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지 않으면 몰라요
일본에서 한국에 돌아온 지 눈 깜짝할 사이에 10달이나 흘렀다. 그곳에서 10년이라는 세월을 보냈으니 1/10이 지나갔다. 다만, 모국에서의 10개월이 저곳에서의 10년보다 더 다이내믹했다.
나의 어릴 적 장래희망은 일본어 선생님이었다. 딱히 일본 애니가 좋다거나 일본 문화에 심취해 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일본어가 재밌었고 3박 4일 일정의 일본 (요나고시) 홈스테이가 인상에 깊었을 뿐이다. 그 이후로 일본과 관련된 일이 무엇이 있을까 찾아보게 되었고, 학생에게 가장 가깝게 느껴지는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동경했는지도 모른다.
대학교 때 일본학 전공을 했다. 교환학생 파견 제안도 받았지만 거절했다. 복수전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교환학생으로 보낸 시간만큼 학교를 더 다녀야 했다. 그럴 여유가 없었다. 취업이 절실했다. 그 사이 재학 중이던 학교는 통폐합 과정을 밟았고 교직이수 T.O도 덩달아 줄어드는 바람에 3등으로 탈락했다. 일본어 선생님은 물건너갔다.
대학 졸업 후 취업 반수 끝에 모 기업 해외영업 일본 담당으로 취업했다. 그곳을 선택한 이유는 일본지사가 있어서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일본 지사는 일찍이 문을 닫았고 베트남에 주재 중인 일본 기업을 상대하는 영업이었다. (회사 홈페이지에는 일본지사 정보가 있었지만 업데이트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일본 바이어와 첫 미팅을 하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일본 관련 전공이지만 일본어도 능통치 않았고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책 속에 있는 지식뿐이었다. 차라리 상대가 영미권 바이어였다면 나았을 지도. 일본어 자격증 N1, 900점대 성적표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한마디도 제대로 못했다. 미팅 후 직속상관(당시 과장님)에게 엄청나게 깨졌다.
일본은 나랑 연이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해외인턴제도를 발견했다. 물론 대상국에 일본도 포함되어 있었다. 6개월간 현지 한인기업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프로그램이었다. 정 안되면 워홀이라도 떠나자는 심정으로 회사를 그만두었다. 다행히 인턴십에 선발되어 일본, 도쿄로 떠났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저 일본에서 한몇 달쯤은 지내보고 싶었다.
2013년 9월 5일, 도쿄 오다이바에 있는 한인기업에 인턴으로 출근 했다. 처음부터 ‘나는 인턴이 아니다'라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평일, 주말 가릴 것 없이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런 열정이 닿았는지 팀 부장님이 본사에 정사원 제안을 해주셨고 회사 최초로 인턴에서 정사원으로 발탁되었다. (대졸 신입도 내가 처음이었다.)
일본취업비자를 받고 나서 일본에서 내 이름으로 된 통장도 만들고 핸드폰도 개통했다. 집도 계약했다. 일본 속 사회인이라면 당연히 내야 할 각종 세금도 부담했다. 이 무렵부터 일본이라는 세계(사회)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눈에서 비늘이 떨어진다(目から鱗が落ちる)는 일본 속담에 딱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일본에서 평일에는 열심히 일했고 주말에는 방방곡곡 돌아다녔다. 사진을 찍고 블로그에 글도 올렸다. 남녀노소 관계없이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었고 지금의 와이프도 만나게 되었다. 외국인들이 겪는다는 차별도 당해보았고 역으로 배려도 받아 보았다. 그렇게 2013년에 시작한 일본생활은 2023년까지 이어졌다.
일본어도 더이상 발목을 잡지 않았다. '원어민'처럼은 구사하지 못하지만 그들이 하는 말 90% 가까이 이해하고 일본어로 말하는데 어려움이 없어졌다. 한국어보다 일본어 회로가 먼저 작동하는 경험도 그리 놀랍지 않다. 적어도 첫 회사에서 겪었던 일본어로 인한 고충은 더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큰 발전이다.
일본에서 일본어, 일본사람들 사이에 섞여 보낸 10년이란 시간. 한국보다 일본이 편해졌고 영주권이 눈앞에 있던 찰나, 나는 돌연 귀국을 택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마음에 이끌려 일본에 갔던 것처럼 이번에는 반대로 한국에 돌아왔다. 그래서 후회는 '1'도 없다. 한국에서의 생활은 일본에서보다 고되다. 보통의 직장인이 아닌 사업이라는 모험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즐겁다. 무섭지 않다. 일본에서의 10년간의 경험이 지탱해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일본에 살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 들. 어쩌면 그날들이 없었다면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의 내 모습은 모래바람처럼 사르르 흩어져 없어졌겠지. 그래서 지난 10년간의 일본생활은 너무나 값진 보물이다. 살아보지 않았다면 후회 했을, 마음 속 한켠에 늘 풀지 못할 숙제로 남겨 두었을 것들을, 미련 없이 모두 풀어냈으니까.
그래서 그런대로 일본에서의 10년이 의미가 있었다. 살아보길 잘했다.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