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로윈으로 시끌벅적했던 10월이 끝났다. 가을새 빨갛고 노랗게 물들었던 단풍들도 이제 하나, 둘 땅으로 내려온다. 우리나라만큼이나 사계절 변화가 뚜렷한 일본에도 어느덧 입동(立冬)이 찾아온다.
겨울에 접어들었다고는 하지만 15도 이상을 넘나드는 포근한 가을날이 이어진다. 어지간해서는 영하로 떨어지는 일 없는 도쿄의 겨울은 우리나라에서 매서운 겨울을 보내온 나에게는 두 번째 가을이나 다름없다. 이맘때가 자연을 벗 삼기 가장 좋은 시기다.
일본에 살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집 주변에 공원이 많다는 점이다. 도쿄도(東京都) 내에는 2023년 4월 1일 기준 12,110개 크고 작은 공원이 존재한다. 늦은 오후 체력을 단련하고자 공원을 달리고는 했는데 도보 10분 이내에 공원이 3개나 있었기 때문에 기분에 따라 취사선택이 가능했다. 공원 한 바퀴를 완주하면 대략 1km 내외.
주말을 이용해서는 이따금 등산을 다녀오기도 했다. 신주쿠역에서 케이오선(京王線)으로 약 1시간이면 하치오지시(八王子市)에 있는 다카오산(高尾山)에 갈 수 있다. 도쿄 도심에서 가까워 주말 산행코스로 사랑을 받는 곳이다. 해발 599m로 다카오산역에서부터 1시간 정도면 등산초보도 충분히 정상에 오른다.
역에 도착해서는 입구 근처에서 파는 군밤을 사 먹고 정상에 도착해서는 잠시 경치를 즐긴다. 산행 뒤 출출해진 배를 야마비코차야(やまびこ茶屋)에서 따뜻한 소바와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달랜다. 막걸리와 파전이 있다면 더 좋겠지만 일본 경치에는 이 아이들이 더 잘 어울린다. 세상 이렇게 건강한 맛이 있을 수 없다. 하산로는 포장길이어서 부담 없이 내려올 수 있다.
하산 후 도쿄 도심으로 돌아오면 이미 해가 저물어있다. 대신 작고 은은한 불빛들이 거리를 밝혀준다. 11월 중순부터 일본열도는 일루미네이션이 시작된다. 역사(駅舎) 앞 광장은 물론 길거리 여기저기 크고 작은 일루미네이션이 보인다.
메이지시대(明治時代) 수입상이었던 메이지야(明治屋)가 도쿄 긴자로 진출하면서 매년 일루미네이션 장식을 한 것이 시초라는 설이 있다. 그로부터 레이와(令和:현 일본 연호)인 현재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이제는 일본문화의 일부가 되었다.
도쿄에서 일루미네이션 맛집이라고 하면 단연 롯폰기(六本木)다. 매년 롯폰기힐즈에서는 11월 초부터 12월 말까지 일루미네이션 행사를 한다. 도쿄타워가 보이는 롯폰기힐즈 일대 케야키자카(けやき坂)에는 약 80만 개의 파란색과 흰색 LED가 반짝인다. 근처 광장에는 마치 파도가 치는 듯한 연출도 볼 수 있다.
한편, 이 무렵 제철인 음식이 있다. 다름 아닌 대게(ズワイガニ:즈와이가니)다. 11월부터 다음 해 3월까지 제철이다. 게는 온라인, 오프라인 할 것 없이 겨울 내내 인기상품 자리를 차지한다. 식당에도 게와 관련된 메뉴가 올라온다. 게 사시미에서부터 초밥, 구이, 찜, 샤부샤부 등 일본에서 맛볼 수 있는 모든 음식은 게와 콜라보 중이다.
게 요리 전문점인 카니도라쿠(カニ道楽)에서는 다양한 게 코스요리를 맛볼 수 있다. 한국에서 출장온 거래처 담당자들과 이곳에서 식사하기도 했다. 단가는 5만 원~10만 원 사이로 일반식당에 비해서는 비싸지만 맛도 좋고 일본식 식문화를 체험해 볼 수 있어 만족도가 높았던 곳이다. 게는 니혼슈와도 찰떡궁합이다.
산과 들과 강, 그리고 거리마저도 정취가 느껴지는 일본의 11월은 술과 벗(연인) 없이 보내기는 어딘가 아쉬운 달이다.
2024년 일본 11월 공휴일
11월 3일(일): 문화의 날(文化の日)
11월 4일(월): 대체휴일(振替休日)
11월 23일(토): 노동감사일(勤労感謝の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