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송악산 둘레길을 걷다
돌고래를 보러 서쪽 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하다가 어쩌다 종점으로 도착한 곳. 숙소로 돌아가기 전 잠깐 들려 산책할 생각으로 갔는데, 지난 6월의 제주 여행에서 인상 깊게 남았던 장소였다.
주차장에 주차돼있는 많은 차와 달리, 산책로는 비교적 사람들이 적었고 고요했다. 오히려 송악산 아래 큰 유람선처럼 보이는 큰 배들에 사람들이 많이 있는 듯 보였고, 배들이 바다를 향해 오가고 있었다. '산'이라 힘들지 않을까... 는 걱정과 달리, 길은 공원처럼 산책하기 좋게 잘 되어있었고 깨끗했다. 중간마다 벤치가 있어서 잠시 여행길을 쉬다 가기에도 좋았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옆으로 끝없이 펼쳐진 바다도 볼 수 있는데, 저 멀리 섬 하나를 옮겨 놓은 듯한 산방산과 모슬포?를 볼 수 있어 탁 트인 풍경을 보기에도 좋았다. 활짝 핀 수국을 아직 보지 못했지만, 아기자기하게 모인 수국 꽃봉오리들이 꽃 필 준비를 마치고 있는 듯했다. 제주 억새와 이름 모를 들꽃과 풀이 많아서 제주의 이국적인, 제주만의 자연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아직은 초여름이라 그런지, 작고 여린 억새들이 듬성듬성 보였고 노란 연둣빛과 초록빛 풀과 나무들이 보였다. 바닷바람에 휩쓸려 이리저리 바다 결 따라 흔들리는 풀들과 바다내음을 맡으니 긴장됐던 마음이 조금씩 풀어지는 것 같았다. 몇 년 전, 용머리 해안에서 느꼈던 거친 겨울바람처럼, 송악산 바람도 센 바람이 불어오다가도 살살 달래듯 잔잔하게 불어져 왔다.
첫 번째 전망대까지만 둘러보려 했는데, 아름다운 풍경에 빠져 해안길을 따라 송악산 산책로를 천천히 걸었다. 안쪽으로 걸을수록 아늑하고 송악산을 느껴볼 수 있어서 더 걷길 잘했다 생각했다. 용암이 구불구불 흐르다 굳은 것처럼 구불구불한 절벽과 퇴적층도 보이고, 파도에 가파르게 깎인 해안절벽도 보였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등산로(?)를 걸으니 어느새 나도, 주변의 모든 사람도, 풍경 앞에서는 모두 작게만 느껴졌다.
파란 하늘이 옅어지며 회색빛 아래로 노란빛이 조금씩 비칠 무렵, 다리도 덩달아 무거워져 갔다. 흐릿하게 보이는 가파도와 마라도를 바라보는데 파도보다 높이 조금씩 출렁거리는 무언가가 보이다가도 없어지길 반복했다. 돌고래다! 수많은 돌고래 무리가 파도 따라 서쪽 바다를 향해 헤엄치고 있었다. 전망대에서 바라봤는데도 눈으로 보일 만큼 크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올라왔다. 송악산에서 노을 보기는 다음 여행으로 미뤄졌지만, 다음에는 송악산 둘레길을 시작으로 천천히 올레길을 걸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악산은 올레길 10코스 중 한 곳이었다. 송악산 초입에 들어설 때 안내문이 있었는데, 안내문을 읽어보니, 송악산은 가슴 아픈 역사가 서려 있는 곳이었다. 송악산에는 60여개의 일제 동굴진지가 있으며, 태평양전쟁 말기, 수세에 몰린 일본이 제주도를 저항기지로 삼았다는 증거 중 하나라고 쓰여있었다. 송악산 초입을 지날 때 일제 동굴진지가 보였다.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을 보니 마음이 아프고 무거워졌다. 다른 안내표지판에서는 송악산 외에도 셋알오름 일제 동굴진지, 모슬포 알뜨르 비행장 등 다크투어리즘 할 수 있는 길과 장소도 표시되어 있었다. 다크투어를 하거나 올레길 10코스를 걸을 때 참고하여 가보면 좋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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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 미혜(mih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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