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6.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사고 싶어지는 시기
"이번에는 50% 할인 가보자!"
일본에서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회사 중 많은 수가 1년에 4번, 파격적인 할인 행사를 준비한다. 이름도 그에 걸맞게 슈퍼 세일(Super Sale).
일본을 대표하는 온라인 쇼핑몰인 라쿠텐 이치바(楽天市場)에서 개최하는 대규모 세일 행사이다. 매년 3월, 6월, 9월, 12월 4일 저녁 8시부터 11일 오전 1시 59분까지 진행되는 행사로 운이 좋으면 반값 이하로 제품을 구매 할 수 있다.
거기에 온/오프라인에서 사용 가능한 라쿠텐 포인트를 최대 40배 이상으로 뻥튀기(!) 할 수 있으니 이 기간동안의 집객력은 어마어마하다. 거기에 TV쇼핑이며 유튜브 광고, 지하철 광고 할 것 없이 사방팔방 슈퍼세일 홍보가 이어진다.
이 기간에 월 매출 정점을 찍는 기업들의 사례가 쏟아진다. 그러니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절대 놓칠 수 없는 순간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매 분기별로 EC팀은 슈퍼세일 준비로 분주해진다. 한달전부터 할인할 상품 검토와 사내 승인, 할인 상품페이지 작업에 정신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배송까지 직접 하는 경우라면 배송부자재 준비도 미리 해두어야 한다.
상품페이지 등록도, 배송도 도맡아서 하던 나의 경우는 그 긴장감이 배에 달했다. 매출도 늘리고 재고도 줄이고 샵 평점도 올릴 수 있는 몇 안되는 기회이기도 때문이다.
"A님은 1~10번까지 상품 등록해주세요. B님은 20번까지, 제가 나머지 할게요."
디자인쪽을 전담으로 하는 멤버들이 있지만 이 기간에는 나 역시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를 실행시킨다. 페이지 작업이 끝나면 사이트 배너 준비, 뉴스레터 준비가 이어진다.
그리고 어느덧 대망의 슈퍼세일 스타트날!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 쇼핑몰 관리자 페이지에 들어간다.
"3...2...1...0!"
오후 8시가 되기 무섭게 수십개의 신규주문이 들어와 있다. 평소에는 그렇게 광고를 해도 안팔리던 상품이 세일 기간에는 불티나게 팔린다.
이렇게 팔리는 속도를 보고 있으면 인터넷, 그리고 이벤트의 위력이 참 대단함을 느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내일부터 작업해야 할 출하량 생각에 벌써부터 진땀이 나기 시작한다.
여느 세일이 그러하겠지만 세일 시작 첫날과 마지막 날에 주문이 가장 많이 들어온다. 그래서 4일밤에서 5일 오전(당일 배송 주문 마감전)과 10일에서 11일 주문에는 항상 신경을 곤두 쓴다.
평소에는 나올 수 없는 가격에 상품이 나오는 시기이다보니 세일을 준비하는 담당자 입장에서도 지갑을 열고 싶어지는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
회사에서 판매하는 상품은 사원 할인가로 살 수도 있지만 슈퍼세일 할인가가 더 싼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할인 이벤트가 있을 때 사야 왠지 손해를 안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에 다른 샵들도 미리 염탐해 둔다.
사실 내가 온라인 쇼핑몰 운영을 담당하기 전까지는 이러한 이벤트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냥 돈 많고 여유 있는 회사들이나 밑져가면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필요할때 사면 그만이지. 이건 상술이라고!)
그러나 세일 기간은 판매자와 소비자간의 이해관계가 절묘히 맞아 떨어지는 기간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회사에서는 재고로 가지고 있으면 오히려 현금흐름을 묶을 우려가 있는 제품을 저렴하게 판매하여 숨통을 트고 소비자들은 평소보다 수십%는 저렴하게 같은 제품을 구매할 수 있으니 말이다.
다만 한가지 단점이 있다면...3개월에 한번 있는 할인행사의 맛을 잊지 못하고 이 기간 외에는 지갑을 굳게 닫는 소비자층도 제법 있다는 점이다. (사실 나도 그 중 하나가 되어 버렸다.)
그렇지만 이런 세일 행사는 가뜩이나 물가만 오르고 급여는 안오르는 일본 소비시장에 하나의 단비와 같은 존재가 아닐런가 싶다.
라쿠텐이 망하지 않는 한 라쿠텐 슈퍼세일의 마법은 아마도 계속 되겠지.
※일본 거주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에세이입니다. 일부 편협하거나 주관적인 부분이 있을 수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