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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민 Apr 21. 2024

에필로그_일본 생활 10년이 남긴 것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  今まで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2023년 9월 30일 토요일 아침. 오랫동안 정들었던 일본 집 퇴거날이다. 부동산 회사에서 파견한 퇴거 대행 담당자가 집을 방문했다. 일본은 집을 떠나기 전, 들어오기 전 상태로 돌려놓아야 한다. 만약 거주 중 집 안에 손상이 생겼다면 복구비가 청구된다. 보통은 입주 시 지불했던 보증금(시키킹)에서 공제되는데 부족한 부분은 추가로 입금해야 한다. 그래서 부동산 계약을 할 때 집 안에 손상이 있는지 상호 확인하고 도면에 기재하는 절차를 거친다. 이날도 수십 분에 걸친 점검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출입키를 반납하고 집을 나섰다.


정들었던 집을 떠나며. 거주했던 집 앞 입구.


수년간 정들었던 집을 뒤로하고 캐리어 하나를 끌고 닛뽀리(日暮里)로 향했다. 닛뽀리는 도쿄 나리타공항으로 가는 고속철도인 스카이라이너가 정차하는 역이다. 다음날 아침 한국으로 귀국하는 비행기에 오르기 위해서다. 2013년 9월, 설렘과 긴장감으로 도착했던 도쿄. 6개월 과정 해외인턴쉽만 마치고 떠나려고 했는데 만 10년이나 꽉 채워버렸다.


1년 12달 변화를 10번이나 겪으면서 일본은 더 이상 외국이 아닌 제2의 고향이 되었다. 이따금씩 한국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1년 중 길어야 보름 남짓한 기간이었으니 먹고 입는 것부터 생활패턴까지 현지화되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한국에 오면 어딘지 외국 같고 낯선 느낌마저 들었다. 익숙한 건 한국어뿐. 그래서 한국에 있는 동안도 빨리 (일본)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일본에 언제까지 있을 생각인가요? “


일본 회사 면접 시 등장하는 단골 질문이다. 외국인은 언제든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보다. 그때마다 나는 ‘평생‘이라고 답했다. 정말 그럴 생각이었다. 일본에서 가정도 꾸리고 집도 장만해서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해 왔다. 주변 신경 쓸 필요 없이 (주변에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면서 조용히 살아가기 좋은 곳이다. 그게 일본의 매력이다.


그러다가 생각에 변화가 찾아온다. 바로 ‘코로나19’였다. 2019년 말부터 시작되더니 급기야 2020년 2월부터는 하늘길 마저 막혀버렸다. 일본 내에서도 지역 봉쇄가 이어지면서 도쿄 말고는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상황. 어렵사리 이직한 회사마저도 재택근무 체제에 돌입하였다. 하루 대부분 시간을 집에서 벽과 모니터만 보면서 지내야 했고 마스크는 물론 생필품 대란도 이어졌다. 한국음식은커녕 기본적인 식자재조차 구하기 어려운 상황. 가장 슬픈 일은 한참 자라나고 있는 사랑스러운 조카들의 모습을 영상통화로 밖에 보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다행히 코로나19는 사실상 종식되었다. 일본도 이전 모습으로 돌아왔다. 길거리에는 활력이 넘쳤고 일본 전국은 물론 하늘길도 열려 언제든지 떠날 수 있게 되었다. 공항에서 줄을 길게 늘어서며 코로나 검사를 하던 진풍경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오랜만에 한국으로 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조카들도 만났고 저 멀리 발리도 다녀왔다. 매일같이 해 질 녘 노을을 바라보며 공원에서 러닝을 했고 주말이면 차에 짐을 한가득 싣고 후지산이 바라보이는 야마나시로 캠핑을 떠났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단 한 가지, 내 마음만은 돌아오지 않았다. 일본에서 코로나와 같은 복병을 두 번 맞이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움이 컸나 보다.)


일본에서 마지막 캠핑. 후지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20대 중반에 일본으로 건너가 30대 중반이 되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반년정도 지나고 나니 이제야 한국 생활에 적응이 된 것 같다. 삼시세끼 김치를 먹을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가족들을 만날 수 있다. 시끌벅적한 도시생활만은 여전히 적응 중이지만.


일본에서 지냈던 10년간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해 보기로 했다. 클라우드 드라이브에 저장된 사진들을 보며 기억을 되살려본다. 2013년 9월, 2014년 9월... 2023년 9월. 해는 변했지만 그달, 그달 살아가는 모습은 큰 변화가 없었다. 봄에는 하나미, 여름에는 마츠리, 가을에는 핼러윈, 겨울에는 일루미네이션.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아마 앞으로도 큰 변화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1년 12달 일본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테마로 이번 브런치 북 엮어 보았다.


일본이 궁금한 사람, 일본에 언제 여행 가면 좋을지 고민 중인 사람, 일본생활을 준비 중이거나 이제 막 시작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의 일본생활은 끝이 났지만 일본과의 인연은 앞으로도 10년, 20년 그 이상 계속 이어 나가려고 한다. 앞으로 어떤 스토리를 쓰게 될지 설레이는 마음으로 이번 브런치북을 마무리 짓는다. 


즐거웠다.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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