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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통역, 아무나 하는 게 아니네

by 형민

이번 주 초 2박 3일 일정으로 일본 제조사 통역을 담당했다. 지난 4월 초에도 호흡을 맞추었다. 이번이 두 번째.


일본 첫 직장에서 종종 통역을 맡고는 했다. 이제 막 일본어가 트였을 때라 비즈니스 용어는 고사하고 기본적인 회화에도 진땀을 뺐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일본어와 한국어 사이를 오가며 핵심을, 내가 내뱉을 수 있는 표현 사이에서 골라야 했다.


무서웠던 첫 기억탓에 일본어가 익숙해지고 난 이후에도 통역은 부담스러웠다. 종종 통역 요청이 온 적이 있지만 완곡히 거절했다. 일본에서 사회생활을 했어도 감히 원어민 수준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100점 만점에 (잘 주어야) 80점 정도.


이번 통역은 와이프에게 들어온 일이었지만 사정이 생겨 내가 대신하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일본어로 말할 기회는 좀처럼 없었다. 2년 가까이 말문이 닫혀 있다. 오랜만에 열어야 했다. 그래서 예전처럼 드라마로 말문 트기 연습을 했다.


(일본어 공부 이야기는 '나의 일본어 전투기'에 자세히 다루었어요�)

예전에는 한자와 나오키로 했다면 이번에는 넷플릭스 '핫스폿: 우주인 출몰 주의!'를 선택했다. 호텔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가 사실은 외계인'이라는 독특하고 일본스러운 설정. 다만 여기에 나오는 대사들은 일상에서 주고받는 회화를 그대로 가지고 온 느낌이다. 그 정도로 자연스럽다.


이와 함께 일본 제조사 담당자에게 받은 업계 용어 자료집을 보고 통역 준비를 했다. 80점에서 70점으로 다운그레이드된 실력으로 통역을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가득한 채 통역 당일을 맞이했다.


서울역에서 그들을 맞이했고 총 4번의 통역을 진행했다. 통역 중에는 옮겨야 할 말과 그러지 말아야 할 말, 순화해서 표현해야 하는 말 등 눈썰미를 요하는 순간이 많았다. 내 말 한마디에 일이 뒤집힐 수도 있다. 한국어, 일본어 내뱉을 때마다 상대의 얼굴 표정을 살펴보았다.


긴장 속에 통역을 끝마치고 나면 식사자리가 이어졌다. 간단한 반주도 곁들였다. 조금 포멀 한 주제로 대화가 오가는 대신 분위기를 띄울 필요가 있다. 그래서 조금의 과장(MSG)도 한 스푼.


다행히 무탈하게 모든 일정을 마치고 일본 담당자들이 돌아갔다. 그동안 쌓여있던 긴장과 피로가 한순간에 온몸을 덮쳤다. 집에 돌아가자마자 그대로 골아떨어졌다.

서울역에서 일본 제조사 담당을 기다리며

전문 통역사처럼 고급적인 언어스킬을 요하는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가벼운 주제도 아니었고. 내 말 한마디에 일이 뒤집혀 버릴 수도 있다. 일본어라도 잘했다면 부담이 덜했을까.


한일간 가교역할을 하고 싶다는 꿈이 이렇게 이루어져 나가고 있다. 한국에 돌아오니 통역이라는 형태로 기회가 왔다. 다행히 다음번에도 통역을 계속 하기로 했다.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겠다.


통역 다음은 어떤 형태로 꿈을 이룰 기회가 찾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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