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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모 Jul 03. 2017

유연하게 운동하고 연애하라

▶부끄러운 고백이다. 크로스핏을 그렇게 오래했는데, 아직 스쿼트 하나 제대로 하지 못 한다. 남들은 발을 십일자 모양으로 놓아두고도 스쿼트를 하는데, 꿈만 같은 이야기다. 여덟 팔자 모양보다도 한참 더 발을 벌려야 비로소 골반을 무릎 밑으로 내릴 수 있다. 누구는 그 자세를 보고 발레리노 같다고 놀리기도 했다. 이게 다 유연성이 없어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무리 오래 운동해도 유연성 좋은 초보자들에게 따라 잡히기 일쑤다. 그들을 보면 질투를 넘어 포기를 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엄마를 원망했다. 유연성은 타고나는 거라고 했는데, 왜 날 이렇게 낳았나 싶었다. 어떤 날은 코치를 원망했다. 유연성 훈련은 안 시키고, 기술 훈련을 시킨다고 투덜거렸다. 유연성에 관해 제대로 알지 못 할 때는 남 탓하기 바빴다.


▶유연성은 결국 얼마나 근육이 양 쪽으로 잘 늘어나는가에 관한 문제다. 근육이 잘 안 늘어난다면, 원인은 간단하다. 특정 한 쪽 근육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있는 사람들은 라운드 숄더로 고생한다. 가슴을 움츠리는 근육은 커진 반면, 가슴을 펴는 근육은 발달하지 못 했다. 비대칭 근육은 유연성 결여로 이어진다. 운동을 편식해도 마찬가지다. 당기는 운동만 한 사람은 미는 힘이 떨어져서, 유연성도 떨어진다. 


▶결국, 원론적인 이야기다. 평소 바른 자세로 앉아있고, 스트레칭을 열심히 해야 된다. 귀가 따갑게 들어왔던 말이 이제야 마음에 와 닿는다. 유연성이 없는 데는 엄마 탓도 코치 탓도 아닌 남 이야기 잘 안 듣고 살아온 본인 탓이었다. 삼십년 넘게 그렇게 살았더니, 이제는 정신 좀 차리라는 신의 경고를 몸으로 받아버린 듯하다. 결국, 유연한 몸은 유연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마음을 유연하게 만드는 데는 낯간지럽지만 연애만한 게 없다. 시작하는 연인간의 열정은 서로의 취향마저 상대에게 맞춰주는 유연함을 보여준다. 알콜의 힘을 빌려 몸을 덥힌 생면부지의 남녀도 유연하긴 마찬가지다. 그날만은 모든 걸 다 줄 것 같으니까. 슬픈 사실은 오래된 연인은 결국 자기 생각만 늘어놓다 헤어지고, 뜨거웠던 남녀는 술이 깬 다음 날 언제 그랬냐는 듯 세상 제일 데면데면한 사람으로 변해있다. 다시 원론적인 이야기를 할 때다. 상대의 말을 얼마나 잘 들어주는가가, 식은 열을 다시 올려주고 마음을 유연하게 한다. 요새는 연애 잘 하는 사람이 운동도 잘 하는 그런 더러운 세상이다.



김형모

얼마 전 돌부리에 걸려 발목을 다쳤다. 유연성이 얼마나 없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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