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형민 Oct 12. 2022

일본에서 정사원이 될 수 있었던 이유

Ep07. 취미가 일본에서 밥줄이 될 줄이야.

"FAX로 보낸다고요?"


2013년 9월부터 인턴으로 근무했던 회사는 한국 중소기업의 일본 진출을 서포트 하는 회사였고, 이들과 매칭이 될만한 일본업체를 발굴하는 것이 주요 업무 중 하나였다. 그래서 상품에 대한 홍보자료나 상담회 자료를 일본업체에 보내는 일이 많았는데 메인 통신 수단은 다름 아닌 FAX였다.


#컴퓨터로 열심히 만들고 FAX를 보내다.

컴퓨터로 열심히 홍보자료를 만들고 출력하여 복합기 앞에 가서 FAX 번호를 누른다. 이윽고 FAX송신 신호음이 들리면 프린트물을 복합기에 넣고 송신버튼을 누른다. 스륵, 스륵 소리를 내며 들어가는 원고들. 인턴들의 주 업무 중 하나였다.


사실 FAX를 보내는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지금이야 사정이 나아졌지만 당시는 회사 메일 계정 할당용량이 00메가인 경우들이 많았고 용량이 클 경우는 송신/수신이 안되는 일도 있어 상대에게 피해(메이와쿠 : 迷惑)를 끼치지 않기 위해  FAX를 선택하고는 했다. (대신 FAX는 흑백이다.)


그러고보니 내가 어릴적 장사를 하던 우리집에도 FAX가 있었지만 복사 할 때 빼고는 도통 쓸일이 없었다. 그나마 군대에서 보직 변경전 기록통신장비운용병이었는데 일명 FAX병이다. 이때 FAX를 신나게 만지고 난 이후로 더이상 FAX를 보낼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일본에 와서 군생활 경험을 살리게 될 줄이야.


아무튼 기본적으로 홍보/안내 자료는 FAX로 보낼 것을 전제로 하고 만들었었다. 특히나 사진을 첨부하는 것이 상당히 애매했는데 간혹 사진이 안보인다고 (너무 검게 나와서) 일본 바이어 업체에서 연락오는 경우도 있었다.


#취미가 나를 돋보이게 만들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컨설팅 진행 중인 업체들 홍보자료를 만들기 위한 부서회의를 하던 중 (면접관이었던) 원 대리님이 나에게 질문을 했다.


"그러고보니 형민이, 홈페이지 만들 줄 안다고 했지?"

"네. 취미로 몇번 만들어 봤어요."


그 이야기를 들은 부장님은 그렇지 않아도 큰 눈을 더욱 똥그랗게 뜨더니 손뼉을 쳤다. 그러더니 나에게 홍보 자료를 웹페이지로 만들어 볼 것을 주문하였다. 홈페이지 만들기는 10대시절 나의 제일 큰 취미이자 특기였다. 초등학교 6학년 무렵 컴퓨터학원에서 나모웹에디터를 배울 기회가 있었고 서태지 팬사이트를 만들어 운영도 해보았던 터였다. 대학교 들어와서는 일본가수 팬사이트, 그리고 나의 개인 사이트(블로그)를 만들어 운영했다. 


그런데 특별히 디자인에 재능이 없기도 했거니와 홈페이지 같은 걸로 밥벌이가 된다는 생각도 못했고 어디까지나 취미로 간직하고 싶었다.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그런 나에게 일로서 홈(웹)페이지를 만들어야 하는 미션이 주어진 것이었다.


싫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만들어보는 수 밖에. 개인 블로그를 할 때나 잠깐 잠깐 쓰던 포토샵을 실행시키고 상품사진을 편집했고 텍스트 에디터에 HTML 태그를 입력하며 페이지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인턴 당시 처음으로 만들었던 상품 홍보 웹페이지 메인

단순한 구성이었지만 부장님은 꽤나 흡족해 하셨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본사에 계시는 사장님께도 보고를 하셨던 모양이다. 다른 인턴들이 하지 못하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내가 돋보이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이후 FAX로만 보내던 홍보자료는 온라인 URL로 대체하기 시작하였고 머지 않아 라쿠텐이치바(楽天市場)라는 일본 최대 인터넷 쇼핑몰에 상품을 올리는 프로젝트도 진행하였다. 이것이 E-Commerce업계와 인연의 시작점이 될 줄은 이때만해도 꿈에도 몰랐다.


그리고 나는 H통신 역사상 최초이자 (아마도) 마지막으로 인턴에서 정사원이 되었다.


※일본 거주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에세이입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쓰려고 했으나 일부 편협한 부분이 있을 수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연재가 끝나면 브런치북으로 엮을 예정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본 생활의 시작은 전입신고부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