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형민 Aug 23. 2023

세번째 일본비자를 받던 날

Ep27. 비자, 이 공기 같은 존재여!

일본에서 살려면 필요한 것들에는 이것저것 있겠지만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단연 '비자'일 것이다. 일본에서는 재류자격(在留資格)라고 하는데 관광비자를 시작으로 학생비자, 연수비자, 예술비자,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인문지식・국제업무비자 통칭 취업비자가 있다.


비자유효기간은 최소 3개월에서부터 1년, 3년, 5년이 있다. 나는 3년짜리 비자를 받았고 어느새 다시 비자갱신기간에 접어들었던 것이다. 



정말 귀찮은 존재. 비자


맨처음 비자를 받았을 때는 세상 다 가진 것 마냥 기뻤다. 그렇게 살아보고 싶던 일본에 그것도 합법적으로 3년이나 지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자를 받고나서 은행 통장도 개설하고 내 명의로 된 핸드폰도 개설하고 집도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보통 처음 비자를 받으면 1년짜리가 많이 나온다고 하던데 나는 처음부터 3년이었으니 운이 좋은 편이었다. 나를 부러워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 분명 처음 일본 비자는 이렇게나 큰 기쁨을 주는 존재였다. 두번째 비자를 받을 때에도 어느정도 그 감정은 유지되는 듯 했다. 그러나 세번째 비자를 신청하는 순간이 되어서는 다시 일본 행정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는 피곤한 순간으로 다가왔다.


전직(이직)을 하지 않았으면 크게 번거로울 것이 없지만 회사를 옮긴 나 같은 경우는 처음 비자를 준비할때 만큼의 서류를 준비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력서, 고용계약서, 전년도 원천징수표, 회사소개서, 회사 등기부등본, 재무제표, 대표 날인이 찍힌 신청서...등등. 단순하다면 단순하겠지만 회사에서 준비해줘야 할 서류가 많다. 특히나 재무제표 같은 민감한 자료나 대표 날인 등 도장사용 승인이 필요하니 시간이 제법 걸린다.


어렵싸리 준비해서 (도쿄)입국 관리국으로 향한다. 아침 일찍부터 비자관련 업무로 방문하는 외국인들의 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다. 오전9시부터 업무개시하는데 이미 이른 새벽부터 와서 줄서서 기다리는 경우도 있을 정도이다.


입국관리국에 도착해서 서류 접수창구로 이동한다. 내 순서가 되면 담당자가 서류를 간단히 확인 후 대기표를 준다. 이제부터 무한 대기(!)  짧게는 2~3시간, 길게는 반나절 이상이 필요하다. 그래서 월차를 쓰고 가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서류 문제가 없으면 결과통보용 엽서에 주소를 적어 내고 돌아가면 끝인데 서류에 문제가 있을 경우 보완하여 우편으로 보내야 한다.


일본 비자결과 통보 엽서



기다리고 또 기다려라


비자서류 접수를 마치고 나면 끝일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일단 공식적으로 비자서류심사에 최소 2주에서 1개월이내라고 이야기 하고 있지만 그 이상 걸리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고 인터넷으로 심사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 매일 같이 우편함만 바라보게 된다.


두번째 비자 갱신때는 회사 사업을 확인할 수 있는 서류를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았었다. 그래서 약 40쪽 분량에 달하는 증빙자료를 추가로 제출했던 적이 있었다. (영어서류면 괜찮은데 한국어로 되어 있었기에 전부 일본어로 번역까지 했다...)


그리고 이 기간즈음에는 각종 금융기관에서 갱신된 비자 사본을 보내라는 우편들도 날라온다. 만에 하나 비자가 발급되지 않거나 발급이 늦어질 경우 피곤해진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비자갱신이 가능한 만료일 3개월전에 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비자만료 후 최대 2개월까지는 일본 거주가 가능하지만 그 이상일 경우는 일단 출국을 해야한다. 간혹 비자 갱신에서 떨어졌다는 사람들도 있으니...별거 아닌 것 같아도 똥줄이 탄다.


매일 열어보던 우체통에 비자통보 엽서가 꽂히는 날은 마치 기말고사를 끝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면서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그래, 비자 뭐 별거라고"


다음날 아침 일찍 이 엽서와 수입인지 4,000엔분을 들고 다시 입국관리국으로 향한다. 비자발급 접수를 하고 몇시간 정도 기다리고 있으면 새로 발급된 비자를 수령하게 된다. 그리고 그제서야 비자유효기간 확인이 가능하다.


도쿄 입국관리국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아싸! 또 3년이다."


비자를 받아들기 전까지 몇년인지 확인 할 수 없다. 서류에는 (최장인) 5년을 적어내도 3년, 또는 1년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새로운 비자를 받는 만큼은 기분이 좋다.



다시 현실이다!


따끈따근한 비자를 받은 다음날부터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비자는 신분증이지 그 이상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열심히 회사에서 일 해서 돈 벌어야 하는 직장인의 숙명이 가디리고 있다.


일본에서 10년이상 거주하면 영주권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데 나의 경우는 비자를 총 4번 받아야만 거기에 도달할 수 있다. (3-3-3을 받았으니 10년 채우기에 1년이 부족하다.) 


그때까지 몸값도 높이고 4대보험도 성실이 납부하고 통장에 여유자금도 가지고 있어야 하며 보증인 해줄 수 있는 사람과의 관계(?)도 쌓아야 한다.


일본에서 비자를 처음 받던 날. 일본에서 영주권도 받고 정말 잘 살아보겠다고 굳게 다짐했던게 생각난다. 지금도 영주권은 탐이 나고 갖을 수 있다면 갖고 싶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잘 살아가는 일이라는 사실을 30대에 중반을 향해 달려가면서 더욱 뼈저리게 느낀다.



(지금은 4번째 비자로 살고 있다.)



※일본 거주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에세이입니다. 일부 편협하거나 주관적인 부분이 있을 수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쌀 때 산다! 라쿠텐 슈퍼세일의 위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