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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민 Mar 24. 2024

9월_일본여행하기 딱 좋은 달.

2013년 9월 5일 목요일. 그날의 뜨겁고 묵직한 공기를 잊을 수 없다. 난생처음 일본의 수도, 도쿄땅을 밟은 날이다. 인천발 나리타행 비행기에서 내려 출입국 게이트로 걸어가는 그 순간. 간판, 창 밖, 그리고 입국장내 아나운스 방송까지 모든 것이 일본이었다. '언젠가는 일본에 살아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이루어진 순간이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케이세이 선(京成線) 열차를 타고 도쿄 도심으로 향했다. 창 밖으로 네모반듯한 이층짜리 주택들과 4~5층쯤 되어 보이는 건물들이 스쳐 지나간다. 어딘가 이국적인 맛이 가을 햇살을 받아 더욱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9월 도쿄 도심은 여전히 덥다. 긴팔은 아직 이르다. 신주쿠, 시부야, 하라주쿠, 에비스 어디를 가든 사람들도 북새통이다. 날이 좋으니 다들 밖으로 나왔나보다. 그 중에서도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는 정말 놀랍다. 초록불로 바뀌면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인파로 일순간에 뒤덮인다. 한 번에 대략 3천 명 정도가 건넌다고 한다. 일본사람들 보다 나 같은 외국인이 더 많아 보인다. 커다란 렌즈를 단 카메라에서부터 핸드폰 카메라를 든 사람까지, 횡단보도 여기저기서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나는 역 건너편 건물 2층에 위치한 스타벅스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서는 실시간 생중계를 보듯 스크램블을 내려다볼 수 있다. 명당이다.


시부야 스크램블. 스타벅스에서 바라본 풍경


도쿄생활을 시작하고 2년여 동안은 거의 매 주말을 쉴 새 없이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아직은 20대였기에 혈기가 왕성해서였을 수도 있고 그동안 억눌려있던 일본살이에 대한 동경을 해소하는데 그 정도 시간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집, 회사, 집, 회사였지만 주말이나 휴일은 새벽부터 기차로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향했다. 특히 9월은 여행에 최적인 날씨가 이어진다.


2013년 당시 일본에는 공공 wifi가 부족하기도 했고 아직 통신사 계약을 하지 않았던 터라 오로지 지도에 의지해서 여행을 다녔다. 간혹 패밀리마트나 카페에서 잡히는 wifi존에 가서 정보를 추가 수집하기는 했지만 주로 미리 아이폰4s에 집어 넣어둔 지도와 블로그 캡처본에 의지했다. 다행인 것은 도쿄뿐만 아니라 일본은 기차를 타면 웬만한 곳을 갈 수 있다는 점이다. 1~2시간만 가도 산이고 바다고 만날 수 있다. 기차에 내려서는 버스나 도보로 이동한다. 가끔 길을 헤메이긴 했지만 어디로 가든 길은 나온다. 택시는 2km에 대략 700엔 이상 했기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환승도 없고 이래저래 교통비가 비싸니 발품을 열심히 팔았다.


좌측 가와고에 거리. 우측은 가와고에 시계탑.


다행이도 교통비 이상 값어치를 하는 명소들이 많다. 신주쿠를 기점으로 북쪽으로 1시간 정도면 가와고에(川越)에 도달한다. 작은 에도(옛 도쿄)라고도 불리는 곳으로 100년 이상 된 건물들이 많다.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곳이다. 에도시대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어 일본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 교토(京都)와 같이 일본 고유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곳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지역이다. 전신주도 많이 없어 사진 찍기도 좋다.


하루 네 번 울리는 타종 소리(오전 6시, 오후 12시, 오후 3시, 오후 6시)도 매력적이다. 가와고에 명물인 시간의 종. 본래 1627년에서 1634년(간에이 4~11년) 사이에 만들어졌으나 1893년 (메이지 26년)에 화재로 소실되었다고 한다. 현재 시간의 종이 있는 시계탑은 재건된 것이다. 1996년에는 ‘일본 소리 풍경 100선’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참고로 사람이 아닌 기계가 타종한다.


좌측 에노시마. 우측 가마쿠고교앞역 인근 철도 건널목


한편 신주쿠에서 서남쪽으로 1시간 30분 정도면 드넓은 태평양이 바라보이는 곳으로 갈 수 있다. 주요 목적지는 에노시마(江ノ島). 에노시마는 육로로 갈 수 있는 작은 섬으로 각종 영화와 드라마 로케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대학교 1학년때 푹 빠져있던 일본 드라마, 태양의 노래(太陽の歌)도 이 일대에서 촬영되었다. 그래서 도쿄에 가자마자 그때의 향수를 되살려 가본 곳이기도 하다. 드라마 장면 하나하나가 기억나는 것은 아니지만 주인공 사와지리 에리카가 부른 동명 주제곡을 들으며 걸으니 감회가 새롭다.


그리고 또 하나의 명소는 슬램덩크 성지순례 장소로 알려진 가마쿠라고교앞역(鎌倉高校前駅). 슬램덩크에서는 '능남고교앞역'이 바로 이곳이다. 애니메이션 1기 오프닝에 등장하면서 유명해졌다. 철도건널목. 안전바가 내려가며 땡땡땡 경보음이 울린다. 초록색 4량의 작은 기차, 에노덴이 지나가면 다시금 드넓은 태평양이 눈에 들어온다. 미디어로만 접했던 세상을 현실에서 접할때 느끼는 감동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생맥주(나마)와 안주인 오토시. 오토시는 보통 오토시다이(お通し代)라고 돈을 내야 한다.


다시 돌아온 도쿄 도심. 열대야로 더위가 가실 생각을 하지 않는다. 길목 곳곳에 있는 이자카야는 야외 테이블을 꺼내놓고 손님을 맞이한다. 빈자리에 얼른 앉는다. 점원이 건네주는 물수건, 시원한 오시보리(おしぼり)로 손을 닦고 이윽고 나온 생맥주 한잔을 목이 타들어 가는 느낌이 들 때까지 쭈욱 들이킨다. 메인요리가 나오기 전 제공 되는 안주인 오토시(お通し)만으로도 500ml짜리 생맥주 한잔이 끝난다. 컵 안쪽에 남은 엔젤링을 보는 것만으로도 짜릿한 청량감이 느껴진다. 눈으로 마시는 맥주다.


좌측 갑자기 쏟아지는 폭우. 우측 길거리에 있는 금목서


맥주 없이 못사는 나날이 이어지는 9월. 그러다 이따금씩 장대 같은 비가 쏟아진다. 일기예보도 그다지 신통치 않아서 접이식 우산을 항시 가방에 넣어서 다닌다. 하지만 빗줄기가 워낙 굵고 양도 많은 탓에 옷이 금세 젖고 만다. 한국에 있었다면 파전에 막걸리 먹기 딱 좋은 날씨인데 일본에는 아쉽게도 그런 문화가 없다. 이런 날 집에서 기름요리를 하면 냄새가 좀처럼 빠지지 않는다. 그러다 비가 그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세 뜨거워진다.


몇 차례 장대비가 퍼붓고 지나가면 9월도 막바지에 다다른다. 이즈음 길거리에서 상큼한 향기가 나기 시작한다. 귤껍질 냄새라고 해야 하나. 향기의 근원지를 찾아가면 주황빛 작은 꽃잎들이 눈에 들어온다. 금목서(金木犀)다. 향이 어찌나 강렬하고 매력적인지 출, 퇴근길은 물론 산책할 때도 일부러 금목서 향이 나는 쪽으로 간다.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다.



2024년 일본 9월 공휴일


9월 16일(월): 경로의 날(敬老の日)

9월 22일(일): 춘분의 날(秋分の日)

9월 23일(월): 대체휴일(振替休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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