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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민 Apr 14. 2024

12월_일본은 크리스마스에 쉬지 않는다.

과연 겨울이 오기는 한 걸까? 이상하리만큼 도쿄의 겨울은 따뜻하다. 영하권으로 떨어지는 서울 도심과는 달리 태평양을 바라보는 도쿄 일대는 웬만해서는 영하로 떨어지는 날이 없다. 두꺼운 패딩을 껴입고 다니는 일본 사람들 사이 나 홀로 가을재킷으로 12월을 보냈다.


길거리에는 일루미네이션과 함께 크리스마스 느낌 물씬 풍기는 트리들이 보인다. 일본도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건 마찬가지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12월 달력에 '빨간 날'은 없었다. 24일, 25일... 모두 검은 날이다. 그리스도 탄생일로 여겨지는 12월 25일은 전 세계 많은 나라에서 국경일로 지정하고 있지만 일본은 예외다. 대신 천황제 국가답게 천황탄생일이 국경일이다.


크리스마스트리가 꾸며진 요코하마 아카렝가


크리스마스 캐럴 소리도 듣기 힘들다. '주변에 피해를 끼치면 안 된다'는 일본 국민정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길거리는 사람과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만 들려온다. 물론 쇼핑몰 같은 시설 안으로 들어가면 캐럴이 흘러나오기는 한다.


문구점에 가면 크리스마스 카드가 보인다. 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연하장(年賀状)'이다. 일본에서는 매년 연말에 한 해 동안 신세를 진 사람, 또는 거래처에 연하장 엽서를 보낸다. 12월 15일경부터 늦어도 크리스마스까지는 우편 접수를 하면 신년 1월 1일(정월)에 도착한다.


이 무렵 회사에 출근하면 하는 일은 연하장 보낼 리스트 정리하기다. 아직 신참내기는 손으로 적어도 될 만큼 양이 적지만 경력 있는 상사들이나 영업직의 경우는 수십, 수백 곳까지 이른다. 미리 연하장을 준비해 프린터로 인쇄를 하거나 인쇄소에 맡기기도 한다. 보내는 수만큼이나 새해 첫날 우체통에 연하장이 몇 장 들어와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소소한 재미다.


연하장 준비하기


연하장 보내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 망년회(忘年会)가 시작된다.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캘린더에는 망년회 일정으로 꽉 찬다. 웬만한 이자카야(居酒屋)는 만석이다. 미리 예약해두지지 않으면 헛걸음하기 십상이다. 평일밤은 거래처, 주말은 지인들과의 망년회로 정신이 없다. 이러니 크리스마스를 챙길 정신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연하장도 보내고 망년회도 마치고 나면 심적 여유가 생긴다. 이제는 나를 돌아볼 차례다. 올 한 해 어떤 일이 있었는지 곱씹어 보고 내년은 어떻게 보낼 것인지 저마다 계획을 세운다. 대형 서점이나 문구에는 신년도 캘린더, 다이어리가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내년에는 부자가 됐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적어본다. 그러고 나서 발걸음을 옮기는 곳은 복권방이다.


매년 11월 중순 ~ 12월 중순 복권방 앞에는 연말 점보복권(年末ジャンボ宝くじ)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조(組)와 6자리 번호로 이루어진 추첨식 복권이다. 한 장에 300엔. 12월 31일 추첨방송을 하는데 2023년 1등 당첨금은 무려 7억 엔이다! (실제 당첨번호: 06組 170850番)


점보복권 명당 니시긴자 찬스센터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복권명당이 존재한다. 점보복권 1등 당첨이 되었던 곳은 줄을 서서 구매해야 한다. 회사가 있던 유락쵸(有楽町)에 있는 니시긴자쇼핑센터 1층에 위치한 곳이다. 아침 출근할 때부터 이어진 긴 행렬은 점심시간을 지나 퇴근시간 때까지도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나는 기다릴 자신이 없어서 다른 곳에서 몇 번 사보았다. 아쉽지만 번번이 꽝.


어느덧 연말이 저물어간다. 일본에서 보낸 비슷한 듯 다른 12달을 회상해 본다. 일본 오기 전 가졌던 막연한 불안감은 사라졌다. 살아보니 살만하다. 익숙해지니 긴장보다는 사람 사는 곳이 어디나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부디 내년에도 별 탈 없이 무사히 보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토시코시소바를 먹는다.


12월 31일 저녁에 먹은 소바



토시코시소바(年越しそば)는 소바면처럼 가늘고 길게(굵고 짧게의 반대 의미로) 오래오래 살거나 가족의 연(絆)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매년 연말에 먹는 소바다. 이제야 비로소 한 해가 끝이 났다. 마지막은 TV로 카운트다운 방송으로 마무리한다.


5, 4, 3, 2, 1

'아케마시테_오메데토_고자이마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와 함께 큰 폭죽 터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다시 희망찬 새해가 밝았다. 빨리 자야겠다. 아침 일찍 해돋이를 하러 가야 하니까!



2024년 일본 12월 공휴일


없다. 대신 12월 마지막주 ~ 1월 초까지 이어지는 연말연시 연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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