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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민 Mar 31. 2024

10월_일본열도가 할로윈에 빠지다.

도쿄 하늘에 느닷없는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9월 무더위도 어느덧 가셨다. 반팔들은 옷장 안에 안쪽으로 넣어두고 긴팔들을 꺼내 입는다. 거리에는 단풍이 가득하다. 청명한 하늘과 선선한 바람. 커피와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이다. 


일본에도 가을을 천고마비의 계절(天高く馬肥ゆる秋)이라고 부른다. 거기서 나아가 OO+가을(秋:아키)라고도 한다. 독서의 계절 가을은 가운데 계절을 빼고 독서의 가을(読書の秋:도큐쇼노아키)라고 한다. 그 외에는 식욕의 가을(食欲の秋:쇼쿠요쿠노아키), 단풍의 가을(紅葉の秋:코요노아키) 등 가을과 어울릴만한 걸 가져다 붙이면 된다. 가을은 포용력이 좋은 계절이다.


가을날 공원에서 (캔) 커피 한잔 마시며 독서를 즐기고는 했다.


한국에 있었다면 추석 전, 후로 정신없었을 시기이지만 일본에서는 명절을 보낼 일이 없으니 여유를 느낄 수 있다. 물론 평일에야 출퇴근으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낸다. 가족이나 지인들과 주고받는 추석 안부인사로 잠시나마 명절 기분을 느낀다. 일본에 간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명절(사실은 사람)이 그리웠다. 그러나 일본생활이 익숙해지고 나니 이 정도 거리감이 좋은 것 같다. 부대껴야 정이 든다고 하는데 어차피 만나게 될 사람은 만나게 되어 있다. 그게 우주의 이치이자 자연의 섭리다.


매년 10월 둘째 주 월요일은 스포츠의 날로 전주 토, 일을 포함한 삼일 연휴(三連休:산렌큐)에 들어간다. 스포츠를 즐기라고 만들어진 국경일에 여행을 즐긴다. 여행도 체력이 필요한 스포츠다. 삼일이나 쉴 수 있으니 신칸센이나 비행기를 타고 더 멀리 여행을 떠나본다. 도쿄에서 오사카로, 오키나와로.


오사카 도톤보리(좌) 교토 기요미즈데라(우)

오사카(大阪)로 여행을 가면 교토(京都)나 나라(奈良), 고베(神戸) 등 인근 지역도 둘러볼 수 있다. 넥타이 부대와 드높은 빌딩이 가득 찬 도쿄 도심은 차갑다. 크락션 소리도 잘 내지 않기 때문에 길거리며 도로며 조용하다. 그와 달리 오사카는 시끌벅적하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기차로 1시간 정도 동북쪽으로 올라가면 교토에 갈 수 있다. 가장 일본다운 정취가 느껴지는 곳이다. 기요미즈데라(清水寺), 금각사(金閣寺), 료안지(龍安寺) 등 명소가 많다. 


여름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다면 오키나와(沖縄)도 좋다. 일본이라기보다 일본어를 쓰는 아열대 기후 동(남) 아시아 국가 같다. 일본 본토와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10월에도 평균기온이 27도 이상이다. 기간에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굳이 바다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해안가를 따라 드라이브하는 것만으로도 힐링된다.


10월은 중반 이후로 일본열도는 본격적인 할로윈 시즌에 돌입한다. 돈키호테 매장만 지나가도 코스튬 복장이 가장 눈에 띄게 디스플레이되어 있다. 복장 종류만 해도 약 1,000종 이상이다. 이미 10월 초부터 온라인, 오프라인 할 것 없이 할로윈 관련 상품들이 연일 랭킹 상위를 차지한다.


돈키호테 할로윈 코스튬 복장을 다룬 아침 뉴스


한국에 있을 때는 접해 본 적 없던 일본의 할로윈 열기에 놀랬다. 코스튬도 그렇지만 시부야(渋谷)는 매년 할로윈 시즌이 되면 사람 발 디딜 틈이 없다. 그래서 사건사고도 많다. 얼마 전부터는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노상에서 음주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경찰들의 대대적인 단속과 통제도 있다.


사람 많은 걸 싫어하기도 하고 할로윈에 특별히 관심이 없기는 하지만 기상천외한 코스튬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쏠쏠하다. 일본에 있는 동안 딱 한번 할로윈 대열에 합류한 적이 있다. 지인들과 함께 코스튬 복장을 입고 롯폰기(六本木) 일대를 돌아다녔다. 나는 계란 프라이 복장을 입었다. 그 모습이 재밌었는지 지나가는 사람들 중 일부는 사진을 찍기도 했다. 지인들과 잠시 흥에 취해 클럽에도 가보았다. 이미 대부분 클럽은 만석. 그러다 호객 행위를 하는 외국인 안내로 지하에 있는 클럽에 들어갔다. 사람이라고는 우리 일행 말고 40대 커플 한 팀이 전부였다. 


할로윈 저녁 시부야 스크램블(좌) 시부야역 앞 독특한 코스튬을 한 사람(우)


썰렁한 클럽과 시끄러운 음악, 그리고 식어가는 흥과 계란 프라이를 입은 나. 일본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참여한 할로윈이 되었다.



2024년 일본 10월 공휴일


10월 14일(월): 스포츠의 날(スポーツの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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