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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민 Sep 03. 2023

 일본에서 캠핑의 매력에 빠지다.

Ep32. 장롱면허 탈출하기를 정말 잘했다고 느꼈던 순간

'우리 나중에 운전하게 되면 캠핑 꼭 가보자!'


일본에 살면서 좋았던 것 중 하나는 운전을 못해도 웬만한 지역은 기차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비록 시간은 조금 걸릴지언정 마음만 먹으면 기차를 타고 계곡으로도 갈 수 있다. (물론 지역이 한정되어 있지만)


이러한 점 때문에 직장을 은퇴할 때까지 차 한번 몰아보지 못했다는 도쿄 토박이들도 많다고 한다. 실제로 초보딱지를 붙이고 다니는 중년 운전자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한 번은 와이프가 친한 동생과 도쿄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글램핑을 다녀왔다. 불빛 하나 없는 산 중턱에서 바라보던 별빛이 그렇게도 아름다웠었나 보다.


그러부터 몇 년이 지나, 그것도 일본에서 장롱면허를 탈출했다. 지난번 오키나와 여행 때 너무 고생했던 게 화근이었지만 이제는 차를 운전할 수 있게 되었다. (금세 나올 줄 알았던 완전 자율자동차도 꽤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차가 없던 우리였지만 일본에는 오래전부터 셰어카 서비스가 잘 되어 있었다. 그중 집 근처에 타임즈(times) 스테이션이 있었고 회원가입절차를 마치고 회원증도 손에 넣었다.


우리의 첫 셰어카 닛산 노트


그렇게 떠나게 된 설레는 첫 캠핑. 우리의 첫 행선지는 도쿄에서 약 2시간 정도 떨어진 야마나시현에 있는 'The508'이라는 곳이었다.


캠핑이라고 해봐야 초등학교 다닐 때 여름방학에 부모님 따라 함께 갔던 계곡 말고는 군시절 야외훈련이 전부였다. 그러니 캠핑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다.


캠핑 떠나기 전 부랴부랴 중고마켓에서 dod 원터치 텐트 하나 장만하고,  쇼핑몰에서 저렴하게 판매하는 코펠과  의자 정도 산 게 전부. 다행히 The508은 실내 숙박장도 함께 운영하고 있어서 캠핑사이트에서 캠핑을 즐기고 잠잘 때는 숙소에서 잠을 잘 수 있어서 우리 같은 초보에게 좋은 곳이었다. (물론 별도 예약이 필요하지만)


유튜브로 미리 텐트 치는 법을 확인했었는데 막상 치려고 하니 어찌나 어렵던지... 분명 원터치인데 아무리 씨름을 해도 텐트 다리가 펴지지 않는 것이었다. 당시는 아직 날이 풀리기 전이고 산 쪽이라 추웠는데 땀이 멈추지를 않았다.


치다가 다시 원상복귀 시켰다, 유튜브를 켜고 다시 시도해 보기를 수차례. 그러다 간신히 텐트가 펴져서 땅에 팩을 박고 의자를 세팅하고 나니 제법 캠핑의 느낌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날이 슬슬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한 것도 없는데 벌써 하루가 끝이 나는 모양새라고나 할까... 그래서 부랴부랴 저녁도 먹을 겸 캠핑의 하이라이트인 불멍을 준비하기로 했다.


화로대 위에 미리 구매해 둔 장작을 올려놓고 본격적으로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초보가 뭘 알겠나. 캔들 라이터 하나만 들고 온 것이었다. 백날을 불을 지펴봐야 나무에 불이 붙을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텐트를 칠 때 (흙) 바닥에 내려놨었는데 비가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탓인지 습기를 많이 머금은 모양이었다.


이제는 날이 어두워진 정도가 아니라 밤. 그렇게 한참을 씨름을 하고 있자 다행히 캠핑 좀 해본 것 같은 일본인 아저씨가 와서 토치로 불을 지펴주었다. 빨대 같은 걸로 바람도 불어주고.


그러자 연기만 찔끔 나던 장작에 불이 붙어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게 뭐라고 세상 그렇게 행복하던지! 아저씨에게 연신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그제야 의자에 앉아 일명 불멍을 때릴 수 있었다. 준비해 온 맥주도 드디어 제대로 한목음.


불멍의 흔적


아직 익숙지 않은 운전에 초행길이라 오는 내내 진땀을 뺀 것도 모자라 텐트며 장작불 붙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쉬운 것 없었지만 이제야 뭔가 어른답게(!) 노는 것 같아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그렇게 우리끼리의 캠핑 첫날이 끝이 났다. 숙소에 들어가 씻고 침대에 눕자마자 그대로 골아떨어졌고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지역 산책을 했다.


사실 전날은 안개도 끼어 있었고 오후 늦은 시간이어서 금세 주위가 어두워져 자세히 못 봤었는데 이날 아침은 전체적으로 청량했다. 그리고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후지산(富士山)의 존재였다.


캠핑장에서 바라본 후지산의 모습


후지산은 우리 집(도쿄도)에서도 맑은 날이면 보인다. 두 시간이나 떨어진 곳에서도 보일 정도니 얼마나 큰 산이란 말인가! 그런 후지산을 근처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건 또 다른 매력이었다.


이렇게 후지산을 바라보며 우여곡절이 많았던 첫 캠핑을 마쳤다. 돌아가는 길, 차의 사이드미러로 비쳐오는 후지산의 자태에 감탄하며 다음에도 후지산이 보이는 캠핑장에서 캠핑을 하자고 와이프와 다짐했다.


그렇게 우리는 캠핑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일본 거주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에세이입니다. 시점은 2021년이며, 일부 편협하거나 주관적인 부분이 있을 수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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