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0. 과연 오른쪽 핸들 잘할 수 있을까...?
"일론머스크가 완전 자율자동차 개발해 주겠지!"
정말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왔던 나. 대학교 졸업 전에 영업직군 모집에 대부분 차량운전이 들어가 있어 부랴부랴 운전면허(1종 보통)를 땄었다.
그러나 면허 딴지 얼마되지 않아 지인차로 주행 연습하다가 주차되어 있던 차를 긁는 사고(!)를 내는 바람에 면허증을 정말로 장롱 깊숙이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다가 학교를 졸업했고 취업을 했고 일본에 왔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운전대가 오른쪽에 있다. 그렇지 않아도 거리감이 있었던 운전은 일본에서 더더욱 나와 관계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대신 외국인등록증(재류카드) 보다 훨씬 로컬스러운 제2의 신분증으로 일본면허증을 소지하고 있었다. (몇 가지 절차를 거치면 한국면허증을 기준으로 일본면허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그렇게 또 하나의 신분증 역할로만 사용하던 운전면허증을 다시 꺼내 들게 된 계기는 오키나와 여행이었다. 뚜벅이 여행으로 고생도 고생대로 한 데다가 정말 오키나와의 1/10도 못 본 것 같다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키나와에서 도쿄로 돌아오자마자 장롱면허(일본에서는 페이퍼 드라이버라고 한다.) 탈출 운전교습소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가격이나 시간대가 맞는 곳 한 곳을 찾았고 약 한 달간의 대기 끝에 드디어 운전교습을 받을 수 있었다. 하루 안에 다 끝내겠다는 욕심에 1일 풀패키지로 했다. (금액은 대략 4만 엔대 했던 것 같다.)
사전에 메일과 유선으로 약속장소와 시간을 확인했고 드디어 당일이 밝았다. 저기 도로 갓길에 비상깜빡이를 켜 둔 차량이 보인다. 교습차 번호판이 맞았다.
갑자기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하는 심장. 교습 선생님과 간단히 인사, 신분증 확인, 서약서 작성을 마치자마자 바로 자리를 교대해서 선생님은 조수석에 나는 운전석에 앉았다.
생초보라 생각하고 알려달라고 했다. 그래서 시동 거는 법에서부터 깜빡이 키는 법 등 각 조작 스위치 작동법 등 하나, 하나 설명을 들었고 드디어... 드디어... 도로 주행을 시작했다!!!!
간... 다... 간다!!!
심장이 요동칠 정도로 긴장했던 것과는 달리 자동차(도요타 프리우스)가 앞으로 잘 나가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갓길에 정차한 차나 신호 때문에 조금 긴장되기는 했지만 선생님이 알려주는 대로 하니 큰 어려움이 없었다.
오전에 지역 한 바퀴 운행을 마치고 점심식사 후 오후 주행연습을 나갔다. 오후에는 주차연습까지 한다고. 그래서 교외지역의 넓은 공원으로 가기로 했다. 무려 편도 30분 거리.
다행히 차들도 쌩쌩 달리지 않고 초보 딱지를 붙이고 있어서 그런가 알아서들 잘 피해서 가주었다. 그리고 웬만해선 크락션을 울리지 않는 일본이라는 점도 긴장감을 조금 덜어놓는데 한몫했던 것 같다.
공원에 도착해서는 선생님의 주차 공식설명과 시범을 본 뒤로 계속 실습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니까 주차선에 어깨위치를 맞추고 핸들을 틀어서 앞으로 나간 다음에 정면과 사이드미러에 어느 정도 위치가 눈에 들어오면 후진으로 주차.
설명을 들을 때는 알 것 같았는데 막상 실제로 해보니 생각처럼 차가 주차선 위치에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주차된 차량이 거의 없었으니 다행이지 만약 차들이 많았다면 100% 부딪힌 거나 다름없었다.
정말 20번 이상은 연습했던 것 같다. 그렇게 왔다 갔다를 반복하고 어느덧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 드디어 주차를 안정적으로 해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무사히 주차연습까지 클리어. 이로서 장롱면허 탈출 운전교습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돌아갈 때도 집 앞까지 직접 운전해서 갔다. 내리기 전 선생님이 평가시트에 전체적인 평가와 주의점을 알려주셨고 앞으로도 연습 많이 하라는 말과 함께 교습 차량을 타고 떠났다.
그제야 온몸에 가득했던 긴장감이 풀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늘 달리는 차를 보면서 '나는 차랑 거리가 멀어, 차 없이도 살 수 있어. 아니야 그래도 남자가 운전은 할 줄 알아야지...'라고 막연한 두려움만 느꼈었는데 오키나와 여행이 이런 나를 바꾸어 놓았다.
이제 나도 운전할 수 있다!
※일본 거주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에세이입니다. 시점은 2021년이며, 일부 편협하거나 주관적인 부분이 있을 수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