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첫 한라산 영실코스

등산 초보의 첫 영실코스 탐방기

by Mihye

등산이라면, 미간부터 주름이 슬쩍 잡히던 내가 한라산에 올라가기로 결심했다. 지난 제주 여행에서 오름을 다녀온 후로, 오름의 매력에 빠졌기 때문이다. 당차게 “정상에는 다녀와야지!”라며 한라산 정상을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를 읽어봤다. 역시나 후기는 힘들다는 표현이 많았고 심지어 다녀온 뒤로 두 다리가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후기도 꽤 보였다. 생각해 보니 등산도 안 했는데, 8시간을 등반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그보다는 난이도가 낮은 코스, 영실코스로 선택했다.


새벽 5시, 준비물은 뜨거운 물 담은 보온병과 마실 물, 그리고 약간의 초코바와 컵라면이다. 옷을 얇게 여러 벌 입고 아빠와 함께 등산하러 숙소를 나섰다. 주차장이 아직 개방되지 않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차량이 기다리고 있었다. 주차를 한 후, 등반을 시작하는데, 어? 날씨가 생각보다 더 쌀쌀하다. 어제 비가 내린 후로, 온도가 더 낮아졌는지 초입부터 꽤 춥다. 그래도 등산하면 더워질 테니 상관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많은 계단에 숨이 가빠져도 바람이 차고 매서운 탓에, 도통 더울 줄 몰랐다. 등산 입구와 울창한 소나무 숲을 지나면, 몸을 숨길만한 큰 바위도, 넓고 큰 나무도 많지 않아서 더 춥게 느껴졌다. 내일이면 5월인데 아직 겨울 같았다. 올라가는 내내 속으로 ‘도착하면 따뜻한 컵라면부터 먹을 테야!’라고 외치고 있었다.

한라산영실코스_-바람막이입은사람2명rgb-900p.jpg 코는 루돌프 코처럼 빨갛고, 두 귀는 빨갛게 익어서, 두 손을 비비며 언 귀와 코를 녹이려 애썼다.

그래도 영실코스는 생각보다 난이도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운동을 전혀 안 하셨던 분이라면 조금은 힘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계단이 조금 많아서 힘들었지만, 길이 잘 다듬어져 있어서 올라가는 건 수월했다. 그러고 보니 등산할 때면, 산은 비교적 내려가기보다 올라가기가 참 쉬웠다. 그런데 내려가는 건 왜 이리 어려운지. 미끄러지지 않으려 발가락에 꽉 힘을 주고 차근차근 내려가도, 긴장감은 올라갈 때보다 유독 더 심했다.


영실코스 등반할 때, 사람들이 등산하면서 자연스레 서로 인사를 건네받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기분이 상쾌해지고 좋아졌다. 그리고 하나 더 놀랐던 점은 왜 이리 다들 산을 잘 타시는지! 정말이지 다람쥐처럼 토끼처럼 슉-슉- 올라가셨다. (내가 본 사람들이 속도가 빠른 건지. 내가 느렸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보다 한참 늦게 출발하셨던 한 등산인은 내가 영실코스에 평탄한 구간에 도착했을 때쯤, 이미 하산을 빠르게 하고 계셨다!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240x170mm-한라산에서-본-오름들-900p-rgb.jpg 한라산 등반 중 보이는 수많은 오름들. 제주 오름은 총 몇 개나 있을까? 궁금해졌다.

첫 한라산인 만큼, 한라산 풍경에 대한 기대가 높았는데, 경치는 기대보다 훨씬 더 멋있었다.

"왜 이제야 올라와 봤을까."

풍경에 반해서 올라가다 구경하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그 덕에 시간은 점차 더뎌지고, 코와 귀는 점점 더 빨개졌다. 이른 새벽 아침이라 자세한 형태는 보이진 않았지만, 병풍바위 모습도 잘 보였다. 산 아래 보이는 크고 작은 숲과 오름들 그리고 밭과 마을들. 바다와 하늘이 넓게 펼쳐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뻥 뚫린 느낌이었다. 추워서 그렇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였다. 멀리 있는 섬들이 산 아래에 닿을 것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자연의 경이로움에, 이런 매력에 등산하는 걸까 싶었다. 그리고 세상이 너무너무 작게 보여서, 다른 행성에 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심지어는 오름과 집들을 장난감처럼 내 손으로 이리저리 옮기며 소꿉놀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한라산의 선작지왓. 넓고 높은 평지가 인상 깊었다.

정상 부근에 다가왔다. 평탄한 구간이 나오는데 넓은 초원이 펼쳐진다. 높은 고도에 초원이 있다니 다른 세상에 온 것만 같았다. 마음도 몸도 한결 가벼워졌다. 활짝은 아니어도 진달래가 피어있기를 바랐건만, 아직 작은 꽃봉오리들이 고개를 내밀듯 몽글몽글 맺혀 있었다. 여행 시기가 진달래 개화시기보다 약간 이른 건 알고 있었지만, 아쉬운 대로 먼저 핀 진달래꽃을 보며 마음을 달래야만 했다. 활짝 핀 시기에 등산하면 얼마나 예쁠까? 그리고 선작지왓에 5월 말 6월이면 철쭉꽃이 흐드러지게 피는데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한 번 더 올 이유가 생겼다. 아쉬운 점은 하나둘씩 살짝 남겨둬야, 다시 찾아오게 된다! 다음에 한 번 더 오라는 한라산의 계시로, 내 멋대로 생각하며 움직였다.

도착해서 기념사진을 찍고 윗세오름 대피소에서 컵라면으로 배고픔과 추위를 달랬다. 추위 속에서 먹는 아침 식사는 왜 이리 맛있게 느껴지는지. 오래 더 머물고 싶지만, 뒤에 있는 일정과 숙소에서 기다리고 있을 가족을 생각하며, 하산해야 했다. 눈앞에 보이는 한라산 남벽 분기점, 한라산 정상이 눈앞에 아른아른했다. 날씨도 좋고, 뒤이어져 있는 윗세오름 코스까지도 다녀올까 싶지만-, 체력과 뒤 일정을 생각하며, 다음에 다녀오는 걸로 아쉬움을 달랬다. 영실코스, 이 정도면 괜찮게 해낸 것 같다.




주차는 영실 탐방안내소를 지나, 까마귀와 오백 장군 휴게소에 주차하면 덜 힘들고 편히 다녀오실 수 있습니다. 주차장이 작은 건 아니지만, 사람이 많이 찾는 시기나 계절이면 금방 꽉 찰 것 같아요.

저의 경우, 산행 시간은 대략 총 4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휴식과 아침식사 시간 모두 포함)



150x200mm-한라산영실후기-rgb-600p.jpg 영실코스를 다녀온 후, 그날 오후에는 서귀포 치유의 숲도 가고 산책로도 다녔다. 그래서일까 발바닥이 따뜻했습니다. 정말이지, 그날 하루는 눕자마자 잠들었어요.






일러스트레이터 미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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