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9. 일본이지만 일본 아닌 듯 한 그곳.
일본 최남단에 위치한 섬, 오키나와(沖縄). 예전부터 TV로 오키나와 여행을 가는 경우는 많이 봐왔지만 운전을 하지 못하면 여행이 힘들다는 얘기를 들어왔던 터라 일본에 살면서도 선뜻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와이프(당시 여자친구)가 오키나와 특가 자유여행 패키지를 발견하게 되었고 두 다리 멀쩡하겠다! 그래 한번 가보기로 했다.
오키나와는 도쿄 하네다공항에서 2시간 10분이나 걸린다. 홋카이도, 후쿠오카 어디를 가든 2시간은 족히 걸리니 일본땅이 넓긴 넓은 것 같다.
오키나와 나하 공항에 내리면 제일 먼저 '멘소레(めんそーれ)'라고 적힌 간판이 보인다. 오키나와 방언으로 WELCOME을 뜻한다. 그리고 오키나와 전통악기 산신(三線) 가락소리가 들려온다. 분명 도쿄나 그 여느 일본지방에서 경험해 보지 못했던 느낌이랄까?
공항을 빠져나오면 다행히도 시내로 들어가는 노선버스와 유이레일(ゆいレール)이라고 불리는 모노레일이 있어서 시내까지 국제거리(国際通り)나 슈리성(首里城) 등 나하시(那覇市) 중심부까지는 무리 없이 돌아다닐 수 있다.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는데 벌써부터 뭔가 일본과 다른 느낌이 느껴진다. 일단 공기가 끈덕지다. 뭐랄까... 동남아에서 느꼈던 그 끈덕짐이라고 할까?
차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들도 그렇다. 건물들도 확실히 동남아 스럽다. 그나마 가깝다면 가까운 후쿠오카 갔을 때도 본 적 없는 건축양식이다. 언어만 일본어이지 일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호텔에 짐을 풀고 본격적으로 오키나와 탐방을 시작했다. 최대한 멀지 않거나 버스로 접근할 수 있는 곳들을 위주로 다녔다.
그래서 간 곳이 난조시(南城市)에 있는 바다가 보이는 카페 하마베노 차야(浜辺の茶屋)와 미하마(美浜)에 위치한 아메리칸빌리지. 둘 다 버스로 1시간 이상은 가야 한다. 방향도 각각 나하 기준으로 남동쪽, 북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하루 안에 가기는 힘들어 다른 날 일정으로 잡았다.
그나저나 오키나와는 아열대 기후로 높은 습도와 강우량을 자랑한다. 이게 뚜벅이 여행자들에게 가장 큰 복병 중 복병이다. 분명 해는 떠 있는데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치더니 또 금세 그친다.
버스도 나하 중심부를 벗어날수록 운행편수가 적다. 1시간에 1대 또는 2대꼴로 있으니 만일 버스 정류장 위치를 잘못파악해서 버스를 놓치면 1시간은 발이 묶이는 셈이다. (이런 게 한편으로는 버라이어티 한 맛도 있지)
점점 여행을 하러 온 건지 극기훈련을 하로 온 건지 헷갈리는 현타의 순간이 밀려온다. 아... 이래서 차 없이는 오키나와 여행하기 힘들다고 하는 거구나 싶었다.
여행 중에 와이프와 몇 번을 싸울뻔한지 모른다. 서로 지칠 때로 지친 데다가 점찍어둔 가게에 힘들게 걸어서 가면 영업을 안 하거나 만석이어서 들어갈 수도 없다.
비바람까지 몰아치지 버스는 안 오지... 옷은 젖었지... 두 번 다시는 오키나와 오나 봐라!!!라고 몇 번을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신기하게도 오키나와만의 묘한 매력을 가진 풍경들이 우리의 마음을 어르고 달레 주었다.
오키나와 여행 마지막날. 택시로 편도에 2,000엔 이상은 주고 달려갔던 우미카지테라스. 바다 위로 펼쳐진 공항 활주로가 보이는 경치맛집으로 유명하다.
커피 한잔 주문하고 바다를 바라보는데... 뭐라 해야 할까? 정말 그동안 쌓여 있던 몸과 마음의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라고 하면 좋을까. 말로 차마 형용할 수 없는 묘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날 결심했다. 운전을 배워서 다음번에 다시 오면 차를 타고 오키나와 방방 곳곳을 여유롭게 돌아다니겠노라고! (완전자율주행차가 나오길 기다리겠다던 생각은 이날부로 폐기했다.)
※일본 거주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에세이입니다. 시점은 2020년 말이며, 일부 편협하거나 주관적인 부분이 있을 수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