듯한 인상이다. 그에 비한다면 일본 홈쇼핑은 제품 자체에 포커싱이 되어 있고 모든 연출은 주인공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조심스럽게 그리고 조용히 뒷받침 해주는 것 같다.


홈쇼핑 주요 시청자 연령대가 40~60대 이상이라는 점도 한 몫 하지 않나 싶다. 더욱이 일본은 65세 이상 고령자가 3,589만명(전체 인구의 28.4%. 2019년 10월 기준이니 지금은 더 늘어났을지도.)이다. 이들이 주요 타깃이라고 하면 이해되는 부분이다.


다만, 처음으로 일본행의 꿈을 가졌던 2004년도만하더라도 일본의 많은 것들은 대한민국을 앞서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것들을 보고 배우고 싶었다. 그게 일본에 온 이유기도 하다.


그런데 어느순간부터인가 일본은 그때 그 모습을 계속해서 고이 간직하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아마 그당시 앞서 나가던 홈쇼핑 모습 그대로에서 지금까지 큰 변화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모습대로 고객들과 함께 나이를 먹어 가고 있는 거겠지) 


그러는 사이 대한민국은 다이나믹하게 변하고 있었다. 한국에 들어가면 오히려 외국같다고 느껴지는게 그런 이유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부터였을까? 일본에서 영주권을 받고 평생 이곳에서 살겠다던 나의 생각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본 거주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에세이입니다. 일부 편협하거나 주관적인 부분이 있을 수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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