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 물에 화를 녹이다
유난히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거나, 화가 치밀고 마음이 신경이 예민해지는 날이 있다. 친구나 가족, 동료들이 건넨 한 마디에 울컥하거나. 괜스레 너무 신경 쓰이는 혹은 속뜻이 있는 건 아닌지, 괜스레 생각하는 날들이 있다. 수영 배우기 전에는 잠깐의 잠이 나름 스트레스 해소법이라 여겨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그 시간만큼은 잊을 수 있으니까 애써 눈을 감고 머리를 비우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만 그럴 뿐, 잠을 자고 나면 생각과 스트레스는 몸집이 더 불려 있었다. 큰 몸집은 나를 얽매이게 했고 답답하게 만들었다. 해결책이 아닌 도피성이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멍해지는 스트레스 지경에 오면 또 잠들곤 했었는데, 그럴 때마다 두통만 생기는 악순환만 될 뿐이었다. 쳇바퀴만 도는 기분이었다.
친구가 추천해준 자신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랄까? 친구의 기분전환 방법이 떠올랐다. 친구는 생각이 너무 깊어지거나 우울해질 때면 일단 밖으로 나가본다고 했었다.
'우울하거나 기분 좋지 않으면, 오히려 더 몸이 축 처지던데. 아무것도 하기 싫고 모든 게 다 귀찮아지는데... 나간다고?'
나는 잠을 청하거나 커피 마시는 등 정적인 행동만 했지, 움직이는 활동은 전혀 생각해보지도 않았었기에 친구가 들려준 얘기가 인상 깊게 들렸었다. 여하튼, 친구의 말이 번쩍 떠올라서, 옷을 갈아입고 작은 가방을 집었다. 가방에 스마트폰, 이어폰, 지갑 다 챙겼는데 유독 흰 서랍장에 눕혀진 수영가방이 눈에 띄었다. 즉흥적으로 가방을 내려놓고 수영가방 안에다가 회원 카드 넣고 수영복과 샤워 도구를 마구마구 욱여넣었다. 집 밖으로 나왔는데, 내가 뭐 하고 있는 건지 싶다가도 이렇게 한다고 기분 전환될까? 싶은 의심 소리가 마음속에서 울려 퍼졌다.
‘아니야. 일단 나왔으니 가자. 오늘 수영장 안 갔는데 잘됐지 뭐!’
수영장 물에 풍덩 몸을 던졌다. 강습 없는 레인에서 생각 정리도 할 겸, 천천히 한 바퀴 돌려고 했다. 한 줄로 나란히 수영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로 나도 합류하여 수영을 했다. 놀이공원에 있는 회전목마나 꼬마 기차에 탑승한 기분이었다. 즐거운 기분이 들 때쯤, 발끝에서 뒷사람이 다가오는 기척에 놀라, 뒷사람 손이 내 발에 닿지 않게, 좀 더 빠르게, 가쁘게, 숨을 내쉬며 헤엄쳤다. 호흡이 가빠졌다. 일어서고 싶을 때가 되자, 깃발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참고 헤엄치니, 어느샌가 내 손이 레인 끝 벽에 닿아있었다. 심장이 작고 빠르게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한 바퀴서부터 시작해서 두 바퀴, 두 바퀴 반, 그리고 세 바퀴! 바퀴 수를 늘리다 보니 호흡은 가빠지고 얼굴은 잘 익은 토마토처럼 화르르 새빨갛게 익었다. 가쁜 호흡에 집중하니, 어느 순간 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잊혀갔다. 기분 안 좋았던 순간들이 화르르 공중으로 사라진 기분이었다. 이런 이유로 운동하는 걸까? 운동을 전혀 하지 않던 나로서는 운동의 맛을 조금씩 알기 시작했다.
마음이 조금은 평온해졌다. 수영이 끝나고 나니 다시 생각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생각의 꼬리란 왜 이리 길고 깊은지. 그래도 흐렸던 마음이 걷어지니 좁았던 시야도 넓게 밝아지는 느낌이다. 스마트폰을 보며 해야 할 일을, 선택할 사항들을 쭉 리스트로 적기 시작했다. 완전히 해결될 수 없더라도, 무언가 하나씩은 풀 수 있을 문제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녁도 건너뛰고 수영한 덕택에, 몸에 힘이 없어 발걸음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그래도 마음은 가벼워진 느낌이다. 아직 미세하게 쌓인 묵은 쾌쾌한 감정들은 해결되지 못했지만 이건 나중에 해결될 수도 있는 거니까. 그래, 오늘은 이만하면 잘한 걸 거야.
마음이 조금 더 단단해진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