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1. 코로나 와중에 이직을 해버렸던 나
'일본에 있는데 왜 맨날 한국사람들이랑 씨름해야 하지...'
일본에서 지내는 연차가 더해질수록 가슴속 어딘가 다시금 채워지지 않는 갈증 같은 것이 생겨났다. 그것은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 대한 것이었다.
처음에 일본에 왔을 당시, 인턴으로 시작했던 회사부터 전부 한국계 기업이었다. 사장님과 주요 임원진들도 한국사람들이었고 직원비율도 한국인이 많았다.
일본어 회화를 잘 못했던 초창기에는 그러한 환경이 메리트였는데 가면 갈수록 정체성(?)에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일본에 있지만 한국어로 말을 하고 생각을 하고 보고를 하고, 그러다가 전화 또는 밖에 나가면 일본어를 써야 하고. 여기가 한국인가 일본인가...
그래서 향후 독립을 하더라도 그전에 일본회사, 그러니까 사장도 대부분 직원도 일본인으로 구성된 그런 곳에서 일해보고 싶어졌다. (이제 일본어도 제법 할 수 있겠다!)
그렇게 마음을 먹은 이후로 일본의 이직(전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리고 채용공고 올라온 곳 중 e커머스 분야 회사에 어플라이를 해보았다. 다행히 코로나 덕분에(?) 관련 직군 모집 공고는 많은 편이었다.
도쿄 내에 있는 수십 곳의 회사에 지원을 했고 그중 2~3곳에서 반응이 왔다. 그렇게 면접일정을 잡고 무한 면접연습과 포트폴리오(라기보다는 실적 리포트)를 들고 회사로 향했다.
외국인이 있는 경우도, 전혀 없는 경우도 있었지만 다행히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하는 눈치이기는 했다. 면접이야 워낙 많이 연습하기도 했고 경험이 있었던 터라 그다지 긴장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역시 어휘의 한계로 답변에 조금 애를 먹는 부분도 있었다.
다행히도 얼마뒤 브랜드 핸드폰 케이스와 IoT가젯을 취급하는 회사로부터 최종 합격연락을 받았고 입사일자를 확정 짓게 되었다.
그리고부터 두 달 뒤, 도쿄 유락초(有楽町)에 위치한 그 회사에 첫 출근을 했다. 역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고 40여 명이 근무하는 회사였다.
입사서류에 도장을 찍고 사장실에 들어가 인사를 한 뒤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직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직원 구성은 대부분이 일본인이었고 10%가 중화권, 나 외 한국사람 1명이 더 있었다.
내가 속하게 된 EC팀은 일본인 멤버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다들 20대 후반 정도로 앳된 친구들. 하지만 여기서는 나보다 선배이기에 당연히 깎듯이 선배로 모셨다. (경어를 써가며)
사실 이 회사를 선택한 이유 중에 한 가지가 더 있었는데, 6개월에 한 번씩 실적평가를 하고 성과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승진의 기회가 열려있다는 점이다. 입사 1년 만에 비등기임원까지 승진한 케이스(실은 날 면접보고 최종 합격시켜 준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그러한 점이 내 맘속에 불씨를 집혔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였을까, 목표로 했던 일본회사이기도 했고 처음 일본에 인턴 왔을 때처럼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래. 여기서 초고속 승진해서 나도 임원까지 올라가 보자!'라고 말이다.
※일본 거주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에세이입니다. 시점은 2020년이며, 일부 편협하거나 주관적인 부분이 있을 수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