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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민 Aug 25. 2023

일본은 사재기 안할 줄 알았다.

Ep.28. 재난 앞에 장사 없다.

2020년 2월. 난데 없이 들이닥친 코로나 확산으로 일본 전역에도 비상이 걸렸었다. 평소에도 몸살 등 감기 증상이 있으면 마스크를 쓰는 나라였지만 증상 여하를 불문하고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사실상 '의무'가 되어 버린 상황.


마스크가 없음을 알리는 드럭스토어 간판


어디를 가나 쉽게 구할 수 있었던 마스크는 금새 자취를 감추었고 재고 있다고 소문이 난 매장이 있으면 마스크를 사기 위해 밤새 줄서서 기다리는 행렬까지 등장했다.


일회용 마스크는 더이상 일회용 마스크가 아니었고 한장에 수백엔 이상으로 팔리는가 하면 그것도 없어서 못 팔정도 까지 되어버렸다.


그래서 좀 아는(?) 사람들은 마스크 안쪽에 거즈를 덧대어 보다 오래 사용하는 방법을 고안해 내기도 했다.


코로나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가 일본열도 전역을 감싸기 시작할 즈음 본격적으로 록다운(도시봉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록다운이라...


일단 하늘길이 막히는건 둘째치고 나부터도 도쿄 밖으로 빠져 나갈 수 없게 되는 것이었다. 군대에 있던 2년동안도 한 공간(지역)에 살아가는 피곤함을 겪었던 나에게, 그것도 타국에서 뭔일이란 말인가.


사태가 더 심각해지기전에 당장에 필요한 생필품이라도 사고자 집 근처에 있는 마트로 향했다. 이미 위생용품이 동난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 외의 제품들까지 여파가 미치지 않았다!(라고 착각했다.)


텅 비어버린 마트 매대


그러나 마트에 들어서자마자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사실상 먹을 수 있는 것이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쌀부터해서 물, 음료, 과자, 통조림, 신선식품 할 것 없이 모조리 털어가고 난 다음이었다. 그나마 이날 매대에 몇개 남아 있던 신라면을 구매할 수 있었다.


어느 기사에선가 일본 재난상황때 마트에 신라면만 남아있는 걸 보고 한국식품 차별 하는거 아니냐는 풍의 글이 실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사실이 아니다(라고 본다).


신라면은 우리나라 사람들 입맛에 맞는 소울푸드이지만 일본 사람들에게는 정말 매운 음식 중 하나다. 나도 일본에서 오래 살다보니 신라면이 얼마나 매운지 알겠더라. 끓는 물에 라면스프를 넣는 순간부터 매워서 기침이 멈추질 않기 때문이다.


차마 매운 걸 먹을 자신이 없었던 일본인 덕분에 그나마 신라면이라도 건질 수 있음에 감사하며 집으로 돌아왔던 아찔한 기억이다.


일본에서 도통 듣거나 볼 일이 없었던 사재기. 비교적 질서를 잘 지킨다고 알고 있었던 일본이었지만 재난상황 앞에서는 장사 없는 것 같다.



※일본 거주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에세이입니다. 일부 편협하거나 주관적인 부분이 있을 수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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